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 필 >
사과상자 때문에
석 도 익
CF 상품광고가 아니라 정규 뉴스에 사과상자가 나온다. 그것도 사과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닌 만 원권 지폐를 가득 담고 TV화면 가득히 등장한다.
국내소식 첫 번째 뉴스가 뇌물이야기이고 부정금전거래 의 현금상자주인공으로 사과상자가 등장하는데 그 인기는 떨어질 줄 모르고 언제나 계속 영광(?)을 누리고 있다.
큰 정치인은 큰대로 작은 공무원은 작은 대로 돈이 되는 것이라면 뭐든지 삼켜버리다 가끔은 탈이 나서 곤욕을 치루는 모양이다.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를 막고 화폐의 흐름을 투명하게 함으로서 세금도 잘 거두어들이고자 금융 실명제를 전격 실시하였으나 이도 피해가는 방법이 다양해 검은돈을 세탁하고 추적이 어려운 현금으로 거래 하려니 부피가 만만치 않아 사과상자가 동원된 것이다.
만 원권으로 한 상자 가득 담으면 일 억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아무튼 오고가는 현금 속에 싹트는 정경유착의 일등공신이 사과상자란다.
사과상자에 담아 차떼기로 전달된 우리의 유통화폐 그러나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는 점점 메말라가기만 하니 어인일인지....
사건이 생기면 이를 막고자 법이 만들어 지고 그 법을 묘하게 피해가는 방법을 연구해서 기막히게 또 저질러지는 사건의 연속이다,
이십여년 전으로 기억된다. 필자가 몸이 아파 병원에 다녔으나 별로 호전되지 않자 용하다는 곳 많고 약도 많아 용하다는 곳 는 곳 다 가보고 좋다는 것은 다해보던 때의 일이다.
성남에 있는 스님 한분이 침을 잘 놓아준다기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곳을 찾았다. 처음으로 가보는 성남은 서울의 위성도시로는 좀 색다르게 산의 지형을 그대로 두고 건설된 숲이 없이 집으로 산과 계곡을 이룬 도시의 언덕 기슭에 조그만 민가를 이용하여 작은 방은 법당으로 하고 큰방은 환자를 치료하는 곳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절이라고 하기에는 좀 아닌 것 같은 곳에서 젊은 남자스님이 침과 부황 그리고 간단한 교정으로 치료를 해주고 있었다.
아침 다섯 시부터 몰려오는 손님들은 연세 많으신 할머니 에서부터 아주머니들이 주류를 이루고 간혹 남자분과 아가씨들도 더러 오는데 대부분 관절 디스크 척추이탈 중풍 등 신경 및 정형외과 쪽의 환자들이며 병원을 오래 다니다 오는 만성고질 환자 분들이었다.
환자분들은 먼저 온 순서대로 자리에 앉아 질서 있게 치료를 받으며 한 가족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 간호도 해주며 스님의 치료를 도와주곤 했다.
기골이 장대하면사도 잘생긴 젊은 스님은 할머니 할아버지 환자분들께 농담도 하는 여유를 보이지만 실은 아침예불이 끝나자마자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틈도 없이 땀을 흘리며 백여 명의 환자를 치료한다.
모두들 이곳에 다니면서 많이 낳았다고 좋아하며 자기가 아는 사람들을 데려오고 또 자랑삼아 이야기하니 구전으로 전해져 환자는 점점 더 많아진다고 한다.
여기에 오는 사람들은 대개가 공통점이 있었다. 절에 다닌다는 사람이 많고 나이가 대부분 있으신 분이며 모두가 풍요롭게 살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치료를 받고 고맙다고 인사하고 나갈 때 주머니를 뒤적여 얼마 되지 않는 지전을 책상 밑에 놓여있는 사과상자에 넣고 간다.
누구하나 치료비가 얼마냐고 묻는 이도 없고 얼마를 넣는지 관심도 없고 보지도 않는다.
사과 상자에는 저녁때쯤이면 천 원짜리 혹은 간혹 만 원짜리 지전이 수북하게 쌓인다.
처음에는 나도 들은바 있어 만 원짜리 한 장을 넣고 왔다. 병세가 조금은 효과가 있는 것 같아 2주 후에 또 가니 먼데서 오느라 고생했으니 하룻밤 여기서 자고 하루 더 치료받고 가라고 스님이 권하여 고맙기도 하고 마침 다음날이 휴일이라 그리하기로 하고 스님과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저녁예불을 마치고 공양주에게 책상 밑에 사과상자를 가져오라 하였다.
