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단편)

미친놈

돌 박사 2007. 6. 24. 21:37

 <단편소설>                

                                     미 친  놈


                                                                                    석 도 익

 온통 백색이다.

네모난 벽이 하얗고 하늘을 과감하게 막아버린 천장도 흰색이며 철제의 침대도 흰색 페인트로 얼룩덜룩 발라 놓았다. 시트며 이불 홑청도 흰 천이며  잠금 손잡이가 고장 나서 빼내버리고 고정시킨 라지에터 까지 은백색 락카로 해마다 덕지덕지 발라 놓은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 방안에서 다른 색깔을 찾을 수 있다면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죄수복 같이 푸르딩딩한 색과 산 쪽을 향해 뚫어놓은 쇠창살 너머 보이는 나무며 풀들과 하늘의 변화하는 색갈이 다를 뿐이다.

 버릇처럼 창가에 기대서 산자락을 바라보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행복한 시간이다.

 양지바른 산자락 언덕에는 햇살이 고루 널려있고 누렇게 빛바랜 풀포기가 메마른 잎사귀를 바람에 내맡기고 생을 포기한지 이미 오래되었지만 마지막까지 떨어지지 않으려는 떡갈나무 잎은 안간힘을 쓰며 매달려 있는 것이 어제와 그대로 인 것 같아 실망하면서도  무언가를 열심히 찾아본다.

 이윽고 어제보다는 다른 것을 보았다. 산자락 끝에 높다랗게 쌓아 올린 음산한 벽돌 담장 밑에서 어떤 여인이 혼자서 놀고 있었다. 무엇을 하는지는 자세히 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헝겊 자투리나 사금파리 혹은 조약돌 따위나 흙을 파면서 놀고 있을 것이다. 따듯한 햇빛에 꽁꽁 얼었던 땅도 어쩌면 녹아 있을 테니까…….

 지나간 세월에 겹겹이 묻혀 가물가물 잊혀져가던 추억이 새삼스럽게 생각난다. 지금까지도 그녀를 잊지 못하는 것은 그녀의 아무 욕심 없는 백치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시내 골목어귀 양지바른 담 밑에 쪼그리고 앉아 햇볕을 쪼이고 있었다. 얼굴은 토종닭이 처음으로 낳아놓은 달걀같이 뽀얗고 갸름한 밉지 않은 인상에 미소를 머금고 빨갛고 파란 헝겊 자투리나 아니면 화장품 빈 병들을 만지 작 거리며 놀고 있었다. 

 언제나 그 장소에서 아침저녁 출퇴근 때마다 마주치곤 했는데, 하루는 그녀가 기대선 담 위에서 개나리가 별처럼 노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고 화사한 햇살은 그녀까지 온통 노랗게 물들이고 있어서인지 세수를 한 것 같은 해맑은 얼굴이었다.

 허름한 원피스가 썩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지나치는데 나를 보자 히죽이 웃어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그녀가 배가 고파 보여서 자전거에 매달고 가던 도시락을 그녀에게 주어 버렸다.

 이후 나는 늘 도시락을 그녀에게 주었고 그는 빈 도시락을 시간이 일정치 않은 퇴근 때라도 어김없이 기다리고 있다가 돌려주곤 했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빈 도시락은 언제나 깨끗하게 씻기 워 져 있는 것이었다.

 

?덜커덕!?하고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양이 앞에 쥐 모양으로 몸을 움츠려 자기방어를 취하고 있는 내 자신이 한심하고 원망스러우면서도 어쩔 수 없이 취해지는 행동이다.

 현실의 난폭한 침입자는 언제나 기척도 없이 드나들 수 있는 간호사들이다.

?뭐해!??

 심술이 얼굴전체에 두럭 매달린 듯한?하이에나?라는 별명이 붙은 남자 간호조무사는 대답을 구하지도 않고 나도 대답할 의무도 없는 말을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약 드세요?

 그래도 이 곳에서는 예쁘다고 하는 여우 목도리 김간호사가 늘 다름없이 하얀 알약 한 알을 주고 나간다. 나갈 때도 그들은 방안을 한번 두리번거리며 살펴보고는 화난 놈들 처 럼 문을?꽝!?하고 닫아버린다.

 이 알약을 왜 나에게 매 식사 후에 한 알씩 주는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받아먹었지만 약을 먹고 나면 힘없이 잠들어 버린다는 것을 느끼고 나서는 자고 싶을 때나 먹고 그렇지 않으면 감추어 두었다가 화장실갈때 수세식 변기에 넣어 버리곤 했다. 오늘도 먹을 이유가 없음으로 옷깃 헤진 속에 감추어 넣고 창가로 갔다.

 그사이 담 밑에서 놀던 여인은 보이지 않고 얇은 햇볕만 내려앉아 나무 그림자와 놀고 있었다.

 

 오늘 같은 내일이 계속 이어지는 줄 알았더니 어느 날 돌연 그녀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많은 날들을 그 길을 지나며 그녀를 보려했으나 아이들이 돌을 던지며 미친년이라고 놀리며 쫓아 다녀도 식당밖에 놓인 쓰레기통에서 먹을 것을 건져 먹으며 헝겊 자투리 하나에 행복에 젖어들 것 같던 미소는 지루하도록 나타나주지 않았다.

 막연한 그리움이 엷어 져 가던 어느 날 그 장소가 아닌 생각지도 않은 시장에서 그녀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아이들과 장꾼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그녀는 약장수가 가지고 다니는 원숭이가 구경꾼에 몰려 있는 듯 하다.

