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文化)의 정의 (正義)
문화는 지식, 신앙, 도덕, 법률, 관습 등 인간이 사회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습관의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것이라고 영국의 인류학자 버넛 타일러는 그의 저서〈원시문화 Primitive Culture〉(1871)>의 서두에서 밝히고 있듯이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문화일수 있다.
문화는 일단 생성되어 확립되면 자체의 생명을 가지게 된다. 문화는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되며, 그 기능은 인간이 사회 속에서 안전하게 생활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문화는 단순한 반사적 반응에서 생활의 안정과 지속성을 보장하는 고도로 진전된 수단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으로 사회는 문화에 선행한다.
개개의 사회적 문화의 체제는 구조와 조직에 있어서도 다를 수 있고 자연자원의 차이에서 유래할 수 있고 언어나 도구사용 등 다양한 행동의 발달단계가 다른데서 도 올수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는 나라마다 다르고 지방마다 다를 수 있다. 특히 세계화되어가는 현대에 이르러 문화는 다양한 양상을 띠고 혼란 속에 치열한 자리매김 다툼을 하고 있다.
다만 선진화된 문화의 생성이 체계적으로 발전하여 왔고 그 문화를 잘 계승 발전시킨 나라나 지방은 삶의 질이 높아지고 보다 낳은 사회나 국가를 만들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홍천의 문화역사
홍천의 산은 높지 않고 험하지 않아 산자락에 기름진 농지를 만들 수 있었고 계곡이나 강은 깊거나 흐름이 빠르지 않아 강 유역에서 터 잡고 농사지으며 살아가기에 좋은 환경과 조건을 갖추고 있다.
매장문화재 조사결과 북방면 하화계리 일대에서 중석기시대의 유물인 세석기(細石器)가 다량 발굴된 것을 감안해볼 때 홍천강 유역에는 이미 중석기시대부터 인류가 생활하면서 선사시대의 문화를 형성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홍천지역에는 인류문화가 적어도 중석기시대부터 시작하여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의 역사과정을 거쳤음을 알 수 있다.
태백산맥이 가로놓여 바다와는 교통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산간 농경문화로 이어져 왔으며, 한강으로 이어지는 홍천강의 물줄기를 따라 서울문물이 유입되어 언어나 의식주의 생활양상이 경기문화권에 영향을 받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에 벌력천현(伐力川縣)으로 칭하여 오다가 통일신라 경덕왕때 녹효(綠驍)로 고쳐 삭주(지금의 춘천)의 영현이 되었으며, 고려시대에 이르러 현재의 이름인 홍천으로 불리게 된 것은 태조23년(940년) 홍천으로 고치고 제8대 현종 9년(1018년)에는 그대로 춘천에 속하게 하였다. 이후 제17대 인종21년(1143년)에는 감무를 두고,별호를 화산현(花山縣)이라고 하였다.
조선 태종 13년(1413년)에 지방행정제도를 개편할 때 홍천현이 되어 감무를 현감으로 개칭하고 현민을 통치하였다. 근대에 이르러 1895년5월26일(고종32년)칙령 제98호로 춘천부 홍천현이 되었으며, 1896년8월3일 칙령 제35호에 의한 13도제 실시로 강원도 홍천군이 되어 화촌, 두촌, 내촌, 서석, 영귀미, 감물악, 금물산, 현내, 북방의 9개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그후 현 내면을 군내면으로 고치고 1914년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화촌면의 태학, 결운의 2개리와 금물산면의 하오안, 장전평 2개리를 군내면에 편입하였으며, 1917년 금물산면을 남면, 군내면을 홍천면, 영귀미면을 동면, 감물악면을 서면으로 고치고, 1935년5월1일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 분지리를 홍천군 서면 굴업리에 편입하였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국토가 분단되면서, 38선 이남에 해당되는 인제군 기린면의 진동리 및 북리의 일부 와 인제면의 원대리, 남면의 부평, 어론, 김부, 신월, 정자, 갑둔, 신풍 등 7개리를 편입하여 신남면을 새로 만들고 인제군 내면을 편입하여 11개 면의 행정구역을 이루다가 1954년10월21일 법률 제350호<수복지구 임시조치법> 시행에 따라, 신남면은 인제군에 환원시키고 내면은 그대로 남아 10개면이 되었고, 1963년1월1일 법률 제1177호로 홍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73년7월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춘천시의 북방리와 풍천리가 홍천군 북방면과 화촌면에, 양양군 서면 명개리가 홍천군 내면에 편입되는 한편, 홍천군 내면 미산리가 인제군에 남면 상창봉리가 횡성군에 이양되었고. 1983년2월15일 전국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남면 상오안리가 홍천읍에 편입되었으며, 1983년10월1일 두촌면 천치리를 천현리로 개칭하였다.