스님은 현금이 수북하게 쌓인 사과상자를 나에게 보이며 작가선생님은 이것이 뭐로 보이냐고 하였다. 나는 짐짓 그가 무언가 깊은 의미의 이야기를 할 것 같아 진지하게 말했다.
“글쎄요 모두들 힘겹게 짊어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덜어놓고 간 것 같네요”
스님은 나의 말뜻을 대번에 알아차리고는 빙그레 웃으며
“여기 오시는 그 분들에게는 이것이 짐이 아니라 생명이지요. 허나 나에게는 이것 때문에 욕심이 자꾸 불어나는 요물입니다”
그는 자신의 부끄러운 치부를 들킨 소년 같은 쑥스러운 얼굴로 없는 머리를 어루만지며 사과상자 때문에 자신이 때묻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어린 동자승부터 절밥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어쩌다 침술과 교정술을 배워 처음에는 함께 있던 스님들이나 치료해 주다가 효험이 있다는 소문이 퍼져 점차 외부인 까지 몰려오게 되어도 박절하게 못한다고 할 수 없어 지금에 이르렀고, 그러다 보니 가끔은 무허가 의료업이라고 고발되어 관청에도 들락거려야 했지만 배운 것을 그리 쉽게 내동댕이쳐지지 못하였단다.
우리네 사람들은 남에게 무언가 베풀음을 받으면 그에 상응하는 것을 주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아무리 그냥 가라 하여도 굳이 돈을 놓고 감으로 방바닥에 놓여지는 지전이 보기 싫었던지 함께 온 손님이 사과 빈 상자를 구해다 놓게 된 것이 돈 통이 되었고 그 상자에 돈이 하나둘 쌓이니 스님은 욕심이 생기더라는 것이다.
기왕에 주고 가는 돈이니 잘 모아서 그 뜻에 부응하여 조그만 암자라도 지어 부처님을 모시자 생각하고 그때부터 넣고 가는 돈 사양하지 않았단다. 그러자 돈은 날이 갈수록 쌓이고 욕심은 그와 비래하여 커져가서 자그마한 암자가 아니라 커다란 법당에 요사채 까지 있는 절을 생각하게 하고 터를 마련하고 집을 짓고 있는데 일층을 짓고 나니 이층 삼층까지 짓고 싶어 아직도 계속 공사 중이라고 했다.
부처님 도량을 짓는다고 대단한 불사를 일으키는 그 자체가 욕심인 것을 알면서도 저놈의 사과상자 때문에 그 욕심 버리지 못하고 쓸데없는 근심에 빠져 있음이 그야말로 세간에서 말하는 “염불에는 관심 없고 젯밥에만 눈이 간다.”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절이 산수 좋은 곳에 크고 웅장하게 지어져야만 좋은 수신도량이 되는 것이 결코 아니라 음습한 토굴속이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울 수만 있다면 되는 것이 라고 생각은하지만 사과상자는 그를 땡중으로 만들어 간단다.
어찌되었건 그 사과상자에는 고마움의 정표인 지전이 매일 놓여지고 그 지전은 다시 법당건물이 되어지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모든 세제상의 특혜가 주어짐으로 이에 발마추어 날이 갈수록 종교산업(?)은 번창하고 있다.
자장면 집보다 교회가 더 많고 학교보다 절이 더 많아지며 웅장하게 커지고 높아진다. 그러나 이에 비례하여 이 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을 충분히 담당해나가고 있는 걸까? 모든 종교는 선행하고 악을 물리치며 인간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선각자의 가르침을 믿고 배우며 따르는 곳으로 신념이 약한 인간이 의지하려는 마음의 안식처다. 모든 종교의 가르침은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줄이며 선을 베풀라고 한다. 궁극적으로 아니면 물리적이라도 삶의 무거운 짐을 지고 힘들어하는 자의 짐을 덜어주고자 한다.
사람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것이 돈버는 일이요, 가장 괴로운 일은 지나친 욕심으로 자신의 관리능력을 초과하여 모아놓은 재산을 관리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관리능력을 초과한 재산은 무거운 짐만 됨으로 종교에 기부함으로서 다시 어려운 이웃에 고루 나누어 더불어 살기 위함이 아닌가 한다. 이것이 종교의 역할이고 선교일 것이다.
사과상자에는 사과를 담아야하고 빈 상자에는 이웃돕기 사랑의 모금함으로 만들어져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데 이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창작 작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잃어가는 우리의 멋 (초가지붕) (0) | 2007.04.25 |
---|---|
여자라는 이름 (0) | 2007.03.24 |
[스크랩] 남자라는 이름 (0) | 2007.03.24 |
통화 중 (0) | 2007.03.02 |
아! 북간도 조선인의 땅 (0) | 2006.1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