 나는 안 볼 것을 본 것처럼 움찔 놀라고 말았다. 그녀의 가는 허리는 어디 가고 커다란 바가지를 엎은 모습의 만삭이된 몸으로 뒤뚱거리며 살기등등하게 사람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냥 어린아이 같이 헝겊 자투리 하나면 하루 종일이라도 즐거워하던 그녀, 언제나 웃으며 악동들이 돌을 던지고 놀리며 쫓아다녀도 싫은 기색 하나 없이 노래를 흥얼거리던 그녀에게 누가 잔인한 돌을 던져 그 해맑은 마지막 미소마저 앗아갔을까?

 그날 한번으로 그녀의 모습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떠도는 소문으로는 그녀가 얘기를 낳다가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부자 집 애를 낳아주고 요양원에 가 있을 거라고도 했다.

 

 내가 이곳 정신요양원에 온 지도 일년이 훨씬 넘었다. 창문으로 보이는 산자락과 하늘의 색깔들이 많이 바뀌었음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따르릉? 벨 소리가 요란하다. 심심하지 않게 울리는 저놈의 초등학교 시작 종 같은 소리가 울릴 때마다 전기에 감전될 때 같은 전율을 느끼며 놀란다. 아마도 미친놈이라 그렇지 않나 해서 더욱 치가 떨린다. 한번 울린 벨은 운동 시간이니 모두 나오라는 신호인 것이다.

 나가고 싶지 않아도 나가야 한다. 여기서는 개인생각 따위는 국어사전 아니 백과사전에도 없다 무조건 복종이다. 따르지 않으면 밥을 주지 않던가. 감금을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하라는 대로 해야만 한다. 강도에게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고 돈을 빼앗긴 소 장사 감서방이 그 일로 인해 정신이 돌아버려 이 곳에 와서도 베개에 끈을 매서 질질 끌고 다니는?소?처럼 끌려서 다녀야 한다.

 감금대상이 아닌 미친놈들이 복도로 꾸역꾸역 나와서 줄을 선다. 두 줄이 다 맞추어지면 더럽게 아랫배가 튀어나온?제주 똥 돼지?라는 별명의 남자 간호조무사가 앞에서고 키가 밀쑥하게 크고 깡말라서 황해도 봉산 수수깡 같은?율부린너?라는 별명의 조무사가 뒤따르는 체육 행렬이 남행 보통열차의 느린 보행으로 건물 뒤의 음산한 운동장으로 이어진다. 다 도착하면 각자  몸을 뒤틀기도 하고 뜀박질도 하며 운동이란 것을 나름대로 하게 하는데 여기서도 가만히 있으면 혼나게 됨으로 나도 앉아 일어서기를 꾸물꾸물하지 않을 수 없다. 반대쪽에서도 미친년들이 모여서 오늘따라 에어로빅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데 이것을 본 자칭?풍산도사?라는 김씨가 열을 내며 소리 지른다.

 ?야! 미친년들아 지랄하지 말고 애 젖이나 줘라!?

 김씨는 아내가 춤바람이 나서 도망갔다고 하는데 여자만 보면 무조건 욕을 한다. 모든 여자는 죽여야 한다나. 허나 그와는 반대인 사람도 있다. 미친년들 중에는 에어로빅 강사 하던 여자가 있는데 마침 오늘 그 여자가 앞에 나가서 평소에 솜씨를 자랑하듯이 춤을 추는 그녀가 자기의 애인이라고 환장한 미스터 염이 가만있을 리 만무하다.

 ?야! 미친놈아 너 누구보고 욕해 죽고 싶으냐??

  둘은 한데 엉켜 치거니 받거나를 시작했다. 순식간에 일이다.

 ?호로록! 호로록!?

 조무사 똥돼지가 뒤뚱거려 달려오며 황급하게 호루라기를 분다. 호루라기 소리 하나면 모두 동작 그만이다. 오늘의 운동시간도 이것으로 끝이다. 다시 왔던 때의 그 모양으로 무거운 흰색건물 을씨년스러운 병실로 다시 들어간다. 다만 오늘은 베개를 끈에 붙잡아 매서 끌고 다니던 소장사가 어제 화가와 싸운 탓에 독방에 감금되어 있기 때문에 맨 뒤에서 끌려 다니던 송아지가 없었을 뿐이지 달라진 게 없다.


 지방공무원인 나는 관내의 불우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사람들의 관리와 생활보호 대상자들의 구호, 행려 자들의 처리 등을 업무로 하는 사회복지를 담당하고 있었다.

 보람도 있고 하고 싶었던 일이라서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결혼 적령기를 넘기고도 도무지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볼품없는 신체조건에 나이든 노모를 모시고 있으니 어떤 여자가 선뜻 결혼하려고 하겠는가. 지레 생각하고 자신이 없어 직장생활에 충실할 뿐이었는데 인연인지 악연인지 어느 날 관내 고아원에 실태를 파악하러 갔다가 한눈에 반해 버릴 만한 보모 아가씨를 보게 된 후로 심한 열병에 걸리고 말았다.

 신상명세서를 작성해야 하는 덕분에 그녀가 이름은?염경희?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자기 친척이 운영하는 이 고아원에서 보모 겸 사무원으로 일하게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초롱초롱한 눈은 풀잎에 매달린 아침이슬 같이 영롱히 빛났고 오뚝하게 뻗은 콧날은 감히 누구도 접근하지 못할 것 같은 고고함이 있는가 하면  웃을 때 양 볼이 살짝 파이는 볼우물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는 듯 했다.

 그 날 이후 나는 그녀를 보기 위해 틈만 있으면 그 곳으로 달려가 조금만이라도 바라보아야 하루 일을 할 수 가 있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나보다 십년이나 연하인 탓인지 아주 자연스럽게 접근하게 되어 만나는 횟수를 더할수록 사랑으로 농익어갔다.

 산딸기보다 더 아름답고 싱그런 몸을 허락하던 날 그녀는 ?우리는 죽는 날까지 헤어지지 말자?고 했다.

