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단편)

주전골 상평통보

돌 박사 2017. 3. 30. 23:26

        주전골 상평통보




                    주전골 상평통보

                                                                                                   석 도 익

 

  단풍을 곱게 물들이려는지 낮게 내려앉은 잿빛 하늘은 설악 대청봉과 맞닿아 있다. 울긋불긋 떨어진 낙엽은 바람이 몰고 다녀 고운 색 바래고 으스러져가며 낮은 곳으로 임하고, 계곡을 덮어 차갑게 흐르는 물에 실려 여행을 떠나거나 한사코 떠나지 않으려고 뿌리위에 엉겨 스스로 겨울 덮개가 되려한다.

  늦가을인데도 이곳 설악산은 일찌감치 겨울에 접어들어 싸락눈이 빛바랜 낙엽위에 떨어지며 샤그락 거리는데 그 낙엽을 밟는 거친 발자국 소리가 눌러버린다.

  무명바지저고리에 행전을 하고 무언가 무겁게 담긴 주루목바랑을 짊어진 사내가 성큼성큼 흘림골을 오른다. 발걸음을 보아선 이곳을 한두 번 다녀본 길손이 아니라 이곳에 터를 두고 다니는 사람이다. 두툼하게 쌓인 낙엽을 밟고 올라가면서도 의식적인 듯이 발자국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며 뛰다시피 걸어간다.

  그의 주루목 안에서는 힘차게 내딛는 발걸음 마다 쇠 부딪치는 고운 소리가 나서 조용한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소리와 어울려 풍경소리같이 퍼진다,

양양앞바다에서 파도를 타고 설악산으로 몰려온 짭짤한 해풍은 산기슭을 타고 오르며 울창하게 서있는 잡목에 갈가리 찢기어져 날 이선 팔랑개비 바람이 되어 마지막 까지 남아서 매달려있는 갈잎을 떨구어 비행시킨다.

  다섯 가지의 청량한 맛이 나온다는 오색약수를 호리병에 담아 움켜쥐고 가파른 바위계곡을 오르다 흐르는 땀을 옷소매로 훔치고는 물병을 들어 한줌마시면서도 여전히 발걸음을 옮기는 사내는 어느덧 기암절벽을 이룬 흘림골 끝 계곡인 4부 능선 음습한 골짜기로 기어 올라간다.

그가 올라간 곳은 계곡에서는 보이지 않던 후미진 절벽에 조그맣게 뚫린 동굴이 있다.

그는 돌덩이 하나를 주워서 동굴 입구의 절벽바위로 던지니 잠시 후 동굴 안에서 한 사내가 나온다.

어이~ 쇠돌이 왔는가?”

~ 장호원 어르신 그간 별고 없으셨지유

어이구 이 무거운걸. 그 먼데서 예까지 지고오기가 힘들었겠네. 이리 주게나.“

양을 많이 못 구했어유 놋쇠 구하기가 녹녹치 않아서유

어서 들어가세 장두님이 많이 기다리고 있네. 쇠가 다 떨어져서 요새 일도 못하고 있었지

동굴 입구는 조그마한데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어져 마치 큰 부잣집 안 같이 느껴진다.

여러 갈래로 나뉘어 골목을 이룬 곳에서 각자 자기 일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중앙에 안마당같이 넓은 공간으로 모여와서 쇠돌라는 젊은이를 반긴다.

쇠돌이 욕봤네. 그래 어려움은 없었나? 혹시 관가 놈들에게 눈치 채게 하진 않았지?”

어두운 동굴 안인데도 눈에서 광채가 나는 장두라는 사람이 돌쇠에게 칭찬과 염려를 한꺼번에 얹어서 말하며 그의 어깨를 두드려 준다.

허구한 날 이 어두침침한 동굴 안에서 두문불출하다보니 밖에서 바람만 동굴로 들어와도 신선할 판인데 같이 있던 돌쇠가 놋쇠를 구하러 나갔다가 왔으니 밖에 소식이 듣고 싶은 거다.

이 동굴에는 모두 다섯 명이 함께 살고 있다, 아니 산 다기 보다는 일을 한다. 젊고 민첩한 쇠돌이가 주로 밖에 나가서 먹을 식량이나 일을 하기위한 놋쇠 숱 등을 구해오며 스스로 힘든 허드렛일을 맡아서 하는 제일 어린사람이다.

그래 쇠돌인 그 먼데를 이렇게 며칠 만에 댕겨 오다니 대단허이

장호원 이라는 사람은 장두가 데리고 온 사람으로 하인 같은데 장호원사람인지 이름이 장호원인지는 모르지만. 장두를 보고는 대감이라고 부르는 그는 먹을 음식을 만들고 옷 등을 빨고 꿰매는 일을 전담으로 하며 동굴 밖을 수시로 관망하며 보초를 게을리 하지 않는 그가 밖에서 돌아온 쇠돌이가 부러웠는지 동굴밖에 망을 접어두고 들어와서 하는 말이다.

이번엔 좋은 쇠붙이를 제대로 모아왔네 이정도면 올겨울에 500량은 만들껄세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엽전을 만들어내는 주전장이다. 그는 한양 조정 호조주조소에서 상평통보를 만드는 일을 했는데 금전을 빼돌린다는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던 중 장두의 도움으로 도망쳐 나와 이곳에서 장두와 후일을 도모하며 엽전을 만들고 있는 사람이다.

밖에 나가서 이뿐 처자도 많이 보았겠네.”

주전장의 친척벌이 된다는 첨지기가 실눈을 뜨고 돌쇠에게 농을 건다. 그는 주조장을 도와 일하면서 자기가 있어야 모든 것이 돌아간다고 생각하며 자기도취에 빠져있는 사람이다.

