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 운동의 텃밭이 된 원천은 5,16 군사정부의 정책에 의하여 “1961년 6월12일 공포된 '국가재건국민운동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재건국민운동본부는 국민단합운동, 학생봉사, 계몽활동, 허례의식일소를 위한 표준의례준칙제정, 국민저축, 의생활개선, 상도덕앙양, 기일 내 납세, 시간관념 고취, 가족계획, 식생활개선운동, 문고보급, 자매부락결연, 사랑의 금고설치, 재해 및 기아추방, 국제친선 및 펜팔, 기념비 건설사업 등 국민총동원운동을 전개했다.
재건국민운동본부는 모법(母法)인 1964년 7월 국가재건최고회의법의 폐지로 사단법인 재건국민운동중앙회로 바뀌었다가 1980년 공포된 새마을운동조직육성법에 따라 새마을운동중앙본부로 흡수되게 이른다.
재건국민운동은 낙후된 국가를 재건하고자 조국근대화의 기치 아래 리 동 단위까지 청년 부녀회를 조직하고 상록수의 꿈을 심어나갔다. 그러나 옛것을 재건하는 것 보다는 새로운 것이 더 좋다는 논리에 새마을 운동이 다음 바통을 잡게 되었다.
새마을운동은 1970년 4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이 전국지방장관회의를 통해서 ‘새마을 가꾸기’를 처음으로 언급하면서 농촌부흥을 위한 국가정책으로 시작되었다.
1970년~1971년 정부는 새마을 가꾸기 사업을 시행하여 전국 33,267개 마을에 시멘트 336포를 공급하고 마을 앞길 확장, 공동빨래터·공동우물 설치 등 마을공동사업을 중점적으로 실시하였다.
또한 정부는 사업성과가 우수한 마을 16,600개를 선정하여 시멘트 500포와 철근 1톤을 추가로 지원함으로써 이후 마을의 등급화와 차등 지원이라는 새마을운동의 추진원리를 수립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새벽종이 울렸네. / 새아침이 밝았네. /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 살기 좋은 내 마을 / 우리 힘으로 만드세/
새마을 운동은 새마을을 만든 것이 아니라 헌 마을을 새마을로 바꾸어 놓았다. 농민도 새 농민으로 만들고 초가지붕을 걷어내고 스레이트 지붕으로 개량하고 미신을 추방하기 위하여 서낭당을 헐어버리고 마을길을 넓히고 시멘트포장하고 다리도 놓고 부엌아궁이도 개량하고 식생활도 바꾸는 등 등
꾀 죄죄 하던 시골마을이 정말 새마을이 되었다. 기존에 집도절도 없던 곳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집을 짓고 살게 됨으로 촌락을 이루게 되는 그야말로 새로 생긴 마을이 새마을이지 어찌 길을 넓히고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새마을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새마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이렇게 일하는 과정에 사람들이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새로운 마음을 같게 하고 새로움을 느끼게 했던 것이 새마을 운동의 성공적 열쇠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