 그러나 막상 결혼하려고 하니 그녀의 집에서 거센 파도와 같은 반대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귀엽고 어린 딸을 나이 많은 노총각에 집은 가난하고 홀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보잘것없는 면서기에게 시집보내야 하는데 그래도 내 노라는 집안에서 선뜻 내키지 않은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사랑하면 모든 것이 다 되는 줄만 알았는데 이런 벽에 부딪치고 보니 허무하고 괴로움에 웅숭크리고 있는 나를 오히려 위로하며

그녀는 사랑을 행동으로 옮겨 과감하게 보따리 하나 없이 집을 뛰쳐나와 우리 집으로 아예 와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처가의 반대에 굴하지 않고 결혼도 신혼의 꿈도 뒤로 하고 동거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얼떨결에 첫 아이를 가지게 되니 처가 쪽에서도 어쩔 수 없었던지 결혼을 허락하여 새신부가 만삭의 몸으로 웨딩드레스를 입는 그 때 시절에 별로 발생치 않는 희귀한 이야기 거리가 되기도 했다.

 

 복도와 현관 어귀에 흩어져 웅성거리고 있던 미친놈들이 갑자기 소란스럽게 술렁인다.

 ?야! 미친놈들아 이리와 봐! 내가 드디어 용을 만들어 냈단 말이야. 그것도 살아있는 용이다. 모두모두 와봐라!?

 똘아이 화백이 복도 끝 화장실 쪽에서 뛰어오며 소리쳤다.

 ?미친놈 지가 무슨 용을 만들었다 구?

 모두의 시선이 화백에게 쏠리고 벌써 그 방향으로 어지럽게 움직이기 시작한 미친놈들 틈에서 언제나 그를 싫어하는 거리의 시인이 중얼거리면 서도 궁금한 모습이다.

 똘아이 화백이 자신에게로 모여드는 군중을 헤치고 창가의 의자에 앉아있는 나에게로 달려와서는 숨찬 목소리로.

 ?선생님 드디어 내가 해냈어, 근사한 용을 만들어 냈다고요.?

 ?그래요 김선생이 결국 해냈군요.

 나는 그에게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는 화가 지망생이었던가. 화가 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이 곳에 오기 전부터 있었던 사람으로 사십대 정도의 어디인가 귀티가 흐르는 점잖은 신사 같았고 말 수 가 적었으며 가끔씩 손에 무엇이라도 들려지면 벽이며 바닥에 그림이라고 그려놓기 때문에 누구나 그에게는 낙서할만한 것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요즈음은 그릴 것이 없자 조각으로 바꾸었단다. 흙이며 밥알들을 마구 주물러서 붙이고 그것이 작품이란다. 그러는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웃음만 당하기 일쑤여서 가끔은 내가 작품이 참 좋다고 하자 이제는 나에게만 마음을 주며 자신의 일들을 이야기하길 좋아한다.

 ?선생님 나는 용을 보지 못해서 그릴 수 가 없었지요. 그래서 이제는 만들어 보려고 열심히 만들었는데 계속해 뱀만 만들어져 속상해 며칠을 참았다가 어제 밤에는 용꿈을 꾸고 오늘 다시 만들었더니 정말 용이 만들어 졌답니다.?

 작품에 대한 기대가 대단하다. 그야 가보면 별것 아닌 새끼줄 토막이나 흙을 뭉쳐놓은 것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의 꿈을 망쳐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랬군요. 가봅시다. 명작을 볼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며 따라가자 모여 있던 미친 군상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기대에 찬 몸짓으로 움직인다.

 똘아이 화백이 나에게 제일먼저 보고 감상하게 한 그 날의 작품은 어이없게도 화장실 변기에 수북하게 용트림하며 싸 올려 있는 며칠을 참았다 배설한 대변이었다. 계속해서 뱀만 만들어져서 속상했다고 그래서 이렇도록 고통을 참아가며 만든 대작은 정말 놀랄만한 거대한 굵기의 살아서 승천하려는 듯한 작품이라고 그가 흥분 할만 했다.

 이 세계명작 황룡전시 사건 때문에 멀쩡한 놈들에게 미친놈들이란 욕을 한 번 더 먹고 자유시간도 유예 당하고 각자 네모의 백색 방으로 유배되어 일없이 자기 속으로 깊게 빠져 들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아내는 오지 않았다. 저주스런 아내지만 그래도 며칠째 면회를 오지 않으니 궁금하다. 아내가 면회를 온대야 긴 시간을 이야기 할 수 도 없으려니와 그녀는 나를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닥터 박을 만나러 오는 것 같다. 요즘 들어 점점 더 요염하게 예뻐지는지 마지막 발악으로 짙게 바른 화장 덕분인지는 몰라도 내가 저런 여자의 남편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울 지경으로 아름다워지고 있다. 아내는 나를 안심시킬 양으로 자주 찾아와서는

?당신은 모르지만 과로 때문에 정신에 이상이 생겨 치료를 조금하면 된다니까 돈 걱정 집안걱정 일체 하지 말고 모든 것을 잊고 이 곳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요 알았죠? 그럼 난 가요?

 아내는 언제나 똑같은 이런 말을 되풀이하고 간다. 그 때마다 옆에는 친척이라 던 가 그녀의 친구가 같이 있을 때였다. 그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남편을 사랑하는 가를 확인시켜주는 연극의 대사 같았다.

 아내와의 금술은 하늘이 샘낼 정도로 좋았다. 나는 직장일 에 충실했고 아내는 노모를 모시고 가정일 에 빈틈이 없었다. 그러나 박봉으로 살기에 너무 힘들다고 첫 아이 낳고는 아내는 조그만 가게를 얻어 장사를 시작했다.

 힘은 들었지만 그런 대로 이력이 생긴 아내는 그야말로 열심이었다. 돈이 모아지고 재산이 눈에 띠게 불어나자 아내는 금고기 할머니의 욕심을 능가했다.

