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도익 <칼럼>

말도많고 탈도 많았던 한해를 보내며

돌 박사 2017. 12. 24. 18:18

 

(석도익 칼럼]말도 탈도 많았던 한해를 보내며

 

2017-12-24 오전 11:42:54 기사입력

 

단기로는 4350년 서기는 2017년의 한해가 저문다. 참 세월은 빨리도 간다고 느껴진다.

 

세월을 보내는 시계가 1초의 간격으로 돌아가는 시간 뒤에는 수많은 역사를 기록하며 오늘 여기까지 왔다.

 

서양속담에 「시간은 금이다」라는 말이 있다. 동서고금을 통해 너무나도 잘 알려진 교훈이다. 금같이 값지고 귀하며 소중한 것이란 말일 것이다.

 

돈이나 토지, 건물 같은 것들은 일시적으로 잃었다 할지라도 다시 되찾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엄청난 돈이 있을지라도 절대로 되찾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시간」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도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다. 이 지나가는 시간은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다.

 

그러므로 금중에서도 황금이나 백금보다 지금이란 시간이 가장 소중한 것이다. 그 귀중한 시간을 한꺼번에 많이 쓰지 않고 아껴 쓰려고 1년을 12달로 나누고 한 달을 30여일로 나누며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고 다시 한 시간을 60분으로 나누며 또다시 1분을 60초로 나누어 1초라도 헛되이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올 한해 1년 365일 시간으로 따지면 8,760시간이고 분으로 한다면 525,600분이고 31,536,000초가 부지런히 움직이었는데 그 많은 시간을 하루도 즐거움 없이 지냈다는 생각만 든다.

 

시간은 시간자체로는 인식되지 않는다. 사건이 있어야 그 때를 잊지 않고 기억되는 것이다.

 

비행기를 타던 고속전철을 타면 시간이 엄청 빨리 간다고 느낀다. 즐거운 시간은 언제 갔는지 모르게 빨리 가고 괴로운 시간은 참 더디게 흐른다.

 

세월호의 이름만치나 세월을 슬픈 나날로 뒤흔들고, 정치권의 권력다툼소용돌이 속에 국론은 갈래져 이정표 없는 길거리에서 국민의 욕구는 광장이나 인터넷상으로 분출해 냈다.

 

입으로 외치고 글로 퍼붓고 주먹을 높이며, 이리몰리고 저리 휘청대는 군중은 진실도 사실도 질서도 찾기 힘든 혼돈의 시기를 보내야만 했던 한해였다.

 

“이게 나라냐?” 라는 말이 화두 되었던 자학의 함성! 누가 한 말인가?

 

사람은 가정을 가지고 사회를 이루며, 국가라는 집이 필요함으로 함께 살아가고자 국가라는 집을 세웠다. 그러므로 그 집에 주인은 국민이다. 그런데 내가 사는 집을 “이게 집이냐?” 라고 할까?

 

우리나라는 반만년의 세월에 수많은 외침에도 굴하지 않고 나라를 지키고 세우기를 계속 하면서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이어왔다.

 

단 한 번도 남의 집 셋방이나 전세 집에서 살아 본적이 없는 오롯이 내 집을 가지고 가꾸며 지키고 살아온 그런 민족이며 국민이었다. 딱 한번 나약한 군주와 아첨무리 때문에 일제에 잠시 나라를 빼앗긴 적이 있었기에 아직도 이 아픔의 상처가 깊게 남아 있다.

 

그런 나라의 사람 입에서 “이게 나라냐?” 라는 자학의 목소리가 나오다니 진정 이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국민의 소리일까? 아니면 정치인의 선동구호였을까? 의심스럽다.

 

하루도 쉬는 날 없이 광장에는 크고 작은 시위와 집회 속에 독설의 고성이 넘쳐나고, 독자나 시청자 수보다도 많은 자유를 보장받은 언론인 신문 방송 인터넷까지 확인되지도 않은 뉴스를 만들고 확대하여 길 잃은 국민을 혼란으로 몰아갔고, 정치권은 패거리 이익을 위해서 이 기회를 요리하기 바빴으며, 평등하고 엄중하게 집행해야할 법이 없어 보이는 하루하루가 연속인 한해였다.

 

반만년의 역사에 홍익인간을 본으로, 충 효 예덕을 행하며 살아온 동방의 나라에 민족이 작금에 와서는 민족성마저 변해가고 있다.

 

내 생각과 같지 않으면 무조건 아니고, 모든 것은 내 이익이 있어야 하며, 남을 밟고 올라서려는 개인과 집단의 이기주의는 존경의 언어를 말살시키고, 포악한 언어만 난무하다.

 

따듯한 포용과 위로의 말은 귀하고 살기어린 폭언과 험악하고 포악한 욕설은 차마 귀에 담지조차 민망한데, 저질스런 욕설과 독설은 공중에 퍼지고 글로 도배되어 온 나라를 오염시키고 이를 후세가 따라한다.

 

비가 쏟아지더라도 경박하게 뛰지 않는다는 여유와 평화로움은 다 어디가고 무엇이 그리 급해졌는가?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포용과 관대함은 어디가고 엎어진 자에게 더 많은 돌을 던지며 온갖 욕구불만을 분출하는 살의는 어디서 온 것인가?

 

내 집에 찾아온 사람은 거지라도 손님으로 대해주던 그 따듯함을 어디로 갔단 말인가?

 

상가에서 상주의 슬픔을 함께 울어주던 그 선한 눈물은 지금은 다 말라버렸단 말인가?

 

책임마저 너무 무거울 것 같으니 들고 있거나 안지 말고 지고 있으라던 (책임져라. 책임진다) 그 넓은 아량은 어디에서 잃어버린 것일까?

 

사람이니까 실수도 있고 잘 못할 수 도 있다. 경험을 했느니 앞으로는 그런 일 없을 것 아닌가, 앞이 중요하지 지나온 과거가 앞을 망쳐서는 안 될 일이다.

 

지나온 어제를 거울을 보듯 바라보며 오늘은 더 잘하는 게 바람직하지 지나온 과거를 들추어내서 잘잘못을 질책만하다가 언제 앞으로 나갈 것인가?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언제 터트릴지 모를 핵폭탄을 가지고 위협하고 있는 전시다.

 

어제의 안 좋은 일은 다 묻어버리자. 그 땅위에 오늘의 씨를 뿌리고 튼실하게 키워 나가야 할 때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지금이다. 화해하고 손잡고 함께 가야할 4351년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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