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작품

치마문화의 모성과 모정

돌 박사 2024. 9. 10. 10:59


       치마문화의 모성과 모정
                           석 도 익

  세상에 사람들은 각기 다른 인종의 무리마다 사회를 이루고 나라를 만들어 살고 있지만 모든 여성들이 치마를 즐겨 입고 사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아마도 낮과 밤 계절 따라 변화하는 온도에 체온을 유지하고 거친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인류가 최초로 옷을 걸칠 때  만들기 쉬운 치마모양으로 만들었을 것 아닌가 싶다.

문명이 발달되면서 치마는 몸 아래 부분에 필요한 속옷을 입고 이를 하나로 가려지는 겉옷으로 폭이 넓고 길이가 긴 치마를 입는 것으로 여인을 아름답게 치장하게 되었을 것이다.

한복치마를 입은 여성을 보면 제일먼저 어머니가 그려진다. 가난했던 시대, 어머니는 언제나 광목천으로 만들고 검정 물감을 들인 긴치마를 입으셨는데 숫기가 없었던 어린아이는 낮선 사람이 집에 찾아오면 부끄러워서 어머니 치마 뒤에 숨었던 일도 있었는가 하면 어머니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치맛자락을 잡고 따라다녔던 유년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네골목대장에게 얻어맞고 눈물 콧물을 흘리며 흐느껴 울 때도 어머니는 치마 안자락으로 닦아 주고 감싸시며 달래주시곤 했었다.

일 가신 아버지를 기다리는 별빛이 총총한 밤 툇마루에 앉아 어린아들딸을 양 무릎에 누이고 당신의 치마폭으로 덮어주며 자장가나 옛날이야기를 해주시던 때도 그 무명의 긴치마에 어머니의 따듯한 체온으로 코 잠 들었고, 아이의 병을 고치기 위해 백방으로 데리고 다니던 중 눈감으면 코 베어 간다는 낫선 서울 어느 시외버스대합실 쪽 의자에 아들을 누이고 자신이 입고 있는 치마폭으로 덮어 재우고 당신은 긴 밤을 앉아서 새우셨던 어머니의 넓고 긴치마는 오랜 세월이 흘러가도 잊히지 않는다.

이토록 여인의 치마는 끝없는 모성의 산실이며, 여린 아이 은신처로 따듯한 모정이 샘솟는 온실로서, 여자를 아름답게, 여인을 위대한 어머니로, 어머니는 그때 그 시대 인류역사를 이어 만들어 왔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윗옷 저고리 앞섶인 오지랖이 넓어 구설수의 대상이 되는 것과 같이 긴 치마를 입고 나대서 치맛바람을 일으키기도 해서 사회에 물의를 빚기도 했었다.

옛 한복의 치마는 열두 폭이라고 했을 만치 넉넉한 폭과 길이로 만들어 여인의 전신을 감싸고 남을 만 하였으며, 서양의 양장드레스도 길이는 길지만 폭은 그리 넓지는 않아서 넉넉함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여인의 긴 치맛자락은 부드러움과 정감이 넘치는 마음과도 같아 섬세한 행동의 아름다움과 치미자락의 곡선에서는 포근한 모성이 느껴진다. 그러나 지금은 일 년에 특별한 날 한두 번 정도, 아니면 평생 두세 번 입어보는 한복은 연출일 뿐이다. 복잡하고 불편한 한복보다는 생활하기 간편한 바지나 손수건만한 치마까지 거리를 활보한다.

정인의 열 두 폭치마자락에 자연의 풍광과 연모의 글을 마음의 붓 가는 대로 그리고 써내려갔던 옛 선인들의 멋도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경제가 어려워지면 여자의 치마길이가 짧아진다는 속설은 아마도 근거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허나 짧은치마에는 여유도 없고 후덕함도 없을 것만 같다. 급하고 각박해진다, 오히려 노출된 다리를 덮을 방석이나 헝겊 담요가 짧은 치마의 도우미로 등장하기도 한다.

넉넉한 치마 자락이 없는 엄마에게는 어린자식들이 비집고 들어 갈만한 그늘이나 안식처가 없다. 어린아이의 바람막이도 안 되는 짧은치마나 바지는 아이를 포근하게 덮어줄 수 없으니 어머니의 마음 또한 좁고 빈약하다.

어린자식의 콩닥 이는 가슴을 어루만져주고 가려줄 어머니의 여유 있던 치맛자락이 풍요로운 현대에 와서는 오히려 각박하게 작아져간다.

배가 아프다면 배를 쓰다듬어주고 머리아프다면 머리를 만져주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빨리 병원 보내고 배고프다면 빵 사먹으라 하고, 놀고 싶으면 게임방이나 TV 보면 된다. 아이들에게도 용돈이나 많이 주고 커서는 재산이나 많이 물려주면 잘살아갈 것이라 생각하는 것인지 죽기 살기로 돈벌이만 하는 것 같다.

어린자식을 무릎에 누이고 자신의 치마 자락으로 덮어주며 볼록한 배를 따듯한 손으로 쓰다듬고 어루만져주면서 자장가를 불러주거나 옛날 옛적 야기를 들려주는 어머니는 이제 옛이야기가 되어간다.

세상살이 조금은 나아져 윤택하게 산다고는 하지만 날이 갈수록 각박하게 돌아가는 세월같이 치마폭이 좁아지고 치맛자락이 짧아진 어머니 아닌 엄마는 언제나 바쁘시다.

입시만을 위주로 가르치는 학교에서 메마른 정서와 부족한 애정을 채우지 못한 어린가슴에 공부로 채워 넣어야 하는 아이들은 오늘도 남부럽지 않은 풍요 속에서도 허기를 느끼며 소란과 소음 속에 있으면서도 고독을 씹으며 외롭게 자라고 있지나 않은지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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