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도익 소설가 칼럼]
해야 할 일 다 하고,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다면
2022-02-28 오후 10:33:28
20대 대통령선거일이 다가옴에 따라 거리에는 현수막이 담장에는 선거공보가 나붙었고 선거운동이 치열하다.
대통령은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겠다는 선서를 하고 취임할 것이다.
이번선거에는 역대선거 때보다 많은 14명의 훌륭한 후보들이 대통령이 되어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출사표를 냈다.
소시민의 동공을 크게 하는 공약들 중에는 억 단위의 돈을 준다든가 주 4일만 일하는 복지시대를 만든다는 등 각종 달달한 선심공약들이 많은가 하면 기업을 국가나 노동자의 것으로 만든다고 하는 대찬(?) 공약도 있는가 하면 통일을 이루겠다는 야심찬 공약도 있지만 국론을 모아 열심히 일하고 힘을 합쳐 튼튼하고 부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게 국민이 함께해줄 것을 호소하는 후보자는 안 보이는 것 같다.
어릴 때 자기스스로 하루일과표를 만들어 자기와의 약속을 지켜보라고 하면, 동그라미를 시간으로 나누어서 공부하는 시간은 좁게 하고 노는 시간이나 잠자는 시간을 넓게 그렸었다. 솔직히 공부하는 것보다는 잠을 자든가 친구들과 노는 게 더 좋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10시에 문을 열고 오후 4시면 문을 내리는 은행에서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근무하는 은행원을 선망했는데 전생에 나라를 구했는지 금융기관에 입사하게 되었다.
부푼 꿈을 안고 출근한 첫날부터 4시에 문을 닫으니 퇴근하는 줄 알았는데 야근으로 자정이 다 되어서야 허기진 몸으로 집에 도착했다.
언제나 아침 7시에 출근하여 청소하고 회의하고 영업 준비하여 10시에 문을 열면 기다리고 있던 고객들을 맞이하고 창구업무가 시작된다.
고객을 응대하고 계산하고 돈을 세고 긴장의 연속인 일을 하다 잠시 밖에 나와 보면 하늘이 노랗게 보이지만 전산이 없던 시대 은행원의 일은 문을 닫고부터가 시작이다.
거래를 마감하고 상황을 집계하고 검사하여 단1원이라도 틀림없이 기록되어 모든 회계의 합이 일치되어야한다. 그렇지 못하면 까만 밤이 하얗게 될 때까지라도 틀린 것을 찾아내야 한다. 퇴근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는 토요일을 반공일이라 했고, 일요일은 온공일 이라고도 했으나 토요일의 반이나 하루 종일 쉴 수 있는 일요일도 잔업을 위해 회사에 나가야 했으니 밖에서 보이는 겉과 일하는 속이 다른 직장에서 긴 세월에 청춘을 묻었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고 모두가 근검절약할 때이니 직장에 다니면서도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자며, 농사 짓고 누에 키우고 저축해서 자수성가에 기반을 만들었다.
이즈음에는 각종 업종마다 단체와 협회를 만들어 나름대로 정기휴일을 정하여 쉬기도 했지만, 몰래 가게 문을 반쯤열고 일하는 이들도 많았었다.
지금도 젊은이들이 나가고 나이든 부모가 힘든 농사일을 하는 것이 염려되고 미안해서 자식들은 부모님을 볼 때마다 제발 일하지 말라한다. 자식들이 그런다고 일을 안 하면 어쩌란 말인가?
허리를 두드리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다. 다만 자식들이 하지 말라 고만 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시간 내서 부모 일을 도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말로만 일하지 말라 할뿐 일하러 오는 자식들 별로 없다.
달력에 빨간 숫자가 쓰인 날이 많아졌다. 토요일도 휴일이 되고 국경일 기념일이 늘어나고 대체휴일까지 만들고 휴가항목 또한 많이 생기고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지수가 과거보다 높게 나타지 못하고 있다.
근로시간이 많아서 쉬지 못해 그런 것은 아니다. 삶은 일이고 일은 경제이며, 경제는 물과 같다.
물은 윤회하며 대지를 적시고 생명을 탄생시키고 키워내는 것이기에 모든 경제활동은 시장에 맡겨 수요와 공급의 균형에 따라 그 가치가 경쟁에 의해 이루어지고 유지되어야 하는데 정치권력으로 통제하게 되면 경제흐름의 질서가 혼란스럽게 되기 때문이다.
대통령후보들이 돈도 주고 휴일도 많게 해준다는 등 달달한 선심공약 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국민들 일하기 싫어지게 만든다는 생각이 앞선다.
노동시간이 적어지면 개인의 삶의 질이 높아져 좋겠지만, 생산성이 적어지면 급여도 적어져야 하는데 급여를 적게 받아 삶의 질이 좋게 생활 할 수 없을 것이라 급여는 더 달라할 것이니 경영자와 근로자간에 관계는 불협화음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겪은 IMF시기 눈물을 머금고 직장에서 구조조정을 하여야 했고 감원 대상이 되면 직장을 떠나야 했지만 남아있는 사람은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이었고 한솥밥을 먹던 동료를 보내며 내 급여를 나누어서라도 함께 일하자고 한 사람들이 없었다는 게 아쉽다. 그때 어렵더라도 함께 넘을 수 도 있었던 고비였을 것이다.
사람은 일없이 살 수 없을 것이다. 일하면서 성취욕을 느끼고 일에서 보람을 찾으며 일을 함으로서 살아간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었다면, 그는 인생을 멋지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할것이다.
ㅡ 홍천인터넷 신문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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