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도익 <칼럼>

대가 끊겨가고 있다.

돌 박사 2018. 5. 10. 20:38
2018-05-10 오후 4:01:39 입력 뉴스 > 홍천뉴스

[석도익 칼럼] 대(代)가 끊겨가고 있다.



어둠이 거치는 새벽, 시내 도로 옆에는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채소 등을 재배하는 고랭지 지역일터로 가는 용역차를 기다리고 있다. 농번기에 읍내 할머니들의 일손으로 농사일을 하기 때문이다.

 

                                        소설가  석 도 익

저 할머니들이 점차 일을 못하게 되면 일손이 많이 가는 채소농사도 못 지을 것 같아 염려되었는데, 속담에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말이 있듯이 요즘에는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된다.

 

점차 줄어드는 할머니들의 대체인력으로 태국이나 베트남 필리핀 등지에서 찾아온 젊은 남녀들이 일손부족을 해결하고 있어 다행스러우나 날이 갈수록 귀농귀촌으로 가구 수는 늘어나는데 경작지는 줄어들고 학교도 폐교수가 늘어나는 실정이다.

 

남아선호사상이 특별해서 대를 이어야 한다는 절대적 사명에 외아들이면 병역의무에서도 의가사제대 시키던 때도 있었건만, 장가도 못가고 있는 노총각들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지난날 지역적으로 성비 균형이 맞지 않아서 강원도에서는 먼 호남지역에 처녀를 찾아 이여주기도 했는데, 농경에서 산업사회로 전환되면서 농촌기피현상은 더욱 심화되어 농사짓는 총각들은 결혼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는 전쟁 다음으로 위험한 사태에 직면하였으나 천만 다행으로 국제결혼이 비상출구역할을 담당했다.

 

우리 문화화 비슷한 중국조선족에서부터 동남아 국가와 종교로 연결된 일본에서 국제결혼을 하고 시집을 와줌으로서 다문화시대를 열어가고 있어 인구나 사회질서에 큰 역할을 감당해 낸다고 본다.

 

그러나 민간주도 상업이라 말도 많고 탈도 많아져 국제결혼도 둔화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라 우리가 고민하는 현실의 벽은 여전히 단단하고 높이 있다.

 

산업사회로 잘살게 되니 먹 거리 가치를 모르게 된다. 돈만 가지면 뭐 던지 살 수 있으니, 생명의 귀중함까지 잊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생명이 있는 것은 그 생명을 유지하기위해서는 먹어야 한다.

 

제철소에서 쌀을 생산할 수 없다. 다만 철을 생산해서 팔아야 먹 거리를 살 수 있는데, 그 먹 거리는 오로지 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생명은 농어촌에 있고 그곳에 살고 있는 농어민에 의해서 생산되어지는 것이다.

 

먹 거리를 생산할 수 있는 터전과 농어민이 없다면 모든 게 끝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인구 상황에 지자체에서는 자구책으로 출산장려에 나섰다. 출산장려금을 주는 지역이 늘어나니 장려금 많이 주는 곳으로 이주해서 아이를 낳아볼까? 하는 산모도 있단다.

 

또한 귀농귀촌으로 인구유입을 꾀하며 정착금까지 보조하며 손짓하기에 바쁘다.

 

그러나 농촌에는 이른 아침 새벽을 알리는 닭울음소리나 펜션에 매어놓은 개가 짖는 소리가 가끔 들릴 뿐 아기의 울음소리는 오래전부터 듣기 어렵다.

 

출산장려도 좋지만 결혼안하고 아기 낳을 순 없다.

 

국제결혼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 결혼의 꿈도 접어버린 노총각에게 결혼비용이라도 보조해 주는 정책을 세워서라도 농촌총각 장가보내는 것이 먼저 선행된다면 농촌도 활성화 되고 인구정책에도 기여될 것 같은데 어느 곳에서도 손을 쓰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지난 시절에는 종교에서나 사회단체에서도 합동결혼식 등을 주선하기도 했었건만, 사회가 진보되어서 그런지 개인적인 사생활이라 접근하기 곤란해서인지 신문구석에 미담조차 나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가문에 대를 이어가고 농촌에 활기와 희망을 꿈꾸게 하기 위해서 정부나 지자체에서 적극적인 중매정책이라도 펴나가야 할 때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