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선열들의 흘린 피가 헛되지 않아 1945년 8월15일 광복을 맞이했지만, 세계열강에 의해 다시 38도선으로 잘린 남과 북의 운명은 이때부터 서로 이념과 사상을 달리하고 반대방향으로 정신없이 달려왔다. 소설가 석 도 익 자유민주주의에 밭을 일구고 자본주의 싹을 심어 가꾸고자 의견 분분했던 대한민국과는 달리 인민민주주의를 표방하고 공산주의 붉은 사상으로 무장한 북한은 남한을 적화하기위한 야욕으로 “남조선인민을 해방시킨다.”는 미명하에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남침한, 동족상잔의 천추에 씻을 수 없는 원한과 치유할 수 없는 이산의 아픔을 준 전쟁을 일으킴으로 아물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유엔군의 참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자 흡혈귀 같은 침략자 김일성은 휴전을 요청하여 휴전선이 다시 그어지고, 서로 마주보며 총을 겨누는, 일촉즉발의 세월을 70여년이나 보내왔다. 그간 숨고르기를 하며 재침공을 준비하고, 대를 이여 온 김 씨 왕조는 틈만 있으면 무장공비를 침투시키고 여객기를 폭파시키는 등 크고 작은 침략을 감행해왔고 사사건건 심통을 부리면서도 평화의 가면놀이 또한 잊지 않았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을 동시에 발표하였는가 하면, 김대중 대통령도 노무현 대통령도 평양으로 가서 정상회담을 했으나 공염불에 그쳤고 어렵사리 만들어내는 남북 문화 예술 체육교류도 반짝 봄볕인가 하다 도로 겨울의 살얼음판의 정국으로 이끌어가는 북한정권은 시간과 돈을 벌어서 인류평화의 적인 핵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하였다. 작금에는 평화올림픽이라는 구호아래 휴전선을 넘어 땅 길로 바다 길로 하늘 길로 북한의 체육인 예술인 정치인들이 무리지어 넘어오고 넘어갔다. 금방이라도 통일이 되려는 분위기지만, 남한과 북한사람이 함께 부르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은 우리 국민이나 북한 인민들의 노래일 뿐 위정자들은 우리의 소원인 통일을 선동정책에 이용하기도 한다. 남과 북이 잘리면서 우리는 서로 반대방향으로 70여년을 달려갔으니 그 간격은 150여년의 세월과 거리가 벌어졌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것은 옛이야기다. 하루가 무섭게 변하는 세상이고 형제사이에도 세대차를 느낀다는데 우리는 사상마저 각기 다르게 한 세기 반의 격차를 해소하기란 쉬운 것이 결코 아니다. 붉은 속마음을 감추고 하얀 평화의 장갑을 끼고 청하는 악수를 덥석 잡고 반가워해야 하는지 염려스럽고. 부모자식 간에도 재산 때문에 다투는 세태에, 자본주의 빠른 계산으로 손익분기점을 따지지 않고 같은 민족끼리라는 감성으로 포옹할 수 있는지도 의문스럽다. 어찌되었건 오늘도 언제 침략할지모를 휴전선에서 경계를 하고 있는 병사들의 적은 북괴이고 놈들이 주적임에는 변할 수 없는 사실인데도 아픔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들이 자칫 섣부를 평화무드에 무방비로 노출될까 염려스럽다. 혹여 6,25전쟁을 누가 일으킨 건지 지금의 적이 누구인지 모르면서 총을 든 병사는 없지 않나하는 국가이념상실과 안일무사 속에서, 국론하나 통일하지 못하면서 남과 북이 하나 되는 통일을 부르기에는 북쪽의 핵무기를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6.25전쟁의 상처위에 다시 긁혀지는 상처가 더 아프고, 용서하기에는 아직도 응어리진 가슴이이지만 다 같은 우리민족이라 얼싸안고 통일을 노래하고 싶지만, 통일을 이야기하기 전에 이산가족만이라도 서로 오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 세계 어디에도 통화할 수 있는데 안되는 곳, 편지도 보낼 수 없는 곳 여행도 못가는 곳 그곳이 우리의 땅, 그것도 우리는 하나라고 같은 민족끼리라고 하는 북한이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 너무 멀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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