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단편)

애랑의 전설(5분소설)

돌 박사 2010. 10. 1. 09:50

 

 

< 5분 소설 :  삼척시 특집)

                                                      애랑 의 전설

                                                                                              석 도 익                             

  저 멀리 바다 끝은 파란 하늘과 맞닿아 하나의 선이 되어 있다. 오늘따라 바람 한 점 없는 해맑은 날씨에 돛을 내린 어선 몇 척이 먼 바다까지 나가 고기를 잡고 있는 모습이 한가롭다. 다른 때 같으면  풍악을 울리며 만선으로 돌아올 것 같으나 요새는 전혀 예상 밖으로 고기가 전혀 잡히지 않는다.

 애랑이 처녀몽당물귀신이 되어 원망을 하는 건지 그 풍랑사건 이후로는 이 마을에 배를 가지고 있는 집치고 만선으로 들어온 적이 한 번도 없어 모두들 한숨짓는 소리만 들려올 뿐 풍악이 끊긴지 오래되었다.

 황선주는 아무래도 풍어제를 지내던지 애랑이 원혼을 달래는 굿이라도 해야 한다고 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오늘도 덕배는 바다만을 바라보며 정신 나간 놈처럼 이렇게 몇 달 며칠을 보내는지 모른다.

 덕배가 앉아있는 이 바위벼랑 끝으로는 해안선을 따라 울퉁불퉁 굽이굽이 돌아가며 기암절벽으로 되어있고 가까운 바다에는 수많은 바위섬이 지그재그로 울근불근 솟아있어 조그만 배도 근접하기 어려운 해안이다. 수심 또한 깊어서 물질에 익숙한 사람이라야 엄두 내어 들어가는 바다다.

 거세게 밀려오는 파도가 바위벼랑과 바위섬에 부딪치고 깨어져 부서지고 퍼렇게 피멍이 들어서인지 밑바닥이 잘 보이지 않는 시퍼런 물이 일렁인다.

 진달래꽃이 애랑이의 입술모양 연분홍 꽃잎을 서로 열며 피던 그 날도 애랑과 덕배는 마을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이곳을 찾았다.

 언제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덕배가 휘파람으로 애랑을 불러내면 살금살금 사립문을 빠져나온 애랑이와 올라와 걸터앉아서 사랑을 나누는 곳이다.

 주위에는 대나무 숲이 이들을 가려주고 길게 굽은 노송이 살짝 덮어주어 이들을 시샘하는 바람도 어쩌지 못하고 비켜가 언제나 포근한 곳이다.

 “덕배는 내가 어디메가 그렇게 좋트래유?”

 “애랑이 몽땅 다래니”

 “에이 그런게 어딧드래유? 난 거기 이거이 제일 믿음직 헌데유”

 애랑의 애교 섞인 투박한 목소리와는 달리 예쁜 손이 살금살금 움직이더니 덕배의 건장한 다리사이 에 정박하고 있는 닷에 머무른다.

 “애랑이는 아직 모를 것 이구만 아무리 풍랑이 일어도 이 닷 만 깊게 내리고 있으면 되니까 믿음직한 것 은 맞구먼유, 그렇지만 자꾸 맨지지 말기요 내는 미치겠단 말이래니”

 “와?” 

 “바보 안고싶으니께 그렇츄”

 “....” 

 “우리 올 가을에 혼례 올려준댔으니까 그때까지는 죽자고 참아야 허는데..."

  덕배와 애랑이는 이 동네 사는 처녀 총각이다. 둘이는 어려서부터 소꿉친구로 자랐고 성년이 되어서는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우정이 애정으로 싹터온지라 이를 동리사람들도 다 알고 있는 처지다. 그런 이들에게 올 가을에 혼례를 올려주려고 양가에서는 부모들이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젊은 남녀는 혼례올린 첫날밤을 생각하며 서로의 체온만을 따듯하게 느끼며 같이 있으면 달아오르는 욕정을 가라앉히느라 애꿎은 바다만 바라본다.

