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장 넓은 내(洪川)이야기 171

한서장학회에 관한 소고

한서장학회에 관한 소고(小考) ( 한서장학회 사무실에서 필자 석 도 익 ) 예로부터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아온 무궁화(無窮花)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으로 ‘영원히 피고 또 피어서 지지 않는 꽃’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해 온 무궁화는 조선 말 개화기를 거치면서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란 노랫말이 애국가에 삽입된 이후 더욱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이 같은 무궁화에 대한 우리 민족의 한결같은 사랑은 일제 강점기에도 계속되었고, 광복 후에 무궁화를 자연스럽게 나라꽃[國花]으로 자리 잡게 하였다. 국화로 제정되지는 않았지만 민족의 가슴에 피어나는 무궁화다. 우리 민족과 함께 영광과 수난을 같이해 온 무궁화는 홍천이 고향이다. “무궁화의 고장 홍천”이 되기까지에는..

우리 것을 찾자고 하면서

일제 강점기 저들은 식민통치를 위하여 우리의 많은 문화를 뒤집어 놓았다. 그중에 하나가 지명개명이다. 우리말이 세세한 표현을 담고있어 저들이 행정처리에 불편하니까 새이름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 많다. 그 예로 전국에 동면 서면 남면 북면 등이 부지기수다. 홍천군의 동면(東面)도 1895년(고종32년) 영귀미면(詠歸美面)으로 불리다가 일제강점기인 1917년 방위적 의미의 동면(東面)으로 개칭되어 헌재에 이르고 있다. 이에 면의 명칭이 타 지방자치단체에서 다수 사용되어 지역 차별성 부각에 어려움이 있고 일제강점기 잔재라는 이유로 주민들의 지속적인 면 명칭변경 요구가 있왔다. 우리것을 바로 찾자는 좋은 일이다. 위에 현수막 같이 주민들이 의사를 표출하고 있는데 우리 것을 찾는다는 아름다운 뜻에 또다른 외국어를 ..

지난날 수타사에서 불토를 일구던 장인보 스님

지난 80년대 수타사에서 불토륻 일구시던 장인보 스님을 만났습니다. 영뮐읍 보덕사길 112 에 위치한 금몽암은 암자라기 보다는 깊은 산속에 고느적히 둥지튼 옛 선비의 별장과도 같고. 소담한 산방은 사람이 그리워 문도 닫지않는 그런 곳에 스님혼자 부지런히 움직이고 계셨습니다. 홍천 수타사를 떠나 전전하다 보덕사에 발길을 멈추었고 이제 여생을 암자에서 보내고자. 보덕사 부속암자인 금봉암에서 기도하며 지내고 있으시다. 금몽암은 보덕사의 부속 암자로 통일신라 문무왕 20년(680)에 의상조사가 “지덕암”이라 이름지어 세운 것인데, 그 뒤 이곳 암자를 단종이 꿈에서 보았다 하여 금몽암이라 고쳐 불렀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새로 세웠다. 숙종 24년(1698) 단종이 복위되고 보덕사가 원찰이 되자 이 암자는..

자연을 터득한 느티나무

홍천에는 삼마치 봉화산 높은터 엽자락에 자리한 먹실이란 마을이 있다. 이곳으로 오르다 보면 하늘 바로 아래 마을인양 바람도 멈추고 태양도 오염안된 볕으로 내리는 둥글게 자리한 언덕에 는티나무 한 그루가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며 자연을 지휘하고 있는듯 하다. 사진으로 다 담을수 없는 몸통을 건사하기 위한 뿌리는 대지를 얽어매고 지구가 둥글듯이 나무 몸통도 둥글어야 한다는 내력을 어기고 고정관념을 초월해 뿌리마다 힘을실어주어 몸통도 각이지어 자연에 순응하면서도 아닌건 아니라는듯 자신의 삶을 터득한 듯 하다. 이곳에 터잡고 지키는 권상원 선생님이 게셔서 더욱 든든하고 이 나무와 그늘에 새같이 둥지틀고 깃들어자연을 이야기하는 시인이신 오교수님이 게셔서 느티나무는 더욱 프르다. 느티나무는 나이가 많아도 젊은 나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