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도익< 인생칼럼>

♡우리♡는 든든한 우리말이다.

돌 박사 2025. 6. 3. 23:27

< 인생칼럼 >
  “우리”는 든든한 우리말이다

         소설가  석 도 익

  너와 나는 따로 따로 가 아닌 함께 라는 ‘우리’는 정이 담기고 안심이 되고 하나로 느껴지는 말이다.

외로움을 감싸주고 바람을 막아주는 울타리 같이 아늑하고 따듯함이 생기는 말이 “우리”인 것 같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뭉치게 하는 ‘우리’라는 말은 가족 이웃 학교 직장 사회를 구성하고 대한민국의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할 수 있는 핵으로 최고의 힘을 생성하고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는 순 우리말이다

‘우리’라는 말은 사전적으로, 말하는 이가 자기와 듣는 이를 포함한 여러 사람을 가리키는 일인칭 대명사다. 말하는 이가 자기보다 높지 아니한 사람을 상대하여 어떤 대상이 자기와 친밀한 관계임을 나타낼 때 많이 쓰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우리'라는 말을 참으로 많이 쓴다. 우리엄마, 우리아빠, 우리아기, 우리강아지 우리친구 우리식구 우리 집, 우리 동네, 우리나라' 등 수 도 없이 많다.

지난날 대중가요로 인기가 있었던 “우리애인은 올드미스”는 어떻게 자기 애인을 복수형인 우리애인으로 불렀을까? 뿐만 아니라 '우리 마누라'라든지 '우리 신랑'이라고도 하는데, 자기 애인이나 아내나 남편을 다른 사람과 함께 공유한다는 말이 될 수 있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해와 포용심이 많고, 처용가와 같이
/ 늦게야 침실에 들어보니 다리가 넷이 로구나 / 둘은 내 것이지만 / 둘은 누구의 것인고? / 본디 내 것이지만 / 빼앗긴 걸 어찌 하리오 / 하며 춤을 추었다는 전설의 해학에 견줄만하다.  

'우리'는 말하는 사람이 자기나 자기의 동아리 무리를 스스로 일컫는 1인칭 복수 대명사다.

한편 소나 돼지 닭 같은 가축을 가두는 곳을 '우리' 혹은 '울'이라고 한다. 기르는 가축을 우리를 만들어 가두어 놓고 키우는 것은 맹수나 도둑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지만, 동물입장에서는 자유를 억압당하는 감금에 해당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람에게도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1인칭 복수 대명사로 사람과 관련한 '우리'와 가축을 가두는 ‘우리’ '울', 또한 집을 경계한 '울타리'는 같은 뿌리를 가진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울타리 안에 있는 여러 사람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을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내 고장이라 하지 않고 우리고장 이라고 하지만, 내가 태어나고 유년시절을 보낸 곳을 우리고향이라 안하고 내 고향 이라고 한다.

외동아들 무남독녀라 자기 외에는 아무도 없는데도 우리아빠 우리엄마라 한다. 당연 내 아빠 내 엄마가 맞지만 우리라는 복수형으로 말한다.   부모님은 나 하나만의 이기적주장이 아닌 형제자매가 많음을 간주하는 넉넉함일 것이다.

‘우리’는 그 안에 지켜야할 약속이 존재하고,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구속력 또한 존재하지만,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스스로 우리 속에 들어가길 원하고 우리에 들어가서 소속되는 것을 원하며, 당연한 것으로 알고 살아왔으나 사회가 산업화되고 민주화를 이루면서 인격을 존중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나’로 독립하면서 따로설 수 있는 힘을 이기적으로 길러왔기 때문에 오랜 세월 사람과 사람사이에 끈끈한 정을 이어주는 ‘우리’라는 말이 힘을 잃어간다.  

이 아름답고 정이 담겨있는 “우리”라는 말이 해체되어 나로 가고 있으므로 앞으로는 점점 귀하게 쓰일 것만 같다.

가족이나 식구가 함께 사는 우리 집에서 나 혼자만 사는 내 집으로, 아버지 어머니가 한 자녀만 두었으니 우리아버지 우리어머니에서, 내 아빠 내 엄마가 될 것이고, 한마을에 살아도 어울리지 않으니 우리 마을이 아닌 내마을일 것이며, 세상 모든 것을 나를 중심으로 나의 위주로 생각하는 이기적인 생각과 활동으로 학교도 직장도 사회도 나라도 우리라는 복수형이 아닌 단수형인 ‘나’로 표현 될 것만 같다. 아름다운 우리말에 “우리”가 실종되어도 찾으려고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