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작품

여자라는 이름

돌 박사 2007. 3. 24. 08:57

               女子라는 이름

                                                     석 도 익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신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했다면 그 피조물 중에서 가장 잘 만들어진 것은 사람이요 그 중에서도 최고의 걸작품은 여자일 것이다.

여자는 아름다운 미의 극치요, 예술의 바탕으로서 그 아름다움은 오래가며 아름다움과 고운 것은 맥을 같이하므로 예쁘다, 곱다 는 말을 같이 쓰기도 하는데 이는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고와서 아름답다는 말이다.

세상에서 꽃이 가장 예쁘다고 하나 화무십일홍이라고 씨앗을 갖기 위한 일시적인 유혹에 지나지 않으니 여자의 아름다움에 비유하지 못하며  새들은 수컷이 예쁘게 보이나 깃털의 치장에 불과하다

이러하듯이 예쁘고 아름다운 것에는 인간인 여자와는 우위를 견줄만한 상대가 없음으로 여자는 콧대 높은 자존심으로 가득하여 자칫 무례를 범하기 쉬우나 언제 어디서라도 당당하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과시하기를 주저하지 아니한다.

오늘도 또 내일에도 여자는 신이 준 아름다움을 고마워하기보다는 오래도록 지신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기 위해서 또는 더욱 더 아름다워 지려는 욕망은 그 수위를 망각하면서까지 도전을 아끼지 않는다.


모성본능으로

모든 여자는 어머니가 된다. 그러므로 여자는 누구나 모성본능이 있다. 그 모성은 아이를 낳고 기르며 한 가정을 이끌어 대대손손 여기까지 이어왔기에 역사는 여자가 이끌어 온 것이 아닌가 한다.

살아가는 모든 일에는 힘을 필요로 했음으로 남자가 앞장서 왔지만 실은 뒤에는 여자가 있었으며 가정이나 사회 국가의 모든 흥망성쇠는 그 시대의 여자들이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여지없이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근대를 보더라도 6.25사변이후 실상은 어찌했던가?  모든 재산은 잿더미가 되었고 전쟁으로 희생되어 남자들의 일손은 부족하고 당장 입에 풀칠하기 어려운 가난의 늪에서 남자는 좌절하여 자포자기하고 술과 놀음으로 허송하려할 때 우리네 어머니는 인동초 같은 강인함과 보리 싹 같은 부드러움의 끈기로 남편을 위로하고 자식들을 보듬어 그 어려운 보릿고개를 넘었다.

가난의 멍에를 걸머지고 배고픈 허리를 더 졸라매 가며 억척스럽고 영악하게 가정을 이끌고 자신보다는 부모를 공경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고 남편을 살뜰하게 내조하며 자식들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기 위해서 자신은 굶기를 밥 먹듯이 하였던 어머니들이 지금의 이 시대의 풍요를 이루어 놓았다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약한 자여 그대이름은 여자 이니라” 가 아니라 강한 어머니가 바로 여자인 것이다.

이 강인한 여성의 힘은 여자들만이 가지고 있는 모성본능에서 나오는 것이다.

모성본능은 자식을 거느린 어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여자에게 잠재되어 있어 여리고 착한 마음속에는 자식을 지키려는 강인함, 참아내는 끈기, 포근하게 감싸 안으려는 깊은 정이 있음으로 가정을 만들어 부모를 모시고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자식들을 키워내는 일인 사역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실로 남자가 여자에게서 어머니 같은 모정의 느낌을 받지 못한다면 오래 사랑하지 못할 것이다. 금술 좋은 부부를 보면 남편은 아내에게서 어머니의 모성애를 느끼며 아내는 남편에게서 아버지 같은 부성애를 느낀다고 한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할 수 있는 모성애, 그것이 여자를 여자답게 하고 그런 아름다움이 더욱 여자를 아름답게 한다.

보라. 우리의 어머니들께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그리고 그들의 딸들이 가족을 위해 남의 집 가정부로 또는 환경이 열악했던 크고 작은 공장에서 아름다운 소녀의 꿈을 접어가며 일한 그것이 모성본능의 아름다운 마음에서 일어나는 위대함이 지난날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했으며 훌륭한 인재를 길러냈음을 알 수 있다.

