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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드는 것이다.
소설가 석 도 익
한해를 마무리 하는 태양은 지평선끝자락 바다에 노을을 그리며 잠수하는가 하면, 서산아래 계곡으로 넘어가고 땅거미가 내려와 어둠으로 막을 내리면, 무대 안쪽에선 다시 새날을 준비해 동해에 검은바다를 붉게 끓어오르며 해맑은 태양을 밀어 올리고, 또는 동산마루에 창문을 열 듯이 태양의 환한 얼굴이 떠오른다.
올해도 늘 그랬듯이 양력으로 새해를 맞이하고, 음력으로 설을 쇤다. 이상할 것 같지만 양력과 음력을 편리하게 혼용하며 생활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음력을 쓰다가 1896년 1월 1일부터 고종의 명령에 따라 양력을 쓰게 되었다.
음력과 양력의 날짜가 다른 이유는 날짜를 정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인데, 음력은 달의 공전 주기로 한 달을 정하고, 양력은 지구의 공전주기로 한 달을 정하기 때문이다. 한 달을 29일 또는 30일로 정한 음력은 한 달을 30일 또는 31일로 정한 양력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설은 시간적으로는 한 해가 시작되는 새해 새 달의 첫 날인데, 한 해의 최초 명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설날을 원일(元日)·원단(元旦)·원정(元正)·원신(元新)·원조(元朝)·정조(正朝)·세수(歲首)·세초(歲初)·연두(年頭)·연수(年首)·연시(年始)라고도 하는데, 이는 한 해의 첫날임을 뜻하는 말이다. 또한 신일(愼日)·달도(怛忉)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근신하고 조심하는 날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설이란 용어는 나이를 헤아리는 말로 해석하기도 한다. 해가 바뀌어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첫 날인 ‘설’을 쇨 때마다 한 살 씩 더 먹는다. 설을 한 번 쇠면 1년이며 두 번 쇠면 2년이 되는 이치를 따라 사람의 나이도 한 살씩 더 늘어난다. 결국 ‘설’이 사람의 나이를 헤아리는 단위로 정착하여 오늘날 ‘살’로 바뀌게 된 것이라고도 한다. 이밖에도 설이 새해 첫 달의 첫 날, 그래서 낯 설기 때문에 ‘설다.’ ‘낯설다.’ 등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어쨌든 양력과 음력에 첫해 첫날은 설이지만 두 번설에 나이도 두 살을 먹는 게 아니라 양력으로는 새해를 맞이하는 날이고, 오랜 관습으로 음력 첫해 첫날을 설날로 맞이한다.
섣달 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 섶이 흰 다는 말에 겁에 질려서 성냥개비로 눈꺼풀을 밭쳐가며 잠안 자고 동지섣달 긴 밤을 새우면서도 나이한살 더 먹는다는 설렘에 아이들은 꿈에 시간이었고, 어른들은 빨리 가는 세월을 아쉬워하며 오랜만에 온가족이 모여 밤을 지새우며 정을 나누며 지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설날이다.
떡국을 먹으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거라 하며 아이들에게는 나이에 따라 만두숫자를 맞추어 떡국에 넣어주면 아이들은 나이한살이 더 많아지는 것이 좋아 게눈 감추듯이 먹어치우던 설날아침 떡국이었으나 시집안간 누나는 떡국을 안 먹고 나이도 안 먹겠다며 나이 먹는 게 죽기보다 싫다고 했지만, 함께 맞이하는 설은 떡국을 온 가족이 둘러앉아 나이로 먹었다.
이렇게 나이는 먹는 것이었다. 내가 스스로 꼼짝없이 먹어야 했다. 나이를 아무리 먹지 않으려 해도 내가 먹는 것이 아니라 내 의사와 관계없이 나이가 벌써 내게 들어와 있었다.
나이는 드는 것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나이는 자동으로 나에게 찾아와 온몸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나이 들다.” 는 자동사로서, 내가 나이를 찾아가지 않아도 어김없이 나이가 나에게 들어와 저절로 나이가 들어버린다.
오고와서 끝이 없고 가고 가서 끝이 없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 먹어서 배부르지 않고 들어서 무겁지 않은 나이만 높아간다.
철없는 어릴 때는 나이를 먹고, 성인은 나이가 드는 것이기에 나무에 나이테가 나무를 굵게 하듯이, 연륜과 함께 경험이 축척되며, 인성 지성 덕성이 쌓아지면 어르신으로 존경받지만, 그렇지 못하면 “나이만 먹었지 나이 값도 못한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노인일 뿐이다.
“나이는 먹는 것이 아니라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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