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지붕
글. 석도익
푸르던 잎을 곱게 물들이고 끝내 낙엽지우는 것은 혹독한 추위를 견디기 위한 생존의 법칙이지만 그 낙엽은 다시 그들의 밑거름이 되어 그들을 더 키우고 성장시킨다.
나지막하고 동그란 그래서 정겹고 포근하게 보이는 동산, 골바람 불어 나무 가지 헤치고 매섭게 오르내려도 안간힘으로 잎을 떨어뜨리지 않는 떡갈나무 촘촘히 서있는 산은 낙엽이 다지고 앙상한 나무 가지만 있는 험한 산보다 햇살도 고와 보이고 버팀목처럼 드문드문한 노송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이는 변치 않는 기상으로 아래 마을을 지킨다.
억새꽃 하늘거리는 산자락 내려서면 계곡의 시리도록 맑은 물이 삿갓 다랑논과 버선목 귀때기 논에 이어지고 적당한 경사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초가지붕이 정겹다.
버섯모양 둥그스름한 초가지붕은 가난하지만 욕심이 빗겨가고 갈나무 싸리나무 섞어 두른 울타리에 열어놓은 싸리문으로 복이 몰려 들어갔는지 훈훈한 정을 가득 담아 놓은 듯 하다.
울타리 사이를 마음 놓고 들락거리며 몰려다니는 씨암탉을 거느린 수탉의 늠름한 기상은 그 면류관만치나 등등한데 저녁노을 바라본 검붉은 수탉은 오색 날개를 퍼덕이며 목을 길게 빼고 저녁을 알리는 울음소리 해맑다.
닭을 쫓아다니며 놀던 점박이 강아지도 닭 울음에 제풀에 놀라 컹컹 짖어대고 늙은 대추나무 밑에 매여 놓은 누렁이도 커다란 불알을 늘어트리고 누워 게으른 되새김질을 멈추고 주인집 바라보며 음~머 하고 정겹게 주인을 부르는 듯 하다.
삼중주의 화음이 마을에 일순 퍼진다 해도 소란스럽다 거나 시끄러운 것이 전혀 아닌 오히려 조용하게 느껴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아무튼 이 소리들을 신호로 아는지 집집마다 옹기항아리 굴뚝이나 굴피나무껍질 굴뚝에서 저녁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며 아름다운 구름을 만든다.
초가지붕의 둥그스름한 그 완만하고 여유 있는 아름다운 선은 우리민족만이 가슴에 담고 있는 풋풋한 행복감 같기도 하고 해마다 새 이영으로 갈아 덮어 켜켜이 두터워진 처마 끝을 보노라면 추위가 녹아 버릴 것 같은 훈훈함이 배여 있고 흰눈이 지붕위에 수북이 쌓이면 더욱 따듯함을 갈무리 한듯한데 추녀 끝에서 주렁주렁 거꾸로 커나가는 고드름은 겨울 햇살에도 오색 무지개가 뜬다.
가을걷이가 얼추 끝나면 마을에서는 돌아가며 품앗이로 이영을 엮는다.
그날 해당되는 집에서는 앞마당에 횃불을 밝히고 모닥불을 놓아 주위가 뜨끈한데 아이들은 짚단을 나르고 할아버지들은 용고새를 틀고 아저씨들은 이영을 엮는다.
한해 일들을 이야기하고 때론 할아버지들의 옛날이야기를 들을 수 도 있으며 어른들의 음담패설에 아이들은 갸웃 둥 하기도 하며 유난히 밝은 달빛은 왜 그리도 정겹던지…….시리도록 밝은 밤은 이렇게 두런두런 깊어만 간다.
청솔가지 타는 냄새 매캐하던 부엌에서 음식이 끓어 뜨끈한 김과 함께 구수한 냄새가 온 동네 퍼지면 된장에 끓인 칼국수나 만두국이 한 사발씩 돌려지고 흰 거품이 둥글둥글 떠있는 막걸리 동이에서 바가지로 사발 그득히 부어져 한 순배 돌린다. 한숨에 들이마신 할아버지들은 수염에 묻은 막걸리 방울을 거칠고 투박한 손으로 쓰다듬고 헛기침하는 소리가 왜 그리 행복하게 보였던지……. 그 야밤에 훌훌 불며 먹던 칼국수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조국근대화의 힘찬 고등이 울려 퍼지고 가난은 숙명이 아님을 일깨우며 조용함이 술렁이고 땀 흘리며 희망과 용기로 내일의 꿈을 꾸던 시절, 장래의 농촌을 그린 신문에는 어느 외국의 집이나 별장 같이 아름다운 집, 삼각형의 지붕 위에 TV안테나가 정말 이루어질 수 있는지 요원한 꿈만 같았었다.
새마을 노래가 울려 퍼지고 초가지붕이 벗겨지고 스레트 지붕이 늘어만 갔다.
볏짚으로 해마다 새로 지붕을 해 덮어야 하는 수고도 덜어지고 볏짚은 소먹이로 땔감으로 될 수 있으니 편해지고 좋아졌다.
이제는 농촌이라 하더라도 콘크리트 양옥집이 적지 않게 들어서고 마을 안 길도 포장이 된 곳이 많은가 하면 모든 것이 도시와 같이 되어가고 있어 우리도 남부러울 데가 없다고 자부할 수 도 있으나 각이 지고 딱딱하고 어딘가 삭막하게만 느껴지는 마을의 풍경이다.
산자락과 계곡의 맑은 물과 논두렁 밭두렁 사이에 조화롭게 이어진 길에 풀포기 발목에 감겨드는 살 겨운 마을 풍경은 찾아보기 힘들고 어딘가 인위적으로 억지로 짜 맞춘 듯한 거북살스럽고, 부드럽지 않고 차가워서 다가서기 힘든 배타의 몸짓으로 그려지는 농촌의 풍경은 어디서 연유되는 것일까?
동산과 같이 둥글둥글한 선이 집과 지붕으로 이어진 조화 그 속에서 향기처럼 피어오르던 우리네 인정 한마을 한마음으로 이웃사촌하며 이여 동기간 만들어 살던 정겹던 우리들의 둥근 둥글 한 마음이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각지고 모가 나고 단단하고 차갑게 변해서 우리만의 철 대문을 닫아걸고 산다.
초가지붕이 좋다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거기에서 심성이 달구어 진 우리네가 달라진 주거환경과 생활에서 너무나 달라져 가고 있는 것이 슬프고 아쉬울 뿐이다.
풋풋한 정이 담긴 마음들이 지붕 위에서 영글어가는 박처럼 둥글고 크던 것을 잃어 가는 우리의 멋이 아쉬울 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