여자의 모성본능은 단란한 가정을 만들고 지켜나가며 아름다운 사회를 이루게 하고 굳건한 나라를 이끌게 했으며 오고 가는 끝없는 역사에 위대함으로 기록되어 나갈 것이다. 모든 여자에게서 모성본능의 아름다운 어머니의 마음이 가득히 있는 한, 그리고 자신의 아름다운 몸에서 건너가는 모유를 먹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홀로 서기 위하여

여자는 아름답기 때문에 연약하다. 그러므로 보호받으려 하고 사랑 받길 원한다.

머리를 길게 길러 청순가련하게 보이게 하는가 하면 가는 허리를 더욱 가늘게 하여 연약하게 보이이도록 하였으며 낮은음자리표 목소리를 더 나긋하게 하여 속삭이며 뒤축굽이 높고 가느다란 구두를 신고 뒤뚱거려 위험스럽게 보임으로써 남자로 하여금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게 하며 호수 같은 눈망울에 고이는 이슬 같은 눈물은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힘쓸 곳이 점차 없어져 버리는 현대에 이르러 남자들은 쓰지 않는 힘은 퇴화되어가서 자연스럽게 여성화 되어가므로 힘이 있는 남자에게 의지하려던 기대심리를 포기한 여자는 어찌할 수 없이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강해지고 남성화 되어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의상에서부터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머리는 짧아지고 긴치마는 점차 짧아져왔고 또는 치마에서 몸매바지로 그것이 다시 남자와 같은 양복바지로 변하였지만 다행히 지퍼나 단추는 옆구리에 있어서 여자바지로 구분되었으나 언제부터인가 그것도 앞으로 돌아와 있어서 남녀의 구분마저 없어졌다.

신발은 가녀리게 보이던 코고무신이 굽이 가늘고 높은 아슬아슬한 하이힐로 다음은 안전성이 있어 보이는 미들로 최근에 와서는 힘 있어 보이는 군화 같이 튼실해 보이는 구두로 변하고 있다.

남녀의 구별이 없는 캐주얼에 군화 같은 둔탁한 구두를 신고 머리를 짧게 깍은 여인을 보라! 그들은 이제 남자의 보살핌이 없이도 험난한 이 세상을 스스로 홀로 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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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천하를 부릴 수 있다

연약하지만 질기고 섬세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함이 아름다움에 겹쳐 조화를 이루는 여자이기에 온 천하를 치마폭에 휘두를 수도 있었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던가? 남자는 여자가 낳고 길렀음으로 여자는 남자를 잘 안다. 여자에게는 특유의 순발력이 있어 임기응변에 능하며 섬세함과 번득이는 슬기로 자신을 화장하고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웃음이 충만하며 동정심을 유발시키는 눈물을 무기로 하여 남자의 힘과 용기를 잘 이용할 수 있다. 그리하여 남자에게는 명예만을 돌려주고 여자는 실리를 취할 수 있으니 힘 안들이고 누워서도 천하를 부릴 수도 있다.

뒷걸음으로 다시 돌아가는 후진에 약하지만 돌아서 갈 줄 아는 지혜를 가졌기에 그들은 남자를 출세시키고 세상을 요리했으며 역사 속에서도 수렴청정을 해왔다.

그러나  슬기로운 여자는 천하를 움직일 수 있으나 미련한 여자는 노예로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예나 오늘날이나 같은 것이다.

자존심은 코를 높이고 질투는 주름을 늘인다.

여자에게 가장 강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존심이요 이 자존심이 여자의 절개로 표현되고 실제 그 발상이기도 하나 결국 자신에게는 아무런 득이 없는 고집에 불과하기도 하다.  또한 여자에게서 가장 많은 것이 있다면 질투심으로 이 질투심을 뺀다면 몸무게가 반으로 줄어든다고  할 정도로 대단하며 그것은 늙을 줄 모르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점 늘어나는데 자기 것이라는 강한 소유욕과 약자에게서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자기 것에 대한 보호본능이 아닐까 싶다.

질투가 심하면 자칫 오해하기 쉽고 그르칠 수 있으나, 내가 다 갖지 못하고 남아돌더라도 남에게는 절대 주기 싫어하는 강한 소유욕 또한 사랑이라고 하니 어찌하랴(?) 자존심으로 적당히 높아진 코와 사랑으로 무장된 질투는 여자의 주름살을 늘려놓지만 모성본능의 여자를 지탱하여온 힘이기도 하다.

