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도익< 인생칼럼>

이어동기간 맺고 겨리소 짝하며 살았다.

돌 박사 2022. 3. 12. 22:16



< 인생칼럼 >

이어동기간 맺고 겨리 소 짝하며 살았다.

소설가 석 도 익

아지랑이가 지평선에 신기루같이 피어오르는 언덕, 사래긴 목화밭 겨우내 솜이불 같은 하얀 눈을 덮고 잠자던 땅이 우람한 황소 마라와 만삭인 암소 안야 가 하나의 멍에를 메고 끄는데 겨리쟁기탑손을 불끈한 손으로 잡고 흙을 깊이 파고 나가는 쟁기꾼 밭갈이 소리가 큰골에 구성지게 울려 퍼진다.
“이랴 ~ 어~여 힘차게 당겨라~ 진달래피고 뻐꾸기 울기 전에 이 밭을 다 갈아보자~ 마라는 이랑을 밟지 말고 안소는 두렁을 타고가거라 ~ 어허 후후 ~ 마라는 부지런히 안쪽으로 돌고 안소는 제자리에서 천천히 돌아 주거라 어허 후후 ~”
겨리 소 쟁기꾼인 이장네 수양아들이 모는 두 마리의 소가 하나가 되어 끌고 당기며 앞으로 나가니 웅크렸던 겨울이 몸을 펴고 이랑이 생기며 포실한 봄이 널브러진다.
봄이 되면 제일먼저 메아리로 울려 퍼지는 구성진 논밭갈이 소모는 노랫소리는 그 어떤 가사나 특별한 곡조는 없더라도 봄을 맞이하는 여인들의 설레는 마음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했다.
우리나라 중부이북지방은 산지가 많아 화전을 일구어 만든 밭은 경사가 심함으로 남쪽지방같이 소 한 마리로 논밭을 갈 수 있는 홀이 쟁기로는 소가 힘들어함을 배려하여 소 두 마리를 끄는 겨리농경문화다.
포용하는 땅의 마음에 순박한 사람의 마음을 심고, 넓은 하늘의 마음을 헤아리는 농부는 많은 생명을 키워내 공생 공존하며 살아가는 농경문화에 뿌리가 여기에 있다.
선사시대부터 한반도에 터 잡은 선조들은 짐승을 잡아먹는 수렵이나 방랑하는 유목을 하기 보다는 땅에서 얻어지는 농사를 택하여 힘든 일을 하는 농심의 삶이 이어져 왔다.
농심은 씨앗을 심을 때도 한 알이면 될 것이지만 굳이 셋을 심었으니 세 알 중에 하나는 새를 위해 하늘에 주는 것이요. 하나는 벌레를 위해 땅에 주는 것이며, 마지막 하나가 나의 것이라 하여 셋을 심었다. 씨앗부터 함께 나눔이 목적이었다. 창조주 말고는 귀중한 생명을 키워내는 것은 농부다. 그러므로 일중에서는 농사일이 가장 힘들고 어렵지만, 농사는 나눔이었고, 농사는 협동이었다. 그 협동에 겨리농경문화가 있다.
예전에는 일가친척이 모여 한마을을 이루고 살던 씨족사회였기에 어쩌다 외지에서 새로 이사 온 사람이 살기가 서먹했고, 외롭게 살기 힘들 고 일가친척이 그리워 마을에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서로 의형제를 맺어 형님동생 오빠 누이동생 하며 지냈고, 자식이 없는 집에서는 수양아들 딸을 맺어서 진짜 친척보다 더 친근하고 가깝게 함께 웃고 함께 울며 정을 나누며 남이지만 동기간을 만들어 피붙이같이 살았는데 이것을 이여동기간이라고 했다.
또한 힘든 농사일을 함께해주었던 농우는 농가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식구이고 일꾼이자 친구였다. 논밭을 갈고 짐을 나르고 그 부산물로 농토를 살찌우기까지 했던 농부의 단짝이 소였지만, 소가 일을 그만두게 되고 단지 고기소로 키워지게 된 과학영농의 시대다.
지금은 잘 살고 있다고 하는데도 부모 자식 부부 형제자매 간에도 재산 때문에 피터지게 싸우고, 일가친척인 핏줄의 연결고리마저 끊어져가고, 이웃사촌이란 말도 없어진지 오래라 나 홀로 세상이 되어간다. 오죽하면 코로나19까지 창궐해서, 그렇게 살 거면 만나지도 말라하는 시련을 주며 경고하는 것 만 같다.
겨리 소 짝을 정하니 사람도 이여지고, 일가친척 없는 외로움도 이여동기간을 만들어 피를 덥히고, 두레로 힘을 합쳐 풍년을 만들어 내며, 마을에 인정의 샘터를 만들며, 천심(天心)과 지심(地心)을 경영하는 농심(農心)으로 살아왔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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