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작품

아! 북간도 조선인의 땅

돌 박사 2006. 11. 27. 23:25
 

< 수필>

               간도 아~ 조선인의 땅

                                           석 도 익


조그맣게 뚫린 비행기 유리창으로 투영되는 하늘 저 아래에 바라보이는 산하!  처음 보는 생소함이 없고 언제나 보아오던 곳같이 느껴지는 것일까?  유년시절에 아버지께서 하시던 말씀이 새롭게 생각난다.

아버지께서는 일정 때 농사를 지어야 공출로 다 빼앗아가는 터라 이럴 바에는 차라리 순사 시험을 보겠다고 할아버지께 허락을 청하자마자 “일본 놈 밑에서 순사질이나 하려거든 차라리 죽어라” 는 불호령과 함께 지게작대기에 맞아 죽을 뻔하고는  손바닥만한 땅뙈기 소작농에 매달렸으나 앞이 안 보이는 가난이 너무 싫어서 다시 넓은 땅 북간도로가서 농사나 원 없이 짓겠다고 할아버지께 말씀드렸으나 할아버지는 눈물을 보이시면서 “나를 땅에 묻고 가라” 하시는 말에 모두 포기하고 말았다는 아버지...

그 당시 일제의 횡포와 가난에 도피처로 남부여대하여 땅 넓은 만주 북간도를 향하여 북 으로 북으로 이주했던 우리민족은 이민이 아니라 개척이었다.

우리 민족 조선족이 사는 곳이며 중국에 있는 조선족 자치구이다. 가슴 설레며 연길공항에 내렸다.

연길공항은 군용공항이나 민항과 함께 사용한단다. 10여개 게이트밖에는 되지 않는 단조로운 공항이다. 이 공항 역시 어둡다. 전기를 절약하는 모양이다. 언제나 휘황찬란한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이다.

옛 서부영화에서 본 소도시 같은 연길은 황량해 보였다.  많은 주민들이 이주해버린 듯한 감마제 드는 곳이다. 다만 거리의 간판들은 머리글이 모두 한글로 되어있고 아래에 한자로 표기되어 있어 전혀 다른 나라 같지 않은 착각을 하게한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벅차오르는 자랑스러운 민족임을 느끼며 차창을 밖을 바라보았다. 

만주 벌판은 고구려시대 광개토 대왕의 북진정책으로 요동까지 정벌하고 우리민족의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곳 어느 곳이든 우리민족의 숨결과 따스함이 전해 내러오고 있어 전혀 타국 땅에 와 있다는 감이 전혀 들지 않고 잠들었으며 우리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빠른 이곳의 날이 밝았다.

버스에 올라 백두산으로 가는 길 도로 옆 농가는 우리나라의 70년대를 연상하지만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붉은 벽돌에 기와집 방이 둘이나 셋이 됨직한 난민수용소같이 통일시켜 지은 일자집이 줄지어 있었고 그중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듯한 빈집이 많이 눈에 띄어 허허로움까지 든다.

백의민족에 피는 속일 수 없는지 건물의 어느 곳이건 하얀색이 칠해져 있는 집은 우리 동포의 집이란다.

어느 집이나 비슷하게 집 앞이나 뒤로 붉은 벽돌로 담장을 했거나 나무 말뚝이나 가지로 텃밭까지 울타리를 한 것이 자기 집의 영역표시를 한 것 같다.

산간지방이라 짐승 때문에 그런 가 했지만 포실한 마을도 모두 그러했으니 그것도 아닌 듯싶다.

우리나라 농촌에도 도시로 떠나간 빈집들이 어디를 가나 많이 있어 허허로운데 이곳은 무어라 꼭 집어 표현할 수없는 공동화 되어가는 마을풍경이다.

조국하늘을 바라보며 이스라엘 만족같이 살아온 사람들, 세계가 변하고 정치가 바뀌어도 그들은 한결같이 우리말 우리글을 잊지 않고 사용하며 서로를 의지하고 살아왔기에 그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내 조국을 자랑할 수 있을 때가 오는 것이었을 것이다.

공산주의가 태동하고 세계가 이념으로 갈라지는 와중에 대한민국은 막혀버리고 반쪽 북한이 그들의 조국이 되어버린 반백이 넘는 세월이 지난 현실에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잘사는 조국 대한민국, 그것이 그들이 기다려온 꿈이었기에 어떻게 하든지 한국으로 가서 돈을 벌어와야겠다는 것으로 집착되어 현재는 한집건너 한집에 한사람정도는 한국에 가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돈을 벌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할 수 있는 한국의 꾼들이 개입하여 많은 비극을 만들고 있다.

한국으로 갈수 있는 방법이 한국의 노총각들과 결혼 하는 것이 제일 쉬운 방법이기는 하나 결혼적령기 여자가 어디 그리 많겠는가? 그러니 가정주부가 위장결혼하고 입국한다,

돈을 위해 아내를 떠나보내는 남편의 한숨과 어머니와 헤어져야하는 아이들의 눈물이 지금도 송화강을 불어나게 한다, 눈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내가 없는 가정에 홀로 남은 남편은 술로 외로움을 달래고 어미 품이 그리운 자식들은 방황을 하며 올곧게 자라지 못하고 있으니 아무리 피땀 흘려 돈벌어 보낸들 그들에게 내일에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으로 남아있기는 어렵다. 또한 위장결혼에 속아 장가가서 가정을 꾸린 한국의 청년은 아내가 집을 나가버린 후에야 풍지 박살난 현실에 살아갈 의욕마저 상실하게 하고 있는 현실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참으로 비통한 일이다.

어렵게 만난 조국이 먼 이국땅에서 열심히 살아온 그들에게 가정과 희망과 용기를 송두리째 망가트리고 있어 연길은 폐허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 앞에 가슴이 아려온다.

툭하면 만주가 우리나라 영토였다느니 북간도를 다시 찾아야 한다느니 하기 이전에 만주벌판에 살고 있는 우리민족을 보살피자는 이야기가 먼저 있어야 했고 정부차원에서 내 민족 끌어안기를 하루빨리 시작했어야 했다.

학교를 세워주고 교육에 투자해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조국이 그들과 함께하고 있음을 가르치고 어렵고 외롭게 살아온 그들을 위하여 무언가는 해야 했다. 땅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게 중요하지 않은가? 어디건 우리민족이 우리글 우리말을 사용하고 살고 있다면 그곳이 우리 땅이 아니고 어디겠는가?  내 집이 없으면 임대나 전세 월세방에서도 사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하루속히 전 세계에서 조국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 동포들에게 조국으로서 그들을 보호하고 교육하는 일에 힘을 쓰는 일이야 말로 세계열강 속에서 살아가는 최우선의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중국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민족의 땅에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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