 아침 해가 떠오르면 먼 바다는 붉게 물들며 끓어오르는데 해가 서산을 넘는 저녁노을은 앞바다가 온통 남물이 들고 있었다.

 “내일 낼 좀 저 애바위꺼정 데려다 주드래요”

 “ 그긴 뭐시기하러 갈라구”

 “ 시집 갈라면 준비할게 많다니유. 방물장사가 오면 여러 가지 살려구유”

 “ 그래서”

 “ 뭐시 그래서래유 전복이나 미역을 따 팔아서 돈을 맹글어야지유”

 애랑이 석양빛에 물든 얼굴인 듯 발갛게 수줍은 미소로 덕배를 돌려다보며 덕배의 넓적다리를 살짝 꼬집는다. 수줍어하면서도 할 짓은 다하는 처녀다.

 두 연인을 질투하는 갈매기 한마리가 끼룩끼룩 울면서 주위를 맴돌다 애바위에 둥지를 찾아간다.

  이튿날 덕배는 고깃배에 애랑을 싣고 애바위로 갔다. 물길은 잔잔하지만 바닷속은 시퍼렇게 멍든채 있어 그 깊이를 가늠키 어려운데 애랑을 혼자 두고 가기가 왠지 내키지 않는다.

 “에기서 혼자 물질을 해도 괜찮을까”

 “염려 붙들어 매세유 하루 이틀 한 것도 아니구먼유 이따가 데릴러나 오드래유”

애랑이 맹랑한 것은 덕배도 잘 아는 터라 더 이상 군소리 않고 애랑을 내려놓고 덕배는 집으로 향했다. 오늘 밭을 갈고 콩을 심어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 돌아왔다.

 뒷산자락 밭머리에서는 뻐꾸기소리가 끊기더니 덕배의 밭갈이 소리가 구성지게 메아리까지 합하여 들녘에 울려 퍼진다.

 "이~랴~ 마라마, 우후~ 안소는 힘을 들이지 말고 그냥 돌아서고 마라는 빨리 빨리 돌아 이랑을 타거라 이랴~ 어허~”

 덕배의 밭갈이 노래 소리는 이 동네에서는 정평이 나있다. 굳이 어떤 형식의 노래가 아닌 함께 밭을 갈고 있는 두 마리의 소에게 말하는 형식에 타령의 음을 넣어 구성지게 부를 때는 멀리서 나물을 뜯던 과수댁은 물론 처녀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애랑이 덕배를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인지도 모른다. 사래가 긴 밭을 두서너이랑 갈았을 즈음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덕배는 그저 지나치는 구름이려니 여기며 일을 계속하다보니 검은 구름은 바다가 있는 쪽까지 다 덮어버리고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덕배는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바다에 데려다준 애랑이가 걱정이다.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오는데 바다에는 벌써 거센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애랑이 가있는 애바위에는 이미 성난 파도가 넘나들고 있고 애랑이가 옷을 벗어 흔드는 모습이 언 듯 보였다. 애랑이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덕배는 바닷가에 매어둔 배를 찾아 뛰어갔으나 배는 이미 풍랑에 뒤집혀 있었다.

 덕배는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그러나 집채만 한 파도가 덮치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애당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을 멀리서 발을 구르며 바라볼 뿐이다. 파도는 이미 애바위를 통째로 삼켜버리고 다시 육지를 향해 무섭게 달려와서 덮친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잔잔한 바다와 병풍의 그림 같은 해안의 풍경인데 옆에서 재잘대며 예쁜 숨을 몰아쉬던 애랑은 저 바다 어디에 있는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고 덕배 혼자 언덕에 앉아 애바위에서 물질을 하고 있을 것 같은 애랑이를 찾아 눈길을 떼지 않는다.

 애랑이 부끄러워하면서도 몰래 쓰다듬어주던 덕배의 남근은 닻을 내지지 못하고 방황하는 난파선이 되어 있다.