 내가 허약한 탓인지 부부생활에 아내는 가끔 불만족스러운 눈치는 있어도 그 정열을 돈 버는 일에 집중하는지 아내의 생활은 점점 억척스러워져 가는 반면에 내가 아내에게 보호받는 입장으로 바뀌어져 가고 있었다. 변화란 있을 수 없는 공직생활에 권태로움을 느낄 때마다 천진스러운 저능아들이 모여 사는 시설에 자주 가다보니  나름대로 내 안의 평화와 사랑을 나눌 수 있어 그들과 함께 나누며 살고 싶어서 직장을 그만둘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막상 아내가 반대만 안 했더라도 퇴직은 그렇게 쉽게 하지는 못했었을 것이다. 나에게는 ?정년 때까지 벌어야지 아이들을 어떻게 할 거냐?면서도 자신은 모아 논 부를 자랑이라도 하듯이 ?거지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자?는 식으로 유명인사들의 모임이나 놀이에는 빼놓지 않고 휘젓고 다니는 아내의 아주까리기름이 흐르는 아름다움에 대한질투에서 시작되어 오랜 공직생활 봉급봉투 가로채서 갈급 나게 떼어주는 용돈이 더러웠고 아이들까지도 몇 푼 되지도 않는 봉급쟁이 아버지 보다 잘 나가는 어미 편에서는 것이 훨씬 자신들의 생활에 보탬이 된다는 식이다.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하는 자식들이 이제는 없다는 생각이 서글펐고 굳이 명분을 내세운다면 생활보호대상자의 불우한 사람들이 국가에서 보호해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드리며 오히려 조금 덜 왔다 싶으면 불만을 표출하는 더러운 인간들이 보기 싫어서 그만두었을 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에 이 곳에 들어온 김 교장은 명예스런 정년퇴직을 했다고 내게 말했지만 그리 자랑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 곳에 오는 사람들의 유형이 비슷하다. 처음 들어와서는 길길이 소리 지르며 자신은 미치지 않았다고 하며 구원을 요청하지만 미친놈이 으레 그렇다고 조금은 내버려두다가 좀 지나치다 싶으면 등치 좋고 험 살 맞은 간호조무사들에게 끌려갔다 오면 조용해진다. 그리고 다음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만한 상대를 열심히 찾아보나 그 누구도 자기편이 없음을 알게 되면 자기만의 대화를 중얼거리던가. 아예 말을 잊고 지내는 사람도 있다. 이런 자들은 정말 미쳐서 온 것인지 아닌지를 분간 못하나 모두가 나 말고는 모두 미친놈들이라 단정하고 외롭고 저주스런 자신의 굴을 파고 있다.

 김 교장은 여기오던 다음날부터 기회 있을 때마다 나를 따라다니며 신문에 연재하듯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십여 연전에 타게 한 아내 없는 집은 예나 같지만 그래도 학교에 나가 아이들 보는 재미와 일하는 취미로 외로움을 잊었었는데 낮에도 할 일없이 며느리만 있는 집에 있기가 불편해서 근처의 다방에 들려 젊은 아가씨들과 이야기라도 하는 시간이 시름을 잊기가 쉬웠다고 했다.

 퇴직금을 타서 은행에 넣고 이자만 가지고도 생활하는 데는 지장이 없을 정도여서 다방 아가씨들에게도 늘 후하게 대해주었을 뿐 아니라 아가씨 중 참하고 고운 아이가 있어 딸처럼 생각하고 마음을 써주었고 그 아가씨도 김 교장을 아버지 같이 생각하며 의지하고 따랐다고 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곱게만 생각할 리 없었다.

?다 늙은 게 주책이다.?

?김 교장이 젊은 여자에게 홀려 재산 날리고 망신당할 것이다.?

 무슨 큰일이나 벌어진 것처럼  김 교장 귀만 빼고 모두의 안테나에 걸려 뉴스거리로 연일 방송되고 있는 줄 몰랐다.

 가뜩이나 늙은 홀시아버지를 모시는데 짜증난 며느리가 이 소문을 접하니 어떠했겠는가?, 그 뒤 상황이 어찌 되었는지 아들며느리가 병원에 모시겠다며 이 곳에 갖다 놓고 가버렸다고 한다. 가끔씩 면회 온 며느리는 상태가 좋아지지 않아 걱정이라며 위로를 하고 간단다. 다른 것은 다 참겠으나 나를 어떻게 미친 사람으로 만들었는지 그 과정을 용서할 수 없다며 친척도 친구들도 어쩌다 면회를 오면 자기보기를 더러운 거름처럼 대한다며 자식 놈이 이럴 수 가 있느냐고 치를 떨었다.

 내가 보기에도 정신이 이상하여 이 곳에 온 것 같아 보이지 않으나 아들며느리가 걱정스러워 하는 것을 보면 김 교장이 미친것인데 나에게는 거짓말하는 것 아닌가 생각되고 김 교장의 이야기대로 라면 창피하고 귀찮은 존재가 되어 버린 아버지를 이 곳에 모셔다 놓고 자기들은 한근심 덜고 사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남의 걱정 할만한 처지가 아니다. 하루속히 내가 정신이상이 아니라는 것이 인정되어 이 감옥보다 더 답답하고 정말로 미쳐 버릴 것 같은 미친놈들의 수용소를 탈출해야만 한다.

 내가 아내의 말만 고분고분 듣고 직장에 나가며 아내의 일에 간섭 말고 내 좋은 일이나 했더라면 적어도 나는 미쳐있지 않았고 이 곳에 오지도 않았을 것인데 참고 견디지 못하는 성미 때문에 결국 이 곳에 끌려와 미친놈 취급당하며 살고 있는 나 자신이 정말 미친놈인지도 모를 일이다.

