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꿈과 돼지꿈
소설가 석 도 익
꿈을 꾸었다. 그것도 신년 벽두부터 서민들의 생활을 더욱 움츠려들게 하는 한파가 지속되던 깊은 밤에 그것도 길몽이라는 돼지꿈이었다.
검정 강아지 한 마리가 달려와서 덥석 품에 안고 보니 놈은 개가 아니라 주둥이가 뭉텅하고 콧구멍이 뻥 뚫려 있는 돼지였다. 녀석은 내 얼굴 가까이 주둥이를 올려대고 뽀뽀를 하려했다.
아름다운 여인도 아닌 것이 숨을 몰아쉬며 대드는데 하마터면 녀석하고 깊은 관계를 맺는 뽀뽀까지 할 뻔하며 당황하다 꿈에서 깼다.
이건 길몽이다. 모두들 돼지가 꿈에 나타나면 재수가 좋은 거라고들 했다. 늘 밤늦게까지 글을 쓰든가 일을 정리하느라 늦게야 잠자리에 드는 습관 때문에 꿈꿀 시간이 없어서인지 꿈이라고는 별로 꾸어보지 못하였는데 이런 꿈을 꾸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왜 이런 길몽을 꾸었는지, 올해 나에게 좋은 일이 있을라나 기대하며 무엇이 좋은 일일까 생각해 본다. 별로 크게 바라는 것도 없고 무었을 가지고 싶은 욕심도 나지 않는 터에 꿈이 가져다줄 횡재를 생각하며 생시에 허황된 꿈을 이어갔다.
그러고 보니 요즈음 내게는 소득이라고는 없고 쓸 일이 많아지는 봄이 올 것이니 축의금이 많이 필요한때가 다가오므로 돈이 필요하기는 하다.
그렇다고 고지식한 것은 내가 나를 알고 있는 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일해서 생긴 댓가 말고는 얻어 본 재화는 하나도 없고 공금을 많이 관리하면서도 잠시라도 빌려 쓴다던가 공금을 받아 넣은 주머니에서는 잔돈마저 바꾸려 하지 않는 성격이고 보니 주변머리 없이 평생을 산 셈이지만 나는 그것을 내 자랑으로 하면서 살아온 힘이었다.
“그래 지금은 돈이 조금 있었으면 좋을 것 같다” 는 생각이 들자 이번 꿈만은 잊지 말고 있다가 좋은 꿈이라니 복권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일하지 않고는 돈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그 흔한 복권이나 게임 같은 것도 하지 않는 내가 로또복권을 생각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혹시 모르지 꿈이 좋아 복권에 당첨되면 좋을 것이고 안 된다 하더라도 넉넉지 못하여 남을 돕는 일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는 자신을 한심하다고 생각하고 살아오던 터에 다만 얼마라도 복권기금에 보탬으로서 사회복지사업에 함께하는 것 아니겠는가 자위하며 난생처음 로또복권을 샀다.
주머니에 복권을 잘 간직하고는 이 복권이 당첨되어 그 엄청난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나누기 시작했다.
쓰는 용도가 날마다 불어났다. 우선 아내에게 그동안 힘들게 살아준데 고맙다는 뜻으로 1억을 주고 너나없이 힘들게 살아가는 형제자매와 친척들에게도 몇 천 만원씩 나누어 주고 그동안 얻어만 먹었던 친지들과 이웃들에게도 짜지 않게 밥도 사고 얼마가 남던지 그것은 어려운 이웃이나 장학생에게 두고두고 나누어줄 복지재단이라도 만들어놓아야 하겠다는 계획을 세워 놓았다.
복권추첨일은 부정탈까봐 샤워도 하지 않고 있다가 인터넷에 접속하고 당첨번호를 본다.
그러면 그렇지 그런 공돈이 하늘에서 그냥 떨어질리 없다. 그 많은 숫자 중에 이어진 숫자는 하나도 없다. 단 한 장이라도 바꿀 수도 없는 숫자의 나열이다.
처음부터 돼지가 아니라 개였던 것이지 요즈음은 돼지처럼 생긴 개도 있다하지 않은가? 그래 그건 개꿈이다. 그리고 꿈은 생시다. 개꿈으로 복권을 사서 복지사업에 동참하였고 춥고 마음 허허로웠던 가난한 가슴에 며칠간이나마 황홀한 부자가 되어 어려운 이웃들에게 마음으로나마 푸짐하게 나누어 주었으니 그건 분명 길몽인 돼지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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