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도익 <칼럼>

제39회 홍천무궁화축제

돌 박사 2017. 10. 22. 19:14
2017-10-22 오후 4:19:48 입력 뉴스 > 홍천뉴스

<석도익 칼럼>제39회 홍천무궁화축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어린 시절 술래 놀이다. 술래가 뒤돌아서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빨리 외치고 뒤돌아보아서 그때까지도 움직이는 사람을 찾아내는 것인데, 이는 호시탐탐 침략하려는 왜적을 경계해야 한다는 나라지킴이 놀이었다.

 

                                       소설가  석 도 익

39회 홍천무궁화축제를 민관군이 하나 되어 멋지게 피워냈다. 관내 주둔하고 있는 장병들이 펼친 과거 현재의 병사들의 모습도 의의 있었고 나라 안과 밖이 혼란과 불안을 겪고 있는 와중에도 홍천군민은 나라와 내 고장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두 참여하여 홍천이 무궁화 고장임을 확인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군 관 군민의 화합의 장을 이루어 냈다.

 

반만년 질곡의 역사 속에서 민중의 가슴에서도 피어나는 무궁화! 은근과 끈기로 저력을 지닌 무궁화! 우리민족을 닮아서 국화로 명명하지 않았어도 이미 나라꽃으로 온 국민이 믿고 사랑하는 무궁화다.

 

구한말 독립운동을 하신 한서 남궁억 선생님이 관직을 버리고 홍천 서면 보리울에 낙향하여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 민족정신을 고취하고자 무궁화 보급운동을 펼치셨으니 이로서 홍천이 무궁화운동의 텃밭이 된 것이다.

 

홍천군은 1976년 한서 남궁억 선생을 추모하는 기념 사업회를 태동시키고 이어 1977년부터 한서문화제를 열어 한서남궁억 선생의 애국정신을 고취하고 주민 화합을 다지는 축제를 1990년과 2002년 수해 등의 사정으로 개최를 못한 것을 제외하고는 해마다 개최하여 2008년까지 30회의 대 장정을 달려왔다.

 

한서문화제는 한서 남궁억선생의 대표성이 무궁화인지라 자연스럽게 홍천의 꽃이 되고 뿌리가 되어 크게 자라고 번져나갔기 때문에 무궁화의 고장이 되고 산림청에서 공모한 무궁화중심도시로 선정되기까지 하였음으로 그 맥을 이어 무궁화를 더욱 선양하기 위하여, 2009년에 30여년을 개최해오던 한서문화제를 바꾸어 나라꽃 무궁화 축제를 개최하여 8회를 이어왔다.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한 선택이라 하겠지만, 지방문화역사의 맥이 단절될 수도 있어 필자도 여러 번 아쉬운 의견을 피력한바 있었다. 이제 우리 지방문화의 맥을 이어 39회 무궁화축제로 복원하여 금년부터 이어가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지방화시대가 열리면서 각 지방마다 특색 있는 축제나 문화제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그야말로 축제 전국시대다.

 

축제는 그 지역민에 화합의 장을 마련하며, 지방 실정과 정서에 맞는 문화를 창출하며 지방경제에도 크게 기여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켜 가고 있다.

 

한편 축제란 자칫 먹고 놀며 즐기는 것으로 퇴색 될 수 도 있을 것이나, 그럼에도 지방의 축제가 수없이 생성되고 있는 것은 경제적인 이익을 우선하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제 역시 축제의 일환으로 분류되지만 그래도 역사성과 문화가 중심이 되는 것이니 만치 우리가 민족정신의 얼이 깃들고 생활 속에 그 숭고한 정신을 이어가고자 하는 것이라면 무궁화축제라기보다는 무궁화문화제로 했으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해본다.

 

산림청에서도 무궁화 전국축제를 공모하여 여러 곳에서 진행하고 있다. 때문에 차별화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홍천무궁화문화제가 나라사랑정신으로 승화되어 홍천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문화유산으로 창출되는 문화제로 발전되어 나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