 모든 생물이 그 아름다움이 완숙할 때는 거의 시들어 가는 마지막 발악의 순간이라 더니 아내의 요염한 미모는 개기름 번들거리는 이름 있는 놈들에게는 좋은 먹이가 될 것이다. 하는 생각은 나름대로 주간지 소설을 쓰게 되고 TV 아침연속극으로 연출을 하게 된다.

 정말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면서도 그렇게 않되는것이 아내는 근래에 와서 잠자리마저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내와 나란히 잠자리에 들면 사랑하고 싶어 은근하게 더듬는 순간 아내의 야멸친 팔꿈치 세례는 숨이 잠시 멈출 지경으로 고약하다.

 ?왜 또 귀찮게 굴어요. 잠이나 자지…….?

 아내의 마지막 중얼거림의 의미를 안다. 지난번에도 싫다는 아내를 간신히 힘으로 누르고 위에 올랐으나 ?늙어 가는 게 주책이라며 할 테면 해보라? 는 식으로 퍼져있는 아내를 내려다보니 막상 나의 남성은 무엇에 실망했는지 흥미를 잃고 찌그러져 있는 게 아닌가. 정말 난감하기 그지없다. 어떻게 하던 아내에게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가끔은 부부싸움을 하고 나서 껄끄러운 사이를 해소시키는 무기일 수 도 있었기에 어찌하던 성사시켜야 한다. 생각하고 가소롭다는 듯 비웃으며 올려다보기만 하며 협조 해주지 않는 아내를 원망하기보다는 내 자신의 남성을 위로하며 아내를 애무함으로서 가까스로 용기를 얻고 있는 듯하여 삽입시켰으나 결과는 얼마못가 패전한 병사의 졸렬한 사정으로 막이 내려지고 말았던 기억이 있다.

 오늘이라고 별반 다를 리 없이 주눅들은 내 남성은 패잔병임을 시인하며 말안장에서 낙마하고 만다.

 ?이구! 그래가지고 남자라고 못살게 굴더니만 만족도 못시키는 주제가지고 뭘한다구. 앞으로는 그러려면 집어치워. 잠이나 더자는게 낳지 원…….?

 냉동실에서 방금 꺼낸 듯한 아내의 한마디는 차라리 악다구니다. 그러나 할말이 없다. 마냥 일그러지는 나의 모든 것을 본다. 도대체 이게 뭐냐? 왜 이러는 것일까? 그렇게 광야를 질주하던 적토마 같던 나의 남성도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란 말인가? 아니다 이럴 수 는 없다 . 아내의 냉담함과 나를 싫어하는 아내에 대한 적개심 그리고 진정한 사랑의 행위가 아닌 오기와 아내가 혹시 다른 남자와 관계를 했을 거라는 지저분한 생각 무표정해 나무토막처럼 나둥그러진 죽은 육체를 안은 듯한 그런 감정에서 어찌 활화 같은 사랑의 욕망이 솟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조금의 위안을 하면서도 황량한 고독과 번뇌로 지내야만 했다.

 허나 빌어먹을 성욕은 별개의 것인지 순간 끓어오르는 욕정은 주체하기 힘들어 가끔은 아내를 건드려 보지만 아내의 반응은 점점 거세어져 이제는 내 쪽에서 오히려 반발의식에 아내가 부정한 짓을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앞선다.

 평소 아내는 성욕이 대단하며 탐닉하는 편이어서 아직은 그녀의 모든 것으로 보아 싫어할 만한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되니 자연히 그녀에게 다른 남자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나의 퇴직 송별회식이 있던 날 못 먹던 술까지 여러잔 마시고 술기운과 삼십 여년 가까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찹찹한 심정으로 집에 오니 아내는 집에 없고 갈수록 기력이 쇠잔해지시는 어머니만 큰집에 덩그마니 계셨다.

 도대체 아내는 남편 생각은 뒷전이라 생각하니 은근히 부아가 뒤틀려서 양주를 마시고 더 취하려고 하니 정신은 더욱 초롱초롱하여 잠은 오지 않고 아내의 불륜행각만 그려져 밤늦도록 에로소설만 머리 속에 써지고 있는데 자정이 훨씬 넘어서야 딸년이 들어오니 자연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는데 이 놈들이 뭐 잘했다고 ?아빠는 왜 술 드시고 밤중에 소리를 지르시냐.?고 쫑알거리며 자기들 방으로 가버리고 만다. 정말 한심하다. 어머니가 그 모양이니 애들까지 저렇다 싶으니 오장이 끓는다.

 새벽 한시가 넘어서 들어온 아내는 나를 거들어 보지도 않고 요란하게 치장한 옷을 벗고 누워버리는 꼴을 보자 간신히 참고 있던 화가 폭발하고 말았다.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이야? 어느 놈 허고 붙어있다 이제오는거야!?

 ?남이야 뭣하고 다니던 당신이 무슨 참견이야 당신이 뭔데? 나를 남들처럼 호강시켜줬어! 남편구실을 제대로 했어! 뭘 잘했다고 그래 이제는 실업자 주제에!?

 아내는 더 큰소리로 쏘아 대며 벌떡 일어나 일전을 불사하려 들었다.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나는 몇 해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내에게 반말을 하지 않았다. 부부간에도 지킬 것은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게 나의 신조였는데 언제인가 부터 그게 되지 않았다. 아내의 반말과 때로는 욕지 걸에는 도저히 이성을 찾을 수 가 없어 함께 뒤엉켜져 험하게 다투게 된 게 어제오늘이 아니다 싶다.

 말로도 안 되고 힘으로도 안 되는 주체하지 못할 감정에 결국 주방에 들어가 식칼을 들고 나오게 되었다.

?이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너 죽고 나 죽자?

 최악의 사태까지 왔으나 실은 그럴 용기도 내게는 없었다. 이렇게 하면 아내가 조금은 져 주리라 생각했는데 아내는 눈에서 독기를 뿜으며

?왜 내가 죽어 너나 죽어라!?