1995년7월26일 북방면 성동리 일부(도심리)가 화촌면 구성포리로 편입됨으로서 2010년 현재 1개읍 9개면에 105개의 법정리와 196개의 행정리 1,014개의 반으로 편성되어있고 622개 자연부락이 있다.
문화의 발굴
홍천의 문화는 바닷바람이 불지 않는 곳이라 거세지도 않고 평야지대가 아니라 널리 퍼져있는 것 또한 아니다. 적당히 산지가 가리고 적당히 물길이 터져 물길 따라 올라와서 형성된 서울의 문화권이다.
홍천지방의 사투리만 보더라도 거의 서울의 언어가 조금 부분적인 모음과 자음이 변형되었을 뿐이지 전체적인 언어가 탈바꿈하지는 않았다. 다만 도회를 지향하고 지역을 감추려는 문화의 생성으로 어두운 부분을 가리려는 은연중의 문화가 새마을 운동을 거치면서 더욱 감추어지거나 지워져 버린 사례가 있다.
문화는 생성되면 계속 이어져나가는 생명력이 있어야하는데 새마을운동은 경제, 정치적으로는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으나 전통문화를 경외시하는 신문화가 고전문화의 소중함을 잃게 했다. 조상들의 얼과 역사가 간직되어 오는 빛나는 무형 유형의 유산들을 잘 관리 못하고 방치하여 훼손시켰는가 하면 원래의 자리에서 옮기거나 왜곡되게 해석하고 관리되어도 오기도 하였다.
홍천군의회 옆에 옮겨다 놓은 홍천괘석리사사자삼층석탑이라던가 홍천희망리삼층석탑 등의 문화재는 음지 그늘에 가려져 움츠리고 있고 앞에는 주차장이라 매연만 뒤집어쓰고 있는가 하면 선조들의 송덕비도 덕을 기리기는커녕 이사 다니기를 수없이 하다다 지금은 연봉 무궁화공원 울타리 길옆에 장승 아닌 장승으로 잡초에 묻혀 있다.
와치헌(臥治軒 : 송사가 없어 수령은 누워서 다스렸다. 라고 홍천의 순박함을 나타냈던 글) 이라고 했을 정도로 평화로웠던 홍천현의 동헌이 어디쯤에 자리하고 있었었는지 현민의 소리를 경청하던 학명루(鶴鳴樓)는 어디 있었고 시인묵객이 홍천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던 범파정(泛波亭) 또한 어느곳에 있었는지 표지석 하나 없어 구전으로 찾아내야 할 판이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다. 이는 우리의 조상을 스스로 우리가 잃고 고아 아닌 고아가 되어 있다. 자식이 없는 묘지라 할지라도 마을에서 벌초를 해주는 미덕이 있고 무후자제(無後子祭)라 하여 자식이 없어 죽어서도 제사 밥을 얻어먹지 못하는 망자에게 마을에서 제사를 지내주는 일이라던가 마을을 떠돌며 얻어먹고 살다죽은 각설이들에게 지내주는 거리제 등 우리 고장에는 너무도 아름다운 문화가 있었음을 발굴하여 거울로 삼는일이 문화의 발굴이다.
또한 우리고장을 위해 일하고 나라에 공헌한 지역에 위인들을 우리가 존경하고 자랑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조상의 업적과 행적을 찾아내서 얼을 살려 후세에 이어주는 일 또한 긴요 긴급하다.
문화의 연구
문화는 한 시대의 모든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의 방향이 설정되고 기록되어지는 역사 바로 그것이 문화인 것이다. 전통문화는 전통문화대로 맥을 이어가며 가치와 비전을 연구하여 현대사회에 접목해나가야 할 것이지만 문화란 아름답고 거룩하고 진취적인 문화만이 문화가 아니다.
