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도익< 인생칼럼>

밀가루 시대

돌 박사 2023. 9. 3. 15:07


<인생칼럼>
   밀가루 시대

           소설가 석 도 익

‘아 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

초승달이 떠있는 멀건 나물죽을 두어 사발씩은 먹은 애들은 배 밑에 고추를 내려다보기 힘들 정도로 볼록 나온 배를 바라보며, 그래도 오늘은 굶기지 않고 먹일 수 있었기에 다행이다 싶은 부모님은 배불러 뛰어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니 대견하면서도 낟알이 적어 나물을 많이 넣고 끓인 멀건 죽이라 영양가 없음으로 바로 배가 꺼지면 배고파할까 염려되어 심하게 운동하지 말라하던 말이었으니, 그 시절에 유년을 보낸 사람들은 아픔이 묻은 아련한 추억으로 묻어놓고 있을 것이다.

가보지 못한 아리랑고개를 한풀이로 노래 부르고, 어디있는지도 모르는 보릿고개를 기진하게 넘어야 했던 시대에 먹어도 배고프던 기억이 요즘 유행하는 보릿고개라는 노래로 다시 들으니 먹먹하다,  

6.25전란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을 때 미국은 반대로 과잉 생산된 농산물로 인하여 경제공황사태까지 이르자 곡물을 수매하여 태평양에 버려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 잉여농산물을 처리하기 위하여 농업수출 진흥 및 원조법인 미국공법 480호, 줄여서  PL480 이라는 법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는 1955년 이 법 제1조에 따라 협정을 체결, 1956년부터 잉여농산물 원조를 받기 시작해서 전쟁 이후 국내의 극심한 식량난 및 물가고의 해소와 경제부흥에 미국공법480은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시절에는 농산물을 원조 받아서 무상으로 나누어 줌으로서 국내 농업생산력의 발전을 저해하고 생산구조를 기형화하여 농산물 생산의 완전한 자립화를 더디게 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만약에 자조 자립 협동으로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고 한 새마을 운동을 하지 않고 전처럼 계속해서 원조에만 의존하였더라면 농업기반도 무너지고 지금에 산업발전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으로 우려된다.

가난은 산도 헐벗게 된다. 풀뿌리로 연명하고 땔감까지 산에서 해결해야 하니 산의 나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 내주고 벌거숭이가 되었다.

우선 치산치수를 위하여 사방공사를 하고 나무를 심고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토를 만들고 경사지는 계단식으로 만들어 자투리땅이라도 농지로 활용토록 하였으며, 산성화된 땅을 객토를 하여 지력을 높이고 퇴비증산을 거국적으로 시행하였고, 초가지붕을 걷어내고 슬레이트 지붕으로 개량하는가 하면 저수지를 만들고 새로운 농법을 도입하고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며, 허리띠 졸라맨 사업에 미공법 480 밀가루가 투입되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일자리를 만들고 노임은 적지만 모두 밀가루로 지급되어 기아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우선으로 해결했다.

당시 전 국민은 국가재건사업에 참여하여 밀가루로 임금을 받아간 사람들이 대다수 일 것이다. 이토록 미국의 잉여농산물은 자국에 경제공항을 모면하고 이웃나라를 기아에서 구해준 대표적인 것이 밀가루였다.

우리나라 농가에서도 밀을 심었으나 주식으로 풍족하지 못했고, 미국공법480에 의해서 도입된 밀가루는 행정기관에서 취급관리하며 노임 등으로 지급되었다.

우리의 식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 분식이 장려되고 밀가루로 만드는 음식이 주식이 되어 국수에서부터 빵 떡 술 과자 가 상품으로 만들어 졌고 음식점에서도 화교들이 만들어낸 짜장면 우동이 대표 외식음식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주식이 쌀이나 잡곡이던 것이 밀가루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됨으로서 오늘날의 식생활은 미국공법 480으로 시행된 원조 밀가루가 기아를 넘기는 과정에서 변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 시대에 허기를 메우던 원조밀가루의 역사는 전 국민의 간식이며 비상식량인 라면을 탄생시켰고 군대의 전투식량인 건빵도 만들어 졌다.

지금은 보릿고개라는 노래에서 다시 들어보는 ‘아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걱정하던 말이 “얘야 뛰어라 뱃살 빠지게 많이 뛰어라” 라고 응원하는 노래가 되어도 좋겠다.  

미국공법 480의 원조를 받아서 기아를 면했던 세대들은 가슴 아린 추억이 밀가루 음식에 새겨있음인지 아니면 식생활 개선으로 몸이 선호하게 되어서인지는 모르나 밀가루음식을 선호하게 되었고, 신세대는 서구문물에 적응되었는지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니 쌀 소비가 적어지고 밀가루소비가 늘어나 해마다 많은 량의 밀가루를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라면이 세계시장에서 호평을 받음으로서 수입한 밀가루가 가공되어 수출로 이어지니 밀가루 시대에 살아온 지난추억이 국수발같이 길게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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