치마폭은 좁아만 가고

모성본능에서 우러나는 뜨거운 인정은 불쌍한 것을 보게 되거나 안 된 일을 들을 때나 이웃이 슬픔을 당했을 때 동정의 눈물을 펑펑 흘리며 세상의 온갖 걱정을 다 하는 그래서 여자의 치마폭은 넓어있었다.

서로 돕고 힘을 합해야 살 수 있었던 지나간 시절, 사람을 만나면 반갑고 정겨워 살갑게 지내던 이웃모두를 폭넓은 치마 자락같이 넓은 마음으로 다 덮어주듯이 인정이 흘러 넘쳤다.

그러나 세월이 변하여 혼자서 놀 수 있고 혼자서도 살 수 있으며 부닥치는 게 사람이라 사람이 반갑고 귀하기는커녕 한 치의 양보도 없다. 생존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이기적 사고를 갖게 하는 지금에는 우유 먹고 자란 세대가 다시 그들의 아이들에게 우유를 먹여 키우다보니 모성본능도 엷어져가고 인정도 점차 메말라간다. 내 걱정하기도 바쁜 세상에 남의 걱정까지 할 수 없다는 각박하고 바쁜 세상이다 보니 여인의 열두 폭 치마폭이 점차 좁아져 이제는 간신히 입어야 할 정도로 좁아져 있음을 볼 수 있다.


힘은 약해지고 아름다움은 강해진다.

힘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시대에는 남자를 선호하고 힘에 의존하려니 자연 여자의 권리가 적어지므로 여자로 태어난 것을 원망하면서 다소곳하게 순종하며 살아야만 미덕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적당히 게으른 반면 두뇌는 빨라서 힘 안들이고 일하려고 기계문명을 발달시키게 됨으로서 점차 힘이 필요 없는 시대에 이르게 되었다.

힘으로 군림했던 남자의 가치는 천장에서 바닥으로 떨어지고 남녀평등이 아닌 남녀동등 시대가 되었다. 이는 수많은 여권 운동가들의 오랜 투쟁에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여성을 위한 특별한 법이 만들어져 이루어진 것도 더욱 아니다.

실로 힘이 약한 여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는 수없이 만들어져 왔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여자학교가 별도로 있고 여성만을 위한 회관  에다 이제는 여성만을 위한 여성부라는 부처가 하나가 더 만들어져 있다. 남자들을 위한 특별한 장치는 어디를 보아도 없고 금녀의 영역이던 병영(兵營)도 여자에게 옆자리를 내주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 때문만은 아닌 어쩔 수 없는 사회적 현상으로 이제는 여자가 오히려 더 대접받는 시대에 이르렀는지 과거에는 여자들이 다시 태어난다면 남자가 되기를 원하였으나 지금은 정반대로 많은 젊은 남자들이 여자가 되어가고 있으며 확실한 여자가 되고자  성을 전환하는 수술도 자랑스럽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


바람막아주는 등 뒤에서 여자는 더 아름답고.

여자의 아름다움은 화려함을 동반하고 화려한 것은 조명을 위하여 밝은 불빛을 찾아간다. 조용한 시골보다는 번화한 도시를 동경하고 고독하기 싫어서 하루를 수다로 메워버린다. 또한 한순간의 황홀했던 추억을 깊이 간직하고 있다가 힘들 때 아껴가며 조금씩 꺼내서 자신을 위로하며 일생을 살아가는 지혜로움이 있다

여자는 꽃 과 향기를 좋아하고 분위기에 취하여 마음을 열고 약자의 슬픔에 자신의 눈물을 보태서 울어버린다. 바람에 구르는 낙엽을 보고서도 우울해지는 것은 방황하기보다는 안주하려는 마음이 저 깊은 여성의 모성본능에서부터 일고 있음이다. 역마살이 끼어 방황하는 남자를 붙잡아 그의 넓은 등 뒤에서 바람을 막으며 영원히 안주하려는 마음도 여자의 가슴속 깊이 잠재해 있다.

남자가 나무라면 여자는 나무 잎이다. 푸른 잎일 때 자신의 몸이 으스러질 때까지 나무와 그 열매를 위하여 일하다 소임을 다하고 낙엽이 되어 떨어져 바람에 굴러 주위를 맴돌다 나무그늘에 안주하여 기꺼이 자신의 몸을 썩혀서 나무뿌리에 거름이 되고자 한다.

여자는 땅이다. 새 생명이 탄생하는 모태가 되는 흙이다. 여자는 포근하게 잠들 수 있는 나그네의 고향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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