악을 쓰며 대들었다.

 ?아빠 미쳤어!?

 소란 통에 애들이 모두 나와서 합세해 칼을 빼앗으며 경계한다.

 이런 일들이 있고 는 아예 나를 미친 사람 취급하기에 이르렀고 그러면 그럴수록 나의 의처증의 광기도 더해갔음을 시인한다. 어쩌란 말인가 아내와 자식들이 아빠가 미쳤다고 경시하는 이런 상황에서 내가할 수 있는 것이란 나를 자학하며 분통을 발산하는 싸움밖에는 없는 날들이 지루하게 흘러갔다.

 

 창 밖으로 보이는 조각달이 상수리나무 가지 위에 걸려있고 멀지 않은 곳에서 소쩍새가 짝을 부르듯 외롭게 간헐적으로 들려온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야릇한 성욕이 아랫부분을 뿌듯하게 휘감는다. 지금쯤 아내는 내가 없으니 마음 놓고 어느 놈의 품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치자 질투에 범벅된 성욕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하느님이 너무한 건지 잘한 건지 모를 이 성욕은 왜 주책없이 발동하는가 말이다. 원망 반 희열 반으로 휴지를 뽑아 들고 화장실로 갔는데 화장실 안의 신음소리가 심상치 않다. 괴성을 지르며 자위행위를 하던 자는 어린 여아들만 골라서 추행을 했다는?작은 고추?라는 젊고 잘생긴 녀석이다.

 어정쩡하며 서 있는 나를 보고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즐기고 바지춤을 올리면서 넉살을 편다.

 ?선생님도 해보쇼 여자가 별거유 이렇게 하고 나면 잠도 잘 온 다구요 아~ 오랜만에 처녀 따먹은 맛이네 히히…….?

 작은 고추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몇 번째 어린 소녀들만 추행하다 교도소도 여러 번 다녀온 자라고 했다. 그는 병적으로 어린 소녀들만 골라서 추행을 하여 재판 과정에서도 정신병 판정을 받은 바 있다고 한다. 밖에만 나오면 또다시 그런 발작증세에 그의 친척들이 의논한 끝에 이 곳에 입원시키기로 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이 곳에서 그는 성적 흥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왜? 아름답고 예쁜 아가씨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하필이면 어린애들을 건드렸느냐? 고 물어보면 자기는 처녀하고 그래 보는 게 소원이란다. 결혼하고 첫날밤을 치렀는데 아내가 처녀가 아니더라. 나 그렇다고 왜 처녀가 아니냐고 물어볼 수 도 없고 해서 그럭저럭 사는데 아내와 관계 할 때마다 정말 그게 아니다 싶더란 다. 그래서 자신의 소원을 한번 풀어보자고 나이 어린 여고생을 어찌 어찌해서 하고 보니 그 애도 처녀가 아니더라는 것이다. 그 때부터 그는 장가갈 때까지 동정으로 지내 온 게 억울하여 다루기 쉬운 어린 여아들을 유인해 추행하려 했지만 자신의 물건이 너무 커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감옥에만 여러 번 가게 되였다는 것이다.

 어떻게 처녀인지 아닌지 아느냐 했더니 어째서 첫날밤에 신부의 초야가 자신이 풍덩하고 빠지게 되느냐? 는 거다.

 그의 이야기가 알려지자 ?작은 고추?라는 별명이 붙게 되고 그 별명에 호기심이 발동한?율부린너?와?제주 똥 돼지? 간호조무사는 혹시 물건이 작아 그런 증세가 있지 않나 싶어 고추를 한번 보자 했더니 그는 기다리고 있었듯이 훌렁 내리고 꺼내 보이는데 놀라우리. 만치 대단한 대물이더란다.

 요즈음도 그는?처녀하고 한번만 자봤으면 소원이 없겠다?며 면회객중에 어린 여자아이만 보면 침을 흘리며 따라 다닌다고 한다.

 

 어느덧 창으로 통해 보이는 산자락에는 녹색물결이 뜨거운 열기에 데쳐 진 듯 늘어져 있고 간간이 계곡을 지나온 바람이 나뭇가지를 헤치고 몰려가다 한줌의 싱그러운 바람을 창문으로 들여보내기도 하고 매미들이 미친 듯한 소리로 합창하는 것으로 보아 내가 이 곳에 온 지도 꽤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내와 허구한 날 불편한 관계가 되어 싸우다 보니 우리가 이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이혼을 하자는 데 합의되고 막상 그 문제를 논의하다 보니 아내의 제안은 기가 막혔다. 모든 재산은 자기가 뼛골 빠지게 장사해서 모은 것이니 자기 것이 당연하고 아이들은 아빠에게 가지 않는다니 자기가 데리고 살되 결혼식이나 기타 큰돈 들어가는 일은 아버지가 해야 하며 어머니도 모시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재산에 대해서는 한 푼도 나눌 수 없으니 당신이 여태껏 모은 재산인 연금으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참! 기가 막힐 일이다. 말단공무원의 봉급으로 살림살이하며 알뜰하게 살아온 것은 인정하나 모든 재산이 자기 것이라니. 하긴 그 동안 남들이 부러워 할만한 몇 억대의 재산을 모으면서 아내는?우리 같이 벌었으니 공동명의로 하자?해서 공동명의로 등기는 해 놓았으나 이럴 수 는 없었다.

 그까짓 재산 때문에 또다시 싸우며 살 수 는 없다 싶었으나 당장 노모를 모시고 나올 거처도 없을 뿐 아니라 몇 푼 안 되는 연금으로는 살아가기가 망막하다. 인정이라고는 사하라 사막이 되어 버린 아내와 대판으로 싸우고는 집을 나와 버리고 말았다.

