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도익< 인생칼럼>

믿음의 냉장고

돌 박사 2023. 7. 31. 20:34


  < 인생칼럼 >  


                 믿음의 냉장고

  소설가   석 도 익

옛날부터 우리나라의 가정생활풍습은 집 밖에서 해야 하는 힘든 일들은 힘이 센 남자들이하고, 힘이 약한 여자들은 집안일을 해야 하는 것으로 역할분담이 구분되어있었다.

여자들이 집안에서 해야 하는 일은 힘을 쓰는 것은 아닐지라도 하루 종일 허리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하는 일이 너무나도 많다. 그중에서도 대가족식구들의 하루세끼 먹는 음식을 준비해야하는 일이다.

첫닭이 울기가 무섭게 일어나서 부엌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넉넉지 못한 살림이니 곡식 양념 아껴가며, 보리쌀불리고 채소 나물 거두어 반찬 만들어 아침식사하고 이어서 집안청소하고 나면 다시 점심준비를 한다.

밖에서 일하는 남자들을 찬밥을 먹이면 안 된다며 밥을 하고, 반찬 만들어 점심 먹고 나면, 보리며 벼 옥수수 밀 등의 곡물들을 디딜방아에다 찧어서 껍질 벗기고 쌀을 만들고, 가루도 갈아 짬을 이용해 여퉈 놓아야 했다.

몸을 콩 튀듯 움직이면서 저녁준비를 해야 하고, 이렇게 하루 세끼 준비하기도 바쁜데 강에 가서 빨래하고 옷 만들고 아이 키우고 그 많은 일에 여인들은 가고 싶은 친정도 갈 시간 없이 집안일로 헤어나지 못하며 힘들게 살았다. 이러한 여인들에게 여유를 갖게 해준 것은 첫째가 냉장고다. 우리나라는 1965년에 금성사에서 출시했으나 가격이 너무 비싸서 부의상징으로 여겨졌다가 1980년대부터 가정에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으며, 결혼 혼수품1번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으니 이로써 끼니때마다 반찬을 만들어 먹어야 하는 고달픔에서 탈출하게 되고,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되니 사회에 진출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여성의 권익신장을 위해서 여권운동을 부단히 해온 수많은 여성단체나 여권운동가들 보다도 여성들을 일에서부터 해방시켜주는 가전제품인. 밥하는 밥통, 빨래하는 세탁기, 청소하는 청소기 등이 주부의 일손을 거들어주었기 때문에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여 여권이 신장되는 동기부여가 되었을 것이다.

먹던 음식 다시 집어넣으면 안심되는 냉장고, 이곳에만 집어넣으면 걱정 끝 망각시작인 안심단지다.

모든 음식의 재료는 생물이 주재료가 되며 이를 이용해 만든 음식물은 만들어 놓고 시간이 흐르면 신선도 저하로 영양가가 떨어진다거나 상하게 된다.

우선 맛이 변하고 다음은 색깔이 변하고 서서히 부패되어 버리게 되는데 이것을 냄새로 눈으로 맛으로 먹을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식재료를 상하지 않게 소금을 활용하여 장아찌나 자반 건어물 건채소를 만들었고, 돼지고기나 시례기 등도 굴뚝 옆에 매달아 훈제형식으로 보관하기도 했다.

음식이 변질되니 당일 먹을 만치만 만들어 먹었었는데 냉장고가 있고부터는 식재료나 음식물의 부패를 늦추어 주는 역할을 하므로 기계만능 믿음시대를 열었다.

집에서 먹을 수 있는 모든 음식물은 다 이곳 변하지 않는 냉장고로 들어가 쌓인다. 여기는 자칫하면 질서 잃은 보충대가 되기도 한다. 언제 나가야 되는지 언제 들어와 있는 병력인지 모른다. 그러니 주방에 자리 잡은 냉장고는 집 평수보다 더 빨리 몸집이 비대해져 왔다. 잘 모르긴 해도 냉장고 하나에 한 식구 삼사일 이상의 비상음식을 비축해 놓은 가정이 허다할 것이다. 전시도 아닌데 말이다.

오늘도 알뜰하신 주부님은 아이를 위하여 고기를 사서 음식을 만드는데 다 쓰지 않고 아끼느라 절반은 잘라서 비닐봉지에 넣어 냉동실에 보관할 것이다. 근자에는 사람의 사체를 유기하는 곳으로도 이용하기도 했다니 끔찍한 일이다,

주부의 전유물에서 이제는 누구나 같이 사용하는 냉장고, 여기에 넣으면 안심하는 믿음 때문에 그 넣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려 언제 찾을지 모를 대기상태로 들어간다. 과연 이곳에 넣으면 유통기한도 정지되고 보관기간도 언제까지 마음 변하지 않고 있어줄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지나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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