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단편)

삼현에 살았다네

돌 박사 2015. 10. 19. 21:46

 

 

                                            삼현에서 살았다네.

                                                                                                     석 도 익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아등바등 살던 사람들이 세월 앞에선 어쩔 수 없었던지 차례도 지키지 못하고 오는 곳이 이곳 저승이란 곳이다.

그래도 이승에서 옷깃 스친 인연이 있었다고 육신 떠난 혼령들이 여기까지 와서도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하나 둘 모여들어 또다시 무리를 이루고 있다.

이승에서는 이런 사실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지만 어찌 되었건 바람 같은 혼령은 먹고 입는 것에 연연할 이유 없으니 이것만 해도 욕심 따위는 만고에 필요치 않다.

또한 지위나 명예 따위도 없으니, 아웅다웅 삶의 질곡을 겪으며 내손에 움켜쥐어야 하는 성취감이랄까 이런 것도 없고 긴박감이나 짜릿한 흥미도 없는 그저 밋밋한 그날이 그날인 것이 이곳이다.

이승에서 욕심 부려 많은 부와 명예를 가지고 호의호식하며 살던 사람도 육신을 땅에 묻고 가벼운 혼령으로 이곳에 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자신이 이승에서 알던 인연을 찾는 일이다.

“혹시 동면 삼현에 살지 않았소?”

“어떻게 잘도 알아보시네. 내가 살던 곳이 삼거리 장승입구 옆집에 살았지요.”

“맞구먼유 내가 어릴 때 뵈었던 어르신이네요. 백발이지만 꼬창 하시던 어르신이었지요?”

“그러니 내가 잘 모르지 내가 떠날 때 어렸을 터이니까, 여기는 삼현 살던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이승에 정월보름날이면 삼재거리제를 보러가기 위해서 그날은 어떻게 알고 오는지 온갖 혼령들이 다 모이지”

삼현리 살던 혼령둘이 만나 이야기 하는 동안에도 많은 고향 까마귀들이 예서제서 모여들어 그들이 하는 이야기에 동참한다.

“나는 작년에도 보름에 후손들이 내 제사를 모신다 하여 갔었는데 동네 거리제는 못보고 돌아왔는데?”

“이제는 거리제를 안지내는가 봅니다. 그러기에 초청도 없어 생전에 살던 고향에도 못가보지요“

“허긴 자네는 후손이 없어 갈 기회가 전혀 없겠네. 거리제라도 있어야 갈 수 있는데 말이지”

모여든 혼령들이 서로의 사정을 알고 위로의 말도 서로 잊지 않는다.

“이승에서 3백 년 전에 오신 어른의 이야기로는 그전부터 삼현 거리제를 마을사람들이 정성들여서 올렸다고 하드라고요 그 혼령분도 자기가 직접 제주가 되어서 지냈다고 하는데 당시는 동네의 아주 큰 행사였다 합디다.“

이곳에 터주 대감 격인 혼령한분이 점잖게 있다가 안 되겠다는 듯이 한마디 거든다.

“내가 삼현에 살 때 일이었지. 다들 알겠지만 그곳은 홍천 연봉에서 산 고개를 넘어 가는 길과 장전평에서 가는 길이 있고, 삼마치 싸리골에서 넘어가는 길까지 세 개가 있다하여 삼재 또는 삼현(三峴)이라 하였는데 1916년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논골, 무네미, 배터와 방량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삼현리라 했다네.”

“나중이야기는 모르지만 우리들도 거기 살 때는 매년 정성들여 제를 준비했지요. 제주양반은 열흘 전부터 심신을 정갈하게 했다고 하지요?“

“그럼 그랬지 삼재 거리제는 배터 부락에 오랜 전통으로 내려오는 풍속이었다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의 장승을 마을 어귀에 세우고 음력 정월 보름날 동네의 풍년과 잡귀를 물리치는 거리제를 올리는 풍속이 전하여 지고 있었는데 어느 해 이곳으로 와서 얻어먹고 살던 거지가 길에서 얼어 죽은 일이 있었고 또한 자식이 없어 홀로 살다 죽은 사람을 위해 동리에서 함께 제사를 지내주는 무자후제사(無子后祭祀)를 겸했었다네“

“맞아 그때 우리 삼현은 어진이가 셋이나 있다하여 삼현(三賢)이라 했는데 그것은 험하지 않고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 안은 산이 어질고 땅이 비옥하여 양식을 주리지 않게 해주는 들이 어질고 이곳에 사는 사람은 심성이 어질어 삼현이라고 했다지요.”

이승에서도 말 잘하기로 한몫했다는 혼령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이승에 이야길 엮어낸다.

“내가 살았을 때 들은 이야기로는 길에서 굶어죽은 거지들이나 객사를 한 거리 귀신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함이라는 이 삼재거리제를 지내기 위해 쌀과 돈을 마을사람들이 공동모금을 하여 음식을 준비하고 특이하게 개를 잡아 개고기를 올렸었는데 후에는 돼지머리로 바꾸었다고 했어요. 지금은 삼재거리제를 올리던 무속인인 제주가 이승을 떠나자 이어받아 제를 올릴 사람이 없어서 삼재거리제는 올리지 않고 있다 하데요.”

얼마 전에 온 신참인 혼령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란 듯 말하니 다들 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인 듯 다투어 토해낸다.

“허긴 요즘은 자기네 부모도 서로 안 모시려고 형제간에 싸운다지? 그런데 죽은 조상 제사모시기도 바빠서 못한다는데 사는 게 뭐가 그리 바쁜 건지 모르겠지만 생판 남들인 거지나 무자후제사를 지내 준다는 게 어려운 일이지.”

“날이 갈수록 인간 세상에 정이 없어져 간 다네요. 우리 혼령이 상 다리가 휘어지게 차려놓고 제를 올린다 해도 우리가 먹길하나 가져오길 하나? 하나도 축내지 않으니 결국은 산자들을 위한 음식이 아니겠는가 말이요”

“기제사를 모셔 효도 하고 덕을 베푸는 일 모두가 이들 자식들과 후손들이 보고 따라서 자신들에게 행하게 하는 것임으로 모두 다 되돌려 받는 복인 것을 당장은 모르고 사는 거라네.”

삼현출신 혼령들도 근자에 이르러서는 거리제를 지내지 않으니 저승에서 이승으로 갈 수 있는 기회마저 없어져서 후손이 없는 망자나 거리에서 죽은 혼령은 갈 곳이 없는 처지가 되었다. 하긴 외국으로 가버린 자식들이나 제사를 지내지 않는 종교를 신봉하는 자손들이 있어 이승에 갈 기회를 잃어버린 혼령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영웅은 시대가 낳는 거고 열녀 효자는 부모가 만드는 것이라네. 모두가 우리네가 잘 못 살고 온 후회들이 쌓여 혼탁하게 되니 사람의 맑은 마음까지 흐려져 그런 거라네 어쩌겠나. 스스로 깨우쳐 개똥밭에 살아도 이승이 좋은 이유를 알게 되길 바라야지. 우리 후손들이...”

연장혼령의 마지막 말이 길게 떨려 여운지는 저승에도 찬란한 아침을 여는 소리가 저 멀리서 들리는데 분명 닭 울음소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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