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도익 <칼럼>

나이를 어디로 먹는가

돌 박사 2018. 2. 3. 10:58

< 석도익 인생칼럽 >

                             

                       나이를 어디로 먹는가


                        

                             소설가  석도익


 지구상에 모든 생물은 살아있는 동안에는 똑같이 나이를 먹는다.

나무는 나이테로 나타내고 사람은 주름살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나이 드는 모습이나 느낌은 천태만상이다. 어려서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서너 살씩 나이를 올리곤 하던 사람도 정작 장년기에 접어들면 나이를 줄이든가 답변을 회피하는 경우도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던 일 년에 한 살씩 더해가는 나이는 어디로 먹는 것일까?

또래 아이들보다 키가 잘 자라지 않던가. 어울리지 않게 어리광을 부리는 아이에게 너는 나이를 어디로 먹니? 라고 놀리는데 정말 듣기 싫은 말이다. 또한 어른이 어른같이 행동하지 못할 때 나이를 어디로 드시는지 모르겠다.”라고 본인이 없을 때 흉을 보기도 한다.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나이를 먹기 시작하는데 어릴 때는 자신을 알리기 위해 울음을 배우는 것이다.

유년에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겸손을 배우는 것이다. 부모를 알고 형제들과의 서열을 익히고 친구들과 평균에 균형을 잡고 선생님의 가르침에 존경을 느끼게 된다.

청소년기에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배려를 배우는 것이다. 무리에서 질서를 지키고 거리신호등에서 약속을 익히고 너와 내가 우리라는 것을 알고 상대를 이해한다.

남을 위해 일해야 하는 장년기에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관용을 배우는 것이다. 나를 위하여 일하지만 결국은 다 남을 위하여 일하는 보람을 느끼며 베풀고 포용한다.

등이 가려워도 내가 긁을 수 없는 노년에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사랑을 배우는 것이다.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남을 사랑해야 그가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다는 것을 늦게 깨우치게 된다.

특히 노년에 나이는 얼굴로 먹는다. 중년에 접어들면서는 자신의 얼굴에 변화를 책임져야 한다. 자애로움과 지혜와 덕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운 모습이나, 욕심과 심술 고집으로 굳어지고 일그러진 모습이 자신의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무거워진다는 것이다. 마음의 창고 속에 달콤하고 새콤하고 애틋한 추억의 과일들이 가득 채워진다,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가벼워진다는 것이다. 욕망의 나무에 잔뜩 열려있던 알찬열매들을 조용히 내려놓고 한없이 가벼운 깃털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인생의 후반기를 맞이한다는 것은 매우 축복받은 일이다. 나무에 싹이 나고, 꽃이 피어나고 열매를 맺듯, 사람도 꽃 피는 젊은 시절에 치열함을 견딘 후 결실의 달콤함을 맛보는 것이 마땅하다. 나이든 사람의 지혜와 성숙이 깃든 인생은 잘 익은 열매처럼 이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의 순발력과 패기와, 늙은 사람의 경험과 지혜가 어우러진 세상이야 말로 가장 이상적인 사회에 모습이 아닐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