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도익< 인생칼럼>

에누리와 덤의 미덕

돌 박사 2022. 4. 1. 22:20



♡ 인생칼럼 ♡
에누리와 덤의 미덕

소설가 석 도 익

사람 만나기가 겁이 나는 시대에 산다. 요양병원에 입원한 노부모를 만나려도 먼발치 유리창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긴 부모 자식 부부 형제자매 간에도 재산과 이해관계 때문에 피터지게 싸우고, 일가친척인 핏줄이라는 연결고리마저 낡아져가며, 이웃사촌이란 말도 지난날에 있었던 일이 되고, 마음에 담장을 쌓고 나 홀로 사는 세상이 되어간다. 오죽하면 코로나19까지 창궐해서, 그렇게 살 거면 아예 서로 만나지도 말라하는 시련을 주는 것이 신의 엄중한 경고인 것 만 같다.

이웃과 담을 쌓고 사니 날씨가 너무 더우면 마음까지 늘어져 게을러지고 모든 일이 귀찮아지며 쉽게 짜증이 나고, 너무 추워져도 몸을 움츠리게 되고 저마다 자신의 몸만을 둘러싸는 이기적인 마음이 들어 사회가 더 각박하게 되어가는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가 정을 나누어 따듯한 체온이 전해져야 살맛이 나는 건데 코와 입까지 잔뜩 싸매고 종종걸음으로 자신들의 움막으로 들어가기 바쁘다.

매서운 찬바람이 거침없이 들고나는 노점이나 재래시장서 모처럼 발걸음을 멈춘 손님을 반가워하며 뼈마디 성성한 언 손으로 물품을 봉지에 넣어주고 덤으로 몇 개를 더 넣어주는 상인의 호의는 작지만 푸짐한 정이 건네지며 사가는 이의 얼은 마음이 풍요로 훈훈해진다.

예로부터 물건을 사면 조금 더 주는 것을 덤이라고 하고, 물건 값을 치를 때 주인이 얼마간 값을 깎아 주는 것을 에누리라고 하는데 이는 상인들의 후덕한 마음을 표시하는 상술이기도 하지만 사는 사람은 정말 좋은 물건을 싸게 구입한 것이라고 생각되어 흐뭇한 마음으로 감사함을 잊지 않게 되어 단골이 되기도 한다.

언제부터인가 "손님은 왕이다." 라는 말이 생겨나기 전에도 손님이나 주인이나 모두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절반은 양보하면서도 서로 정이 묻어나는 관계가 되며 살아온 것이 우리네 문화였다.

음식점에 식사하러간 손님은 주인에게 “아무거나 주인장 알아서주시오,” 하면 주인은 그 손님의 의중을 알고 음식을 준비해 주었는가 하면, 알아서 먹을 만치 서너 개 달라는 애매모호한 주문일지라고 주인은 꼬치꼬치 묻지 않고 그 범위 내에서 주인이 알아서 해주기도 했다.

이는 손님을 정말 왕으로 모셨던 주인의 마음이고 손님 또한 주인을 전문가로 대접해 나머지는 그의 처분에 맡겼던 차원 높고 인격적인 상거래였다.

고속으로 내달린 산업화와 냉정하리만치 느껴지는 정확한 계량개념과 개인의 주관과 개성을 뚜렷하게 표출하는 현대에서는 상품의 정찰제와 다양화된 상품은 기호에 따른 선택으로 구매와 판매가 이루어짐으로 예전과 같이 과자주세요, 서너 개요. 알아서 아무거나, 한다면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일 것이다.

이렇듯 세대와의 차이는 날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어 어르신들이 향수에 젖어가니 이 향수를 달래줄 수 있는 상술로 틈새시장을 공략한다면 호황을 누릴 수도 있을 법 하다.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노점이나 재래시장에서 싼 물건을 살 때는 에누리나 덤으로 줄 것을 당연한 듯이 바라는데,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비싼 물건 살 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장바구니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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