 밤낮 여관에서 뒹굴고 술만 마시니 삶의 리듬이 깨지고 폐인이 되어갔다. 그래도 집에서는 찾는 기색이 없다가 딸년의 약혼식에는 격식에 간판이 필요했던지 아이들을 시켜 들어오라 하니 아비된 도리는 해야 하겠기 딸을 위해 시키는 대로 때 빼고 광내서 약혼식장으로 가야만 하는 심정은 어떠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

 그렁저렁 어릿광대 모양 격식을 위한 약혼식이 끝나자 아내와 아이들이 오늘따라 나에게 감붙으며 ?우리 가족이 오래간만에 나들이나 하자?고 했다. 이 기회에 화목한 가정을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도 있지 않나 해서 맘대로 하라 했더니 아내가 운전하는 차의 뒷좌석에  앉게 하고 아이들이 기대며 어떻게든 나를 편하게 해주려는 듯 재미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가끔 아내도 돌려다보며 말 사이를 이여 주곤 하는데 나는 이 시간이 정말 가족이 가질 수 있는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며 오래간만에  따듯한 체온에 빠져들었다.

 우리들이 서울근교인 지금의 이 건물 앞 정문에 다다르니 정신요양원 이라는 간판을 바라보여 의아해하는 나에게 아내는 당황하며 지나는 길에 자기의 친구가 이 곳으로 전근 와서 있는데 잠깐 만나보고 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전 같으면 내 의사를 들어보려고 하지 않던 그녀가 오늘따라 부드러워진 것을 경직시킬 필요가 없다 싶어 고개를 끄덕거리자 차는 정 문을 지나 현관에 앞에 다다랐고 시동을 끄지도 않고 아내는 총총걸음으로 현관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건장한 흰옷을 입은 사내 둘이 달려 나오더니 우리 차 양 옆으로 와서는 다짜고짜 나를 끌어내는 것이다. 애들까지 합세한 힘에의 하여 질질 끌려 들어오게 되었고 위험을 느낀 나는 악을 쓰며 소리 질렀으나 주위에 있던 낮 모르는 자들은 오늘도 심하게 미친놈 하나가 또 들어온다. 는 눈치로 바라만 보고 있는데 발악하는 나에게 수갑과 족쇄가 채워지고 세모꼴로 생긴 원장이라는 자가 손전등을 비춰가며 내 눈꺼풀을 까뒤집어 보고 아내와 머리를 맞대고 뭐라고 수군거린다.

 손발이 묶여 쥐약 먹은 개 같은 형상으로 떨고 있는 내게 아내는 근심과 사랑 어린 눈빛을 보내며.

 ?여보 당신은 모르겠지만 당신의 병이 심각하대요. 나는 이런 줄도 모르고 그냥 상담이나 하려 했는데 얼마간 입원치료를 해야 한다니 아무 걱정 말고 이 곳에 있어요. 자주 면회 올 깨요?

 ?아빠 안심하세요. 원장선생님이 저번부터 자신 있게 고쳐주신다고 그랬어요. 빨리 나아요.

 자식들까지 출연한 연극은 이미 시작되어 무대에 울려져 있었다.

 나는 이렇게 미쳐서 입원치료 라는 명분으로 감금되어 밖의 세상과 격리된 채 하루하루가 정말 미칠 것 같이 지나갔다.

 현덕이가 찾아 온 것은 그로부터 보름쯤 후다. 그는 매일이다 싶이 만나던 내가 갑자기 증발해 버리자 궁금하여 내 아내에게 물으니 ?머리를 식힌다며 절로 갔다?고 해서 전화라도 하겠거니 하며 기다렸으나 소식이 없자 불길한 생각이 들어 내 딸 미영이 에게 꼬치꼬치 캐물으니 이 곳에 있다고 알려주어 찾아 왔다는 것이다.

 나는 지옥에서 구세주를 만난 것보다 더 반가웠다.

 ?나 정신이 이상이 있는 거 아니야 자네는 알지? 정말이야 나 미치지 않았어. 집사람과 애들이 잘못 알고 그런 거야 제발 어떻게 하던 여기서 나가게 해줘! 부탁이야?

 나는 현덕에게 애원했다. 할아버지부터 외독자 집안인 나에게는 가까운 친척도 없었으니 나를 믿어줄 사람은 친구밖에는 없었다.

 ?걱정 말고 있어 네가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 친구들은 알고 있으니 곧 나오게 될 꺼야?

 친구는 나를 안심시키고 돌아갔다.

 여기서 요양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현덕으로부터 전해들은 친구들이 면회를 자주 오게 되자 아내의 부탁을 받았는지 요양소 측에서는 회복이 늦어진다는 이유로 면회마저 허락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근 한 달 만에 찾아온 현덕은 그 답지 않은 밝은 표정이 아니었다.

 ?오늘도 가족이 아니면 면회가 안 된다는 것을 절친한 친구로서 꼭 한번만 만나 보려고 먼 곳에서 왔다. 고 사정을 해서 겨우 들어왔다?

 ?왜? 면회도 안 된대??

 요즈음 들어 친구들이 찾아오지 않아 서운하던 생각을 떠올렸다.

 ?응! 철저하게 장막을 치는 거지 자네 부인께서?

 친구는 침울한 표정을 애써 지우며 요즈음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현덕이가 백방으로 뛰어 다니며 친구들과 먼 친척들까지 동원해서 탄원서를 내고 경찰에서 내용을 조사해 줄 것을 청원했으나 모두 허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내와 자식들이 ?아빠가 정신이 이상해서 고치려고 입원시켰는데 제삼자가 얼마나 같이 살았고 그에 대해 뭘 안다고 지랄이냐?? 는 거다. 막말로 ?너희들이 내 남편이 미쳤는데 돈들이여 고쳐줄 위인들이냐??고 경찰서가 떠나가라 소리소리 질러 두말 못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친구는 어떻게 라도 또 해보겠다며 나보다 더 힘없이 돌아갔다.