 바닷가 어촌에는 남자가 귀하다. 고기 잡으러 나갔다가 변을 당하여 남편을 잃고 혼자 사는 과수댁이 많다.  윗동네 아주매 바위도 바다에 나갔다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바위가 되었다는데 원덕 갈남동네 해안 언덕 빼기에는 바다에 데려다주고 다시는 데리고 오지 못한 애랑을 기다리는 덕배의 망부석이 생길 것 같다는 걱정이 동네사람들의 걱정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걱정 보다는 고기를 잡아 생계를 연명하는 어부들에게는 고기가 잘 잡혀야 하는데 지난번 풍랑에 애랑이 돌아오지 못 하고 부터는 고기가 전혀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고기가 잡히지 않는 것은 애랑이 처녀로 물귀신이 되었기 때문에 억울하고 원통한 나머지 몽당물귀신이되어 고기가 잡히지 않게 발거리를 하는 거라는 이야기가 마을 사람들 입에서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마을에 선주들이 돈을 모아 무당을 들이고 천도제를 지내기로 했다. 무당들은 시집도 안간 처녀가 뭉당물귀신이 되었으니 한을 풀라치면 남근모양을 나무로 많이 깎아서 바다로 보내야 한다고 했다.

 동네 남자들에게는 각자 남근을 한 개씩 깎아 오도록 하였다. 남자들은 자기의 물건을 보며 깎았는지 제를 올리기 전에 각자 깎은 물건들을 한데 모으는데 그 형상이 가지각색이라 모두들 웃음을 참지 못한다.

 “하 그눔 참 실헤네 자네꺼 같이 만들었능가”

 “그거 용쓰구 있구먼유?”

 “허 용왕님 따님도 반허겠구먼“

 “ 애랑이도 좋아 헐꺼구먼”

 “ 뭣들하는 것이래유 신성한 제물을 가지구 그러지 말드래유”

 모두들 한마디씩 거들며 끼룩대다가 앙칼진 무녀의 꾸지람에 멀쑥해 진다.

북소리 장구 징소리가 해안의 노송가지를 흔들고 밀려가는 파도에 실려 먼 바다로 퍼지고 오색 천을 나부끼며 무녀들은 작두위에서 춤을 춘다.      "   “휘이~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용왕님께 비나이다. 가련한 중생들은 오직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로 연명하거늘 어찌하여 이렇게 모진 벌을 주시나이까. 여기 처녀의 원혼을 달래려고 제물을 드리오니 젖은 것은 먹고 가고 마른 것은 싸가고 무거운 건 지고가고 좋은 놈은 차고가소 얼쑤~ 우리공덕 살펴주사이다. 얼쑤~ 훠이“  일렁이는 파도위에 제물이 뿌려지고 튼실한 남근들이 둥실 떠서 제 갈대로 흩어진다.

 제를 올린 효험인지 이후 원덕 갈남 앞 바다의 파도는 순해지고 고기잡이 나간 어선은 만선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바위벼랑위에서 애바위를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는 덕배에게 애랑은 돌아오지 않았다. 무녀의 말로는 죽은 애랑이는 제일 좋은 남근을 뀌어 차고 용궁으로 가서 잘살 거라고도 했는데 언젠가 부터는 덕배의 모습도 이 동네에서는 볼 수 없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가고 덕배와 애랑이 사랑을 나누던 바닷가 언덕 송림 속에서 튼실한 송이버섯이 땅을 뚫고 솟아나고 사람들이 만든 거대한 남근들이 하나 둘 세워져 그 힘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바다를 향해 어떠한 거센 파도라도 겁나지 않는다는 기상으로 닻을 내리고 있다.

 이후 삼척시 원덕면 갈남리 마을에는 튼실한 많은 남근이 지켜주는 덕택으로 고기도 잘 잡히고 관광수입도 좋아 부촌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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