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도익 <칼럼>

어디까지 왔니?

돌 박사 2017. 9. 1. 23:03

   < 인생칼럼 >

                               어디까지 왔니?                                              


소설가  석 도 익

어디까지 왔니?

    일 가신 아버지나, 오시기로 한 친척이 도착할 때쯤이면 어머니 등에 업혀서 동구 밖까지 나와서 기다리며, “어디만치 왔니? 하고 어머니가 물으시면 삼거리 느티나무 까지 왔다하고 신중하게 대답했다. 어머니의 기다림에 지루함을 털어버리려는 문답놀이다.

  “어디까지 왔니?” 계속되는 어머니 물음에 거리는 차차 좁혀져서 마당까지 오셨다. “정말이지 그게 귀신같이 맞아떨어져 아버지가 사립문을 열고 들어오신 적도 있긴 했었다.

어린 아이들은 세태에 때 묻지 않고 순수하기 때문에 비가 올 거라든가 어디만치 왔는지 알 수 있다. 하며 아이들의 능력을 키워주신 것이다.

  날이 갈수록 변화하는 시대 정말 우리는 어디만치 와 있을까?

사람과 동급인줄 알고 있는 개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시대, 먹는 음식도 유효기간이 몇 년까지 가는 주부 행복시대다.

  동양의 예의지국에서 어르신을 틀딱이(틀리를 한 노인)라 부르고, 삼강오륜(三綱五倫)을 윤리에 기초로 삼았던 시대를 잊고 제일 큰강() 세 곳을 말하고 오륜은 세계인의 올림픽 깃발이라 생각하는 세계화로 누구든 소리칠 수 있는 평등화 민주화 시대다.

  까만 머리가 아니고 노랑머리면 아이노꼬 라고 놀림 받던 시대도 있었지만, 빨강 파랑 하얀 머리가 이상하지 않고. 남자가 여자처럼 하고 다니고 동성애로 살아도 떳떳한 개성시대다.

조상은 말 타고 달렸었지만 후손은 비행기타고 날아다니고, 계수나무에 옥토끼가 사는 달나라에도 여행하게 되었다.

  편지를 배달해 주어야 하는 우체국도 있지만, 인터넷 전자우편인 이메일은 실시간으로 편지 보내고 받는가 하면, 수만리 외국에 있어도 서로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영상통화 시대다.

  장애인이 우선이고 비장애인이 나중인 인식은 잘된 일이나, 어르신을 공경한다고 무임승차 하는 경로우대같이 공짜가 만연해 정치인들의 선심의 무상복지가 게으름과 의지심리만 증폭시켜 놓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앞선다.

  선임은 하느님보다 높고, 거꾸로 매달려도 3년은 견딜수 있던 강인한 군대는, 어떻게 하든 군대생활 잘하고 제대해 주는 게 다행으로 바뀐 지 오래여서 과거에 군대이야기는 호랑이가 담배 비우던 이솝우화가 되었다.

  힘의 상징인 남자는 약해지며 예뻐지고 있고, 힘은 없지만 아름다움의 상징인 여자는 날이 갈수록 여권을 확장하며 강해져만 간다.

  근엄하고 든든하던 아버지는 없고, 같이 놀아주는 아빠가 있을 뿐이며, 한없이 자애롭지만 엄격히 훈육하던 어머니는 없고, 무엇이던 다해주는 엄마만 있다.

  개천에서 용 나던 시대는 개천물이 맑아서 가능했는데 지금은 개천물이 너무 오염돼서 용이 날수 없단다.

애국이란 말은 국어사전에 나라사랑이란 단어로만 머물러 있고, 국산품애용이란 말은 없어진지 꽤 된, 세계화 글로벌 시대다.

  우리는 지금 정답이 무엇인지 헷갈리는 시대에 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고 어른이 늙어서 노인이 되어, 남녀노소 함께 여기에 살고 있음으로 달라질건 없을 것이다.

어디까지 왔니?” “여기까지 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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