 이렇게 나의 구출작전도 실패하고 찾아오던 사람들도 이제는 가물가물 하고 그들의 기억 속에서 나는 지워져 가고 있을 즈음이다.

 오래간만에 현덕이가 면회를 와서 동편에 있는 운동장어귀 정원 석에 둘이 앉아서 그 동안 궁금했던 밖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요즈음 아내는 남편의 장기간 병시중 들기가 너무 힘들다고 떠벌리고 다니면서 자기는 <외로운 한 떨기 장미꽃>이라고 한단다.

 ?민구?

 내 여윈 손을 찾아 쥔 현덕의 손이 따듯하다. 실로 오래간만에 남이 불러주는 내 이름에 왜소함을 느끼는 것이 무었때문일까?

 ?왜??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 잘 들어?

 ?뭐인데??

 ?자네 부인한테는 말 잘듯 는 척이라도 해! 특히 아이들에게도 그래야 여기를 나갈 수 있어 그렇지 않고는 내내 정신병자로 이 곳에서 살아야 된단 말이야. 내가 생각하건대 아마도 너를 금치산이나 한정치산자로 만들고 재산 전부를 자신의 것으로 하고 거침없이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여자야 그러니 이 병원에서 병이 나았다고 믿을 수 있게 마음을 다잡고 고분고분 행동하면 우리들도 어떻게 해볼 수 도 있을 거야 네가 마냥 이렇게 반발만 하면 모두들 너를 미쳤다고 볼 수밖에 없어?

 그의 말에는 깊은 암시가 있음을 알고 있다.

 ?이 곳에 와서 나는 정말 미쳐가고 있는 것 같아.?

 ?그래 알아 나도 이 곳에 올 때마다 너를 보고 저들을 볼 때마다 나도 조금은 미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해?

 현관문을 나온 한 사람이 이쪽으로 오고 있다. 그의 뒤에 무언가가 끌려온다. 소를 끌고 오듯이 베개를 끌고 소장사가 오고 있다. 그는 여기 느티나무 기둥에 저것을 매어 놓고 누가 사러오기를 하루 종일토록 기다릴 것이다.


 아침부터 천둥 번개가 치고 소나기가 창문을 때린다. 천둥 번개는 미친놈들이 모두 싫어한다는데 나도 왠지 오늘따라 무서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데 율브린너가 요란하게 들어와서 사모님이 오셨다고 알린다.

 밉지만 그래도 찾아오면 반가운 마음이 앞장을 선다. 옷을 고쳐 입고 방을 나서니 아내의 모습이 보인다. 아내의 빨간 원피스는 무릎을 훨씬 지나 올라간 미니의 모습인데 먼발치에 있는 남편을 못 보았는지 보고도 못 본 척 하는 것인지 쭉 뻗어 잘 담근 단무지 같은 다리통을 움직여 원장실로 사라졌다.

 반가운 마음이 언제이더라. 싶게 또다시 미움이 변죽을 울린다.

?저년은 나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원장 놈과 밀애를 즐기러 온 거다. 그렇지 않고 서야 입원한 서방 만나러 오면서 웬 나이에도 걸맞지 않는 빨간 미니냐, 거기다 머리까지 노랗게 물들여 가지고,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는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다. 아내가 들어간 원장실 문 앞으로 갔다. 그리고 문을 살짝 밀어보았으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다급해진 나는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을 찾아봤다. 다행히 열쇠구멍이 있다. 그 곳으로 안의 동정을 살피려고 안간힘을 쓰며 들여다보려는데

 ?다리가 네 개가 보인다. 다리 둘은 내처 것이거늘 다리 둘은 누구 꺼요? 둘이 아니라 세 개로다. 히히 이?

 거리의 시인이 종이쪽지를 들고 지나가며 나를 보고하는 소리인지 정말 시를 낭송하듯이 지나간다.

 열쇠 구멍으로 뭔가 보인다. 아내의 빨간 스커트 자락 잘생긴 단무지 같은 다리통. 그리고 한 가운자락 등이 어지럽게 교차한다. 잔 득 긴장한 나는 현장을 목격하려고 작은 열쇠구명을 원망하며 영화필름을 영사실에서 스크린에 비치는 것처럼 하면 될 것이라는 기발한 생각으로 방안에서 전개되는 영화를 찍는 카메라맨이 되어 연속 샷더를 눌렀다. 갑자기 힌색이 렌즈 천체에 오버랩 되며 들여다보던 문이 세차게 열리는 바람에 손잡이에 눈을 맞고 뒤로 나둥그러지며 머리뒤통수가 반대 편 라지에터 모서리에 부딪치고 말았다.

 번개가 번쩍하고 섬광을 일으키고 얼마 후 굉음이 이어진다.

 굉음의 여운은 짤막하다. 소란에 눈을 떠서 올려다보니 많은 얼굴들이 모여 내려다보고 있다. 입술을 흑장미 색으로 칠한 아내.

 삼각형의 원장, 율부린너, 작은 고추, 소 장사, 똥 돼지, 똘 아이 화백, 김 교장. 여우목도리. 풍산도사. 하이에나……. 그림같이 보이다 사라진다.

 ?어머 죽었나 봐??

 김간호사의 비명은 현관 쪽으로 달리고

 ?미친놈은 죽어도 더럽게 죽는구나! 보았노라! 미친놈의 웃기는 주검을!.  이 히히히?

 거리시인이 질척하게 침고인 높은 소리로 떠드는 소리가 복도 안으로 질질 흘러 들어갔다.

 사위가 조용해지며 안개가 자욱이 덮인 담벼락에 기대선 소녀가 나에게 백치의 미소를 지으며 빨간 헝겊 자투리를 흔들고 있는 모습이 엷게 보이는가 싶더니 다시 짙은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까만 눈이 펄펄 내려 어두움으로 덮어버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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