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도익 <칼럼>

거울 속에 아버지 모습

돌 박사 2018. 6. 27. 22:22

 < 석도익  인생칼럼 > 

                                     거울 속에 아버지 모습

                                                                                                                      

 

  시계가 빨리 돌아가는 것인지, 세월이라는 것이 빨리 가는 건지, 누구나 바쁘다고들 한다.

그 와중에 어쩌다 거울을 보게 되면, 아주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거울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

                       

                                                                               소 설 가        석  도  익

  오래전이지만 그때는 60을 갓 넘기신 나이에 돌아가신 형님이 거울 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 다시 보니 그건 형님이 아닌 바로 내가 나를 보고 있는 건데 내가 나를

몰라보고 형님이라고 놀라다니 쓴 웃음만 나왔다.

내가 어느새 형님이 되어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이를 잊고 바쁘게 살았다는 것인데,

모습이 되기까지 무었을 했고 무었을 남겼는가? 내가 형님같이 되어있는 지금, 형님같이

마음씀씀이 넉넉하게 가솔을 살피고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고, 넓은 그늘을 만들어

주었는가? 나에게 다시 묻곤 했다.

  어떤 날은 내가 지금 몇 살인지 정확하지 않아서 올해의 년도 숫자에 출생년도를 빼고

배냇나이 하나를 더해서 우리나이로 산출해보는 바보짓도 가끔은 하면서 사는데 내가 왜

이리 멍청해 지고 있는지 실소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은 거울 속에 형님이 아닌 아버지가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

아버지는 엄하시면 서도 인자하셨고, 모습전체에서 풍기는 위엄이 학자 같으셨는데, 지금의

거울 속에는 아버지 같긴 한데 덕도 없고 푸근함도 보이지 않고 전체에서 풍기는 위엄 같은 건

찾을 수 없는 그냥 늙어가는 한 남자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이 지금의 나인데 벌써 아버지의 모습으로 다가와 있다니 가슴은 영글지 않은 쭉정이

 매달고 찬바람에 내맡겨 휘둘리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순간모습은 모진세월 고생의 흔적 같던 얼굴에 잔주름이 곱게 펴지면서,

홍조가 띄어지고 엷고 평화로운 미소가 번지던 모습은 지켜보던 모두를 편하게 만들어 주시면서,

눈을 조용히 감으시는 것으로 태초에 오신 그곳이 어딘지는 몰라도 그곳으로 돌아가셨다.

  거울 속에 나를 아버지로 착각하듯이 나는 아버지 로 살고 있다. 조상을 챙기고, 아내와 함께

부모를 모시고, 아이들을 낳고 기르고 가르치고, 든든한 기둥으로 비바람 막아주는 지붕과 벽이

되어 제구실 제대로 하며 살아왔는가? 혹여 비바람이 새서 가족이 추위에 떨게 하지나 않았는지?

든든한 기둥노릇을 못해서 가족이 불안하지는 안았는지 이웃에라도 덕을 베풀며 살았는지,

나의 아버지처럼 최고의 아버지로 살지 못한 것 같은 죄책감에 가슴이 어눌해 진다.

  언제 보아도 당당한 모습에 내가 있는 거울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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