퇴폐적이고 돼먹지 않고 음란하고 비과학적이고 인류사회에 피해를 끼칠 수 있는 것도 문화다. 이런 문화일수록 문화의 뿌리가 약한 민중에게는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급속도로 번진다.
한때에 잘못된 문화가 사회와 국가를 병들게 하고 진취적이거나 아름다운 문화는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내기도 하기 때문에 문화연구야 말로 가장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여과 없이 받아들여지는 외래문화가 몸에 맞지 않는 영양이라 부작용으로 어쩌면 몸살을 앓을 수도 있고 또는 변종이 생겨 치유하기 힘든 큰 병을 얻을 수도 있다.
국가에서 할 일이 아니라 이는 범국민적인 국민운동으로 해야 할 일이다. 국가나 지방자치에서는 문화원에 사회문화를 연구하는 연구소를 두고 각계각층에 연구위원으로 하여금 심도 있게 연구 분석 평가하여 이를 문화정책이나 생활문화에 홍보함으로써 바른 문화가 정착되어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문화의 선별
우리가 생활하는 모든 것이 문화라고 본다면 그것이 다 우리사회나 자신에게 삶의 질을 높이고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전통문화는 이미 검증이 되어 좋은 문화는 더욱 다듬어지고 좋아져 이미 우리생활에 젖어있을 것이라 문제가 없는 것이어서 지키고 다듬어 가면 될 것일 것이지만 시대에 따라 생성되어지거나 물밀듯이 들어온 외국문화는 우리들에게 생소하고 신비스러워 빠르게 확산될 수도 있어 이를 검증하고 선별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이미 확산되어 모든 생활에 적응되고 있다면 연구결과를 토대로 선별하여 바람직한 문화는 확산시켜야 하겠지만 사회에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것 같다면 이를 사전에 퇴화 시켜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실로 지나온 과거에 아름다운 미풍양속과 경로효친의 문화는 가정에 질서를 세우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미덕을 생성해냈지만, 현대에 이르러 개인 이기주의로 미풍양속을 해치고 사회를 어둡게 하는 저질스러운 문화를 배척할 수 있는 선별의 힘을 기르는 일이 중요한 시점이다.
문화의 관리
대대로 이어받은 소중한 문화유산은 털끝하나 다치게 하거나 변형시켜서는 안 될 일이다. 관리가 힘들어서 쉽게 장소를 옮기는 일도 되도록,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곳에는 조상의 얼이 있고 지나온 역사 에 우리의 뿌리가 있다, 무형이건 유형이건 관습이건 사투리이건 다 소중한 우리의 재산인 것이다.
또한 잘못 이해하여 전해지거나 망실되어진다면 역사에 커다란 과오를 저지른 죄인이다. 이는 우리 세대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손만대 물려주어야 할 유산이기 때문이다.
문화의 계승
현대에 와서는 신교육에 의하여 많은 한의사들이 양산되어 한방병원이 많지만 지난날에는 병이 나면 입소문에 의하여 용하다는 한약방을 찾았는데 용하다는 그 기준이 몇 대째 한약방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평가를 하곤 하였다.
그것은 대를 이어서 내려오는 한약방이라면 그 가문에서는 이미 오랜 기간에 걸쳐 임상경험을 토대로 관련지식이 대대로 축적되어 내려온 의술이나 약 비방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신뢰도가 높았다.
이와 같이 모든 문화는 계속적으로 계승되어 져야 하는 것이다. 시대에 따라 곳에 따라 경우에 따라 무수히 생성되어지는 문화는 무형의 문화이건 유형의 문화이건 널리 쓰여 지고 이용하다보면 이롭고 좋은 것은 발전되고 나쁜 것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지만 어떠한 것이든 기록되고 보존되어 나가야 할 것이다.
문화의 교육
요즈음은 지방문화원마다 각종 문화교육을 활성화 하고 있다.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나 여기에는 일반 예술인이 해야 할 몫까지 문화원이 하고 있다. 그림이나 음악 등의 예술실기를 가르치고 있는 곳이 많다보니 일반인들은 이런 예능을 가르치는 곳이 문화원이고 그런 것만이 문화인줄 알고 있기 쉽다.
