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단편)

영랑호 보름달

돌 박사 2015. 10. 19. 21:20

 

                                     영랑호 보름달

                                                                                                    석 도 익

 

 오늘따라 하늘 중간에 두둥실 떠있는 달이 만월이다. 영랑호 깊은 물 위에도 보름달이 환하게 떴다.

호수 둑길 버드나무 그늘 아래 놓인 의자에 앉아 하늘에 달과 호수에 달을 번갈아 바라보던 노인은 슬그머니 일어나서 작은 조약돌을 찾아들고 물수제비뜨듯이 영랑호 수면위로 휘익 던진다.

그러나 피골이 상접한 노인이 던지는 조약돌은 물위를 날렵하게 통통 뛰며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볼품없이 풍덩 빠져버리고, 수풀 속에서 은밀하게 사랑을 즐기던 원앙 한 쌍이 놀라서 푸드덕 날아오른다.

영랑호에 잠긴 보름달도 물결에 흔들리고 백발이 성성하게 날리는 노인의 눈가에는 이슬이 촉촉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아홉 열 열하나 와! 어머! 너무 멋지다. 승일오빠 열하나나 떴어요."

훤칠한 키를 반쯤 숙이고 바른팔을 힘껏 돌려 호수를 향해 던진 조약돌이 잔잔한 수변 위를 통통 튀어가서 수제비를 뜨며 물 찬 제비 같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영랑이가 하나둘 튈 때마다 중계를 하듯이 세다가 소리를 친다.

영랑인 바다가 없는 고장에서 살아선지 전부터 승일이 고향인 속초 바닷가에 가보고 싶다고 노래하듯 하더니 마침 여름방학을 틈타서 속초에서 승일이 와 함께 평양보고에 다니고 있던 숙영이네 집으로 놀러간다 하고 함께 온 것이다.

승일은 학교에서 특별수업으로 문예창작 반에서 활동을 하였는데 다음해 새내기로 영랑이가 들어와서 무척 친한 사이가 되었다. 해맑고 명랑해서 학교 내에서도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는 영랑은 숙영이네 집에 놀러 와서도 승일이 와 단둘이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어제 밤에도 밤늦도록 영랑호에 나와서 언덕 위 풀밭에 나란히 팔베개하고 누워서 잔잔하게 흐르는 은하수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오빠 여기 너무 좋아요. 이렇게 좋으니까 늘 자랑했지?”

“그럼 여기가 네 이름과 같은 영랑호야”

“둘 다 영랑인데 내가 좋아 호수가 더 좋아?”

“에이 그런 질문이 어디 있어?”

“오빤 호수가 더 좋구나. 그렇게 좋음 호수하고 살아!”

영란인 토라졌다는 시늉을 하며 돌아 누어 호수를 바라본다. 호수 저편에는 밤 물안개가 달빛을 타고 오른다.

“내가 영랑호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게. 영랑호는 속초 서북쪽 장사동, 영랑동, 동명동, 금호동에 둘러싸인 둘레 8㎞, 넓이 36만 평)의 자연호수야, 영랑호라 고 한 것은 신라의 화랑인 '영랑이 이 호수를 발견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에 근거하고 있어 주변에는 속초 8경의 하나인 영랑호 범 바위가 있어 범의 형상으로 웅크리고 앉아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영랑호 주변산봉우리에 커다란 바위가 여러 개 모여 있지 이를 관음암(觀音岩)이라고 하는데 전설에 의하면 오랜 옛날 이곳에 수목이 우거지고 인적이 드물 때 어느 도사가 이곳에 수도를 하는 중에 관음보살이 나타나 득도를 도왔다고 하여 관음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단다.”

“신라 화랑 이름도 영랑이야?”

“그래 우리가 배웠듯이 신라에서는 귀족들의 자제를 호연지기를 키우기 위하여 화랑제도를 썼지 그중에 영랑이 같이 멋진 사내가 영랑 화랑이겠지 아마?“

“그래서?”

“이와 같이 영랑호 수변에서는 아득한 옛날에는 화랑과 도사들이 찾아와 수도를 했다고 한단다. 나는 가끔 이곳에 와서 낚시도 하고 거닐기도 하는 유일한 내 마음의 터전이기도 하단다. 특히 영랑이를 만난 후 부터는 이곳이 더 좋아졌어.”

“정말?”

영랑이 승일 쪽으로 바짝 밀착시키며 하는 말에 더운 입김이 목덜미를 자극시킨다.

승일은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영랑이를 내려다본다.

영랑호의 물위에 떠있는 달과 같이 영랑이의 큰 눈망울에도 보름달이 떠있다.

“영랑아~”

승일의 뛰는 가슴이 영랑의 봉긋한 가슴에 밀착되고 달이 떠있던 눈망울도 살포시 감겨진다.

“옵빠~읍. . .”

계수나무 밑에서 옥토끼가 절구로 떡을 찧고 있다는 둥근달도 부끄러워 솜털 같은 구름 속으로 살짝 숨어들었다.

 

“휴~ ”

노인이 긴 한숨을 토해낸 기억 저편엔 1950년 6월24일 토요일에 아버지 생신일이 25일이라 잠시 집에 다녀와야 한다는 말에 짧은 이별도 아쉬워하는 영랑이의 배웅을 받으며 속초 집에 온 것이 영영 이별이 될 줄 그 누고도, 하늘도 몰랐을 것이다.

그로부터 반백년이 흘러가고 소년 승일은 이제 석양에 서있는 노인이 되어있다.

언제든 보름달이 뜨거든 영랑호에 와서 사랑하자던 영랑이가 언젠가는 꼭 여기로 찾아 올 거라는 꿈을 버리지 않고, 휴전선 넘어 고향으로 못간 실향민들이 모여들어서 만들어진 아바이 마을에 들어가서 살아온 것도 영랑이의 소식을 들을 수 있지 않나 해서였다.

억센 북쪽사투리와 강인한 삶속에 묻혀서 함께 지나온 세월, 달 밝은 보름쯤이면 찾아올 것 같은 영랑을 기다리며 호수에 그려진 달을 바라보다 백발이 되었다.

승일노인이 아바이 마을에서 목선하나로 삶을 지탱하며 살아온 기다림의 세월, 그는 언젠가 한밤중까지 영랑호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평안도 사투리의 청년이 한말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젊은이는 여기 혼자 뭐 하러 왔는가?” 라고 노인이 의아해서 뭇자 짧게 깎은 뒷머리를 매만지며

“ 별거 아닙네다. 생전 어마이께서 이곳이야기를 하도 하셨기에 지나던 길에 잠시 들려 본깁네다.

"어머니 고향이 이곳인가 보네?“

노인은 영랑호라는 말에 반기며 다시 뭇자

“일 없습네다.” 하는 말을 뒷등에 남기고 달빛 저편으로 총총히 사라지는 모습을 승일노인은 무었어라도 홀린 듯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가 떠난 설악산 기슭에서 갑자기 수십 발의 총성이 들려왔다. 울진삼척해안지역으로 침투한 무장공비사건으로 동해안지역이 살벌하던 때의 일인데 늙고 힘없어 언제 이승을 떠날지 모르는 지금까지도 그 청년의 음성과 달빛에 어렴프시 본 모습이 영랑이의 모습과 함께 겹쳐져 영랑호 물위에 그려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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