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도익< 인생칼럼>

무거운 삶을 짊어지고 온 지게

돌 박사 2022. 6. 30. 22:26



인생칼럼>

무거운 삶을 짊어지고 온 지게
소설가 석 도 익

지난날 설악산 대청봉을 오르면서 암벽을 만나면 밧줄을 잡기도 하고 계곡물을 뛰어넘으며 숨이 턱에 차고 기진맥진해서 간신히 걷고 있는데, 지게에 높게 짐을 짊어지고 빠르게 내 곁을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이 험한 산길을 그것도 지게에 짐을 가득지고 비호같이 오르는 그를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며, 경건한 마음까지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수 십 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그가 누군지 신문을 보고서 알았다.

임기종씨는 차량이 들어가지 못하는 설악산의 각 사찰과 암자에 필요한 물품을 지게로 운반해 주는 이른바 '지게꾼'이라고 한다.
사찰이나 암자에서 연락이 올 때마다 주문한 물품을 지게에 얹고 비좁고 가파른 산길을 올라 '설악산의 작은 거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는 50년이 넘도록 설악산에서 지게질만 한 키가 160cm도 되지 않고, 몸무게는 60kg도 나가지 않는단다. 그런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마다 설악산을 오른다.

어떤 날은 가스통을 4개나 짊어지고 산을 오르기도 하고, 어떤 날은 80 kg이 넘는 대형 냉장고를 통째로 짊어지고 산을 오르기도 한다. 그가 받는 배달 삯은 한 달에150만원 남짓이지만 30년 가까이 품삯을 모아 1억 원 이상을 이웃을 돕고자 기부한 설악산에 마지막 지게꾼 임기종(63)씨는 "생계 때문에 시작했지만,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지게를 지는 일이 생활의 한 부분이 돼 그만둘 수 없게 됐다고 한다.

그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늘 함께한 것은 지게다. 지난날 우리나라 농촌에는 집집마다 남자의 숫자만큼 크고 작은 지게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남자아이가 태어나서 어느 정도 자라 힘을 쓸 수 있으면 집안일을 거들기위해서 아이의 키 크기에 맞게 지게를 만들어 주었다. 학교 갔다가 와서 소 풀을 베어온다든가 땔나무를 해올 때 어깨를 짓눌렀던 것이 바로 이 지게였던 것인데, 어려서부터 지게를 졌기 때문에 성장 판이 짓눌려서 키가 자라지 못해서 작다는 핑계를 대기도 했었다.

지게는 한국의 대표적인 운반기구 중 하나였다. 지게는 양다리방아와 더불어 우리만족이 발명한 가장 우수한 연장 중 하나이다. 처음에는 ‘지개’로 불리다가 현재의 지게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지게는 6·25전쟁 때 매우 요긴하게 쓰였다. 산꼭대기의 진지에 일반인들이 식량과 탄환 따위의 보급물자를 지게로 져 날랐던 것이다.

미군들은 이 지게를 A자모양의 틀(A frame)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또한 물지게는 농가의 지게와는 형태와 기능이 전혀 다르다. 다만, 지게처럼 등으로 져 나르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물품 하역장 같은 데에서 무거운 짐을 들어 올려 차례로 쌓거나 다른 곳으로 나르는 작은 차도 지게차라 부른다.

지게에는 우리 조상님들이 질곡에 삶의 애환이, 그리고 수없이 변화한 계절과 세월의 무게가 한 짐 가득 짊어져있는 역사다. 우리는 지게 밀삐에 튼튼한 어깨를 넣고 등태에 등을 밀착시켜 지게작대기를 짚고 일서서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왔고 또 앞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사람이 가장 무겁고 많은 짐을 몸에 무리가 가지 않고 목적지로 이동할 수 있는 최초의 기계가 지게이고, 이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가장 자연과학적이고 인체공학적인 발명품이 우리나라의 지게일 것이다.

지금은 농사를 지어도 지게로 짊어 나르지 않으니 지게가 별로 쓰여 지지 않는데다가 지게를 만들 수 있던 사람들도 줄어서 나무지게가 없어져 가고, 가볍고 예쁘고 날렵하게 알루미늄으로 공장에서 제작된 지게를 철물점에서 살 수 있다. 물론 버팀목인 지게작대기도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졌다.

우리 민족이 지게를 만들어 사용했기 때문에 외침의 혼란과 가난에서 삶에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서도 오랜 역사를 굳건하게 지탱하며 여기까지 오게 된 버팀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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