내고장 넓은 내(洪川)이야기

김덕원의사 추념식 추모사

돌 박사 2019. 6. 6. 21:11

김덕원 의사께 올리는 추 모 의 글

            2019년 6월 6일 독립기념관 추모의 자리에서

                                                                석 도 익

  

 


  빼앗긴 들에는 봄이 오지 않았습니다

아니 봄이올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임은 봄을 오게 했습니다.

동학혁명군의 장두였던 김덕원 의사는 마땅히 앞장서서 잠자던 민족혼을 동학으로 깨우치게 하여 잃어버린 나라를 찾기 위해 홍천에 작은 산골 마을 동창들에 인근 5개면 3천여 명의 애국군중을 모으고, 인류세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민주평화항쟁인 3.1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우리 조선이 독립된 나라인 것과 조선 사람이 자주 국민인 것을 선언 하노라.

이것으로써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평등하다는 큰 뜻을 밝히며,

이것으로써 자손만대에 일러 겨레가 스스로 존재하는 마땅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도록 하노라.

반만년 역사의 권위를 의지하고 이것을 선언하는 터이며,

이천만 민중의 충성을 모아 이것을 널리 알리는 터이며,

겨레의 한결같은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것을 주장하는 터이며,

사람 된 양심의 발로로 말미암은 세계 개조의 큰 기운에 순응해 나가기 위하여 이것을 드러내는 터이니,

이는 하늘의 명령이며, 시대의 대세이며,

온 인류가 더불어 같이 살아갈 권리의 정당한 발동이므로. 하늘 아래 그 무엇도 이것을 막고 누르지 못할 것이라

참으로 위대한 우리 민족만이 할 수 있는 세계평화까지 표방한 독립선언을 고하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김덕원 의사는 다음과 같이 군중에게 호소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찾기위해 이곳에 모였습니다

 한사람도 이탈함이 없이 대한독립만세를 함께 불러 우리나라가 주권국가임을 세계만방에 널리 알립시다.

 

 그리고 임은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앞장서 나가셨습니다.

그러나 침략자 일본헌병의 총탄에 순직한 팔열사와 많은 부상자 그리고 일본경찰에게 고초를 당한 주민들의 원한까지 임은 십자가처럼 짊어진 채 모진 옥고를 치러야 했습니다.

  3.1운동 주모자로 혹독한 처벌에 의해서 두 눈마저 실명되어 암흑 속에 살다가 광복도 보지 못하고 순국하셨으나 지금까지도 임의 시신도 무덤도 찾지 못하고 있어 후손은 한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김덕원 의사님의 민족을 향한 숭고한 얼은 지금도 동창마을 척야산에 서려있음이니 임은 간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이 나라의 영광을 이끌고 계심이라 여깁니다.

 

  임은 갔습니다. 그러나 임이 뿌린 씨앗은 지금도 봄이 되어 싹트고 여름 되어 자라고 가을되어 열매 열려 풍요롭습니다.

 

  이토록 영원하게 우리 민족의 가슴에 피어나고 있음이니 임이시여 영혼이나마 이 영광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김덕원 의사님이 앞장서서 구국의 등불을 든지 100년이 흐른 오늘 삼가 추모의 글을 바칩니다.

    



                                                                                                    단기 435266 

                                   홍천군 문화원 회원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