예술만이 문화가 아닌데 어찌하여 문화원에선 예술부문만 가르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 이것은 아무래도 문화원이 예능에만 치중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정부에서나 지방자치에서도 문화 예술을 한군데 묶어 경쟁을 시키듯이 이를 관리 육성하고 있으니 일반사회에서 그런 고정관념을 가질 만하다. 예술인은 창작을 하는 것이고 이미 창작하여 세상에 내보낸 작품은 다른 사람들이 이용하거나 느끼고 있다면 예술문화로서 존재되는 것이다.
예술이 문화의 전부는 결코 아니다. 문화의 일부분이다. 문화원의 문화교실도 보다 더 광범위하게 사회에 공익 되는 다양한 문화를 찾아서 보급하고 교육함으로서 사회문화의 바른길을 개척해 나가야할 것이다. 사회에서 가장 확산이 빠르고 크게 차지하는 비중은 언어문화와 성문화다
언어가 순화되지 않고 거칠거나 폭력적으로 변화한다면 사회도 정서를 잃어가고 폭력적인 행동을 유발하게 한다. 성문화가 타락하고 질서를 잃으면 사회도 타락의 늪으로 빠져 윤리와 도덕이 흔들리게 되는 경지에 이른다. 이런 문화의 순화운동과 교육이 선행되어야하고 이는 범국민적인 문화정화운동을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문화아카데미 나 세미나 강연 등을 통한 교육이 계속되어져야 할이다.
문화의 홍보
지금은 홍보의 시대다. 아무리 좋은 책을 펴내도 홍보를 하지 않는다면 팔리지 않는다. 과거 홍보매체가 없었을 때에는 입소문이 대단하여 늦게라도 홍보가 되었지만 현대는 시각과 청각이 홍모매체인 신문이나 TV 인터넷 심지어 손 전화에까지 홍보가 넘쳐나 오히려 홍보의 침묵이 일어날 정도다.
가치가 있는 문화는 이를 홍보하여야 한다. 그런데 상업적인 홍보매체들은 그것이 좋고 나쁜 것은 뒤로하고 장사되는 일이라면 서슴없이 과대 포장하여 홍보하는가 하면 청취자나 독자를 확보하려고 시류에 편승해 바람직하지 않은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국민들은 이를 백퍼센트 믿고 그 문화에 젖어들게 되는 것이다, 이를 설득하는 문화의 홍보 좋은 문화를 많이 접하고 생활하게 하고자 하는 홍보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학교에서 하는 교육도 중요하지만 사회발전 지향적 문화홍보와 병행하여 저질문화의 저지와 설득홍보도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면 문화원의 할 일은 더 많아지고 정부의 입장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좋은 문화정책의 홍보, 문화향유를 위한 홍보, 정신문화운동 확산을 위한 홍보는 넘쳐도 좋을 것이다.
문화의 사회운동
우리나라는 국가나 지방에서 많은 국민운동을 펼쳐왔다. 애국애족운동에서부터 재건국민운동 새마을운동 바르게살기운동 등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부분적인 정신문화운동을 해왔고 이 때문에 우리 사회는 바르고 맑음을 유지하며 발전되어온 것이다.
어느 나라건 지방이건 간에 문화운동을 통하여 전환기를 만들었고 이 로 인하여 국가의 흥망성쇠가 좌우되기도 하였다.
문화혁명을 일으켜 국가를 탈바꿈한 예는 허다하다. 잘못된 문화혁명도 있지만 문화는 그 시대에 모든 것을 아우르는 거대한 물살이었다.
이제 모든 국민운동은 문화가 주체가 되어 새로운 문화의 창조를 이루어내고 국민운동의 창시를 선언해야 할 때다.
옛 문화를 이어받고 지키는 운동에서부터 새로운 문화의 확산을 검증하여 활성 시키고 병든 문화를 추방하는 일까지 모든 것이 사회운동으로 모아져 스스로 자정능력을 기르는 국민운동으로 펼쳐나가야 할 일이다.
문화원이 해야 할 일들
지금에 사는 우리들의 뿌리가 되는 문화와 역사를 먼저 알아야 할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전통문화의 발굴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역사와 함께 생성되고 생활화되어 이고장의 문화로 뿌리내려진 유형의 자산과 무형의 자료를 발굴해야 할 일이다.