자 모처럼 우리 다 이렇게 모이고 준비도 다되었으니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일하기로 하고 오늘은 모처럼 술이나 한잔하고 쉬도록 하게나.”

장두의 말에 모두들 좋아라하며 장호원 어른은 안주와 먹고 남은 밥들을 모아 만들은 술을 가져온다.

둘러앉은 다섯 명의 사나이들은 하나같이 건장하고 야망이 번뜩인다.

장두가 술 사발을 높이 들고서 위엄 있게 한마디 한다.

자 한잔 마시세 그동안 고생들 했네. 이제부터 우리는 맡은바 대로 각자 일을 해낸다면 내년 춘삼월이 되면 우리는 부자로 살 수 있는 돈이 만들어진다. 이제까지는 시험 삼아 만들어 그간 돌쇠이가 그것을 사용해서 먹을 것 만들 거 다 사보았는데 성과는 아주 좋았다고 본다.”

참 쇠돌인 이번에도 우리가 만든 상평통보를 쓰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 나는 주로 객주에서 물건을 한 냥으로 조금사고 전이나 푼으로 거스름 받아서 그 돈을 쓰니까 들킬 리 없지요.”

그래 잘했다. 우리가 만드는 건 한 냥짜리니까 귀한 놋쇠로 전이나 푼은 만들 수 없네. 상평통보는 조정에서나 각 지방관아주조장에서도 만들어 내니 우리가 있는 이곳을 들키지만 않는다면 아무 염려 없이 소기에 목적한 돈은 만들 수 있을 것 같으니 각별히 유념하도록 하시게나.”

모두들 장두 말에 힘을 얻어 의기가 충천하다.

그래 쇠돌인 밖에 나가서 뭐 주워들은 이야기는 없었는가?

주조장이 의미 있게 웃으며 말한다.

예 별로 소식 될 만 한 건 없구유. 양양객주에서 재미있는 이야길 들었는데 이야기 해 드릴까유?”

쇠돌이는 목마른 김에 술 한 사발을 들이킨 터라 주기가 기분 좋게 올라서 이야기를 주절주절 꺼낸다.

이곳 양양에는 이런 얘기가 있대유

때는 조선조 중기쯤이라는데 임금님이 이조판서에게

과인은 요즈음 왜 그런지 기운도 업꼬. 밤이 즐겁지 않다.“

이 말을 들은 눈치 빠른 이조판서의 머리에 먼~가가 번쩍 들어 오는게 있어 강원목사에게 급히 파발을 띄웠다.

"임금님이 기력이 쇠하시니 해구신 2개를 구해서 한 달 이내로 보내라!"

이 전갈을 받은 강원목사는 머리에 불이 번쩍 나서 강릉감사에게

"임금님이 기력이 쇠하시니 해구신 3개를 구해서 20일이내로 보내라!"

이 전갈을 받은 강릉감사는 몸이 달아서 양양현감에게

"임금님이 기력이 쇠하시니 해구신 4개를 구해서 15일 이내로 보내라!"

이 전갈을 받은 양양현감, 엉덩이에 불이 붙어 물개잡는 어부를 불러

"임금님이 기력이 쇠하시니 빨리 물개를 잡아 해구신 5개를

10일 이내 가져오지 못하몬 목을 날려 버리겠다.‘

그 때는 겨울이라 항이 자주 얼었다는데, ~바다에서 물개를 잡아 해구신을 바치라니. 바다에 나가야하는 어부는 해골을 싸매고 누워 일어나지도 못하고 끙끙대고 있는디. 문병온 한 친구 어부가 귓속말로 몇 마디 일러주니 그 어부 얼굴에 금방 화색이 돌더니 벌떡 일어나 당장 실행에 옮겼것다.

어부는 5개를 구하여 하나는 금박지에 정성스레 싸고 나머지 4개는 은박지에 싸 양양현감에게 올리면서

"바다가 얼어붙어 물개는 한 마리밖에 잡지 못하였고 나머지 4개는 개X 입니다."

양양현감은 어부에게 후사하고 금박지와 은박지에 싼 것들을 풀어서

비교해 보니 전혀 다를 바 없어 진짜라는 금박지에 싼 것은 지가 처먹고, 나머지 중 한 개는 다시 금박지로 싸고 3개는 은박지로 싸서

강릉감사에게 보냈다.

강릉감사 또한 금박지에 싸인 것은 지가 처먹고, 나머지 중 한개는 다시 금박지로 싸고 2개는 은박지로 싸서 강원목사에게 보냈고 강원목사 또한 금박지에 싸인 것은 지가 처먹고, 나머지 중 한 개는 금박지로 옮겨 싸고 1개는 은박지로 싸서 이조판서에게 보냈다.

이조판서도 똑같은 놈이라.... 금박지에 싸인 것은 지가 처먹고, 나머지를 금박지에 옮겨싸 임금님께 바쳤는디...

예로부터 병은 맘에 달린거고 정력 또한 맘먹기가 9할 인지라... 다행히 임금님은 그걸 먹고 회춘이 되었다나...

어느 날 임금님이 이조판서를 불러 영을 내렸다.

"수고했다. 이판이 준 약으로 회춘이 됐으니 추운 날 고생한 어부를

대궐로 들라 하라."

마침내 며칠 걸려 대궐에 도착한 어부는 임금님으로 부터 치하를 받고 하사품도 잔뜩 받아 지고 한참을 걸어 언덕에 오르더니 대궐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또 모르는 넘들이 정치를 한다.“

 

세상이야기로 동굴 안은 훈훈한데 어두워진 계곡으로 횃불이 줄지어 오르고 이후 이 동굴은 입구조차 허물어 막혀버리고 세월이 흐른 후 주전 골이라고 불리는 이 계곡에서는 녹슨 상평통보 엽전이 가끔 발견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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