우리 문화의 뿌리가 어떻게 생성되고 소멸되었는지 동헌의 터가 어디에 있었고 우리조상들이 즐겨 찾고 마음을 열던 장소가 어느 정자였는데 복원하기가 어렵다면 이곳이라는 최소한에 안내판이나 표지석이라도 세워놓음으로 역사를 기억하게 하는 일이다.
이미 지나간 역사에 찬란하게 꽃피웠던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후세사람들이 경시 하였다던가 소홀하게 하여 묻혀 버린 소중한 문화자원을 체계적으로 발굴하여야 할 것이다.
다음은 발굴된 문화자원을 체계화하는 연구를 하도록 하여 그 가치와 보존성을 인식시키고 우리문화를 이어나가는 뿌리로 삼도록 연구 검토되어 야 할 것이다.
문화자원의 선별 또한 역사적인 사업으로 임해야 할 것이다. 발전지향적인 문화와 보존관리 생활문화에 적용 등의 선별이야 말로 가장 중추적 기능이 되어져야 할 것이다.
다음에 문화의 관리는 둘도 없이 소중한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문화자원이라도 관리가 허술하면 그 가치는 하락되고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문화와 생활 문화 등은 우리고장에 자원으로 계승하여 발전시키지 않는다면 문화의 꽃을 피울 수 없을 것이다.
문화는 스스로 자생력이 있으나 이어주지 않으면 단절될 수도 있다. 문화교육은 예능 쪽으로만 중요시하는 교육은 지양하고 보다 광범위한 사회문문교육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대중문화를 강연 토론 심포지엄 또는 세미나 등 모든 교육시스템을 통하여 문화교육운동을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문화는 홍보가 제일 필요하고 홍보 없이는 문화정책이나 문화운동의 활성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대중이 호응할 수 있는 문화의 확산과 불량문화 확산의 저지를 위한 홍보역시 병행하여야 할 일이다.
문화의 사회운동은 문화원이 주도해야할 국민운동이다. 문화원에 문화자원 발굴과 연구 선별을 할 수 있는 향토문화자원연구소를 활성화시켜 체계 있는 운영을 하도록 조직을 보강시키고 문화의 산실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행정에만 의존한 문화정책이 우리문화의 뿌리를 퇴화시켰고 외래문화를 무분별하게 받아드려졌다. 문화는 정책이 아닌 사회국민운동으로 계승하고 보존되고 생성되어 생활문화로 발전되어 나가도록 사회기구를 활성화시켜 나가도록 함이 바람직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역사는 짧지만 삼국시대부터 민주적 방식을 채택하여 왔기 때문에 민주주의 문화가 뿌리내려져 있다. 다수의 의견을 받아들여 행하는 것이 민주주의라 지만 최고의 민주주의는 소수의 의견도 존중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작은 단체에 리더를 선출하는데도 선거를 통하여 치열한 경선을 치르고서 뽑아내는 것만 민주적인 방식이라 가장 좋다고는 하지만 그보다도 문을 열고 가슴을 펴서 정말로 적임자가 누구인지를 서로 타협하고 논의해서 추대하는 방식이 우리나라의 오래전부터 써내려온 훌륭한 문화였다.
문화원은 회원만의 것이 아니라 주민의 문화원이어야 하고 문화를 잘 선별하고 발전시키며 관리해 나가야 할 지도자로 모든 주민이 함께 추대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반 정치인이나 기관 단체장과 같이 피터지게 경선하여 치러지는 선거는 문화원과는 좀 거리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문화원 회원만이 입후보자격이 주어져 있고 발전기금을 회원이 투표로 선출해야한다는 것은 우리의 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켜나가야 하는 문화원에서는 깊이 연구되어야할 문제일 것이다. 홍천군만이라도 군민전체가 회원이 되고 군민전체가 추대하여 지도자를 모시고 군민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문화원으로 거듭 나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앞서 열거한 여러 가지 분야별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발전시키고 중단시키고 보전시키는 일이다. 농사는 올해 잘못지면 다음해에 잘 지으면 되지만 잘못 되어진 문화는 절대로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인 것이다.
또한 한 번의 실수로 내용이 잘못 기재된 다던가 설명되어 진다면 영원히 역사에 죄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