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식 바르게 키워야
석도익 칼럼
소설가 석 도 익
고슴도치도 제 새끼가 제일 예쁜 줄 안 다는데 사람 또한 이에 못지않아 자식에 대한 욕심은 교육을 경기장으로 만들려는 것 같아 교육에 대한 걱정이 뉴스에 화제가 되면 오래전에 보았던 일이 떠오른다.
젊은 시절 서울에 볼일이 있어 가는 길이었다. 그 때만해도 이곳에서 완행버스타고 비포장도로를 흙먼지를 일으키며 4시간이나 달려가야 했었다.
버스는 앉을 자리가 부족하여 의자모서리를 잡고 서서가야 하는 경우도 허다했지만, 그날은 다행히 모두 앉아갈수 있었는데 나와 같이 앉은 아주머니는 어린아이가 있기 때문에 셋이 앉아야 해서 내가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무릎에 앉고 가게 되었다.
네다섯 살 정도 되는 남자아이는 버스를 처음타보는 것인지 처음엔 두려워했지만 차차 호기심과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일어나 움직이고 떠들기 시작하니 어머니는 큰소리로 아이를 제어하기 바빴다.
40전후의 나이로 보이는 아이 어머니의 모습이나 옷차림이나 말투로 보아도 시골에서 농사 지으며 어렵게 사는 아주머니 같은데 아이의 행동을 제재하는 말이 생경했다.
아이가 연신 내 무릎에서 일어나 소리 지르려 할 때마다 그녀는 ‘네가 그러면 아버지 얼굴에 똥칠하는 거다.’ ‘너는 커서 네 아버지만큼만 해야 한다’ 하고 큰소리치면 이상하리만치 아이는 잠시 조용하곤 했다.
아이가 피곤했는지 나에게 기대고 잠 들었을 때 아이 어머니가 아이에게 아버지 이야기를 하던 것을 생각하니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 궁금했던 것을 조용히 물어보았다.
“아주머니 아이 아버지는 무엇을 하시는 분이세요?”
여인은 누가 들어도 좋다는 듯이 크고 떳떳하게 말했다.
“이애 아버지는 일곱 가구 사는 우리 동네 반장이래유”
해맑은 그녀의 얼굴에서 남편에 대한 사랑과 존경에 행복감이 그려져 있었다.
또 다른 이야기는 80년대까지 구멍가계일색이던 군소도시에도 체인점인 슈퍼마켓이 들어서면서 우리고장에도 시장 중앙 통에 새 시대 체인이라는 상점이 생겼다.
구멍가계나 시장 좌판에 물건을 주인이 집어주는 대로 사가던 시대에서 상품이 품명별로 없는 게 없이 가득 진열된 대형 상점에 들어가서 바구니를 들고 돌아다니며 자기가 필요한 물건을 골라 담는다. 말로만 듣던 백화점 같은 곳이라는 소문이 퍼져 새시대체인 슈퍼마켓이 개점하는 날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마침 장날이기도 해서 필자는 시장거리를 무심히 지나고 있는데 지나가는 젊은 여인과 어린 여자아이의 이상한 행동을 보고 잠지 주춤해야 했다.
여인은 딸 같은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의 손을 잡아끌고 가면서 연신 머리를 쥐어박으며 꾸짖고, 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끌려가고 있었다.
“이년아 그러다 들키면 어쩌려고 그랬어 어휴 내가 너 때문에 미쳐”하며 또 아이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같은 방향이라 따라가면서 이 모녀의 말과 행동으로 대충 추리를 해보니 여인이 딸아이를 데리고 새시대체인 슈퍼에 들어갔는데 어린 딸이 먹고 싶었던 초콜릿 한 개를 들고 나와서 엄마에게 자랑하듯 보인 모양이다. 함께 계산도 안한 것이니 어머니는 당황한 나머지 아이를 잡아끌고 멀리 나와서 아이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훈육하는 것이었다.
앞에 여인은 아버지를 내세워 아이를 가르치려한 것이고, 이 아이는 자라면서 아버지를 존경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뒤에 여인은 남의물건을 훔치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려 한 것이다. 다만 배우지 못했고 세상물정을 잘 모르고 경험과 교양의 부족으로 잘못된 부분은 있으나 그 시대 그들에게는 자식을 위한 최상의 훈육이었을 것이다.
혹자들이 말하는 무식하고 배우지 못한 엄마도 자식의 교육을 생각하는 마음이 이 같을진대, 최고학부 상아탑의 교수였고 법도 전공하고 국민의 지도자로 정치를 하는 최고의 지도자역할을 하는 사람이 요즘 뜨겁게 회자되고 있다.
그는 철부지 자식의 말투정하나 제대로 지도해주지 못하고 인격존중이라는 미사용어로 괴변을 대변하여, 청년들 모아놓고, ‘나이 먹은 노인들은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 투표수를 줄이고 나이 어린 사람들은 살날이 많으니 투표수가 많아야 한다고 그게 합리적이지 않으냐’는 거다.
“한 노인이 돌아가시면 도서관하나가 없어 진거와 같다”하는 명언이 있다.
묻고 싶다. 그러는 귀하는 당신의 생일이 언제인지 아는가? 물론 알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아는 생일은 부모님이 너를 언제 낳았다고 일러준 날짜를 자기 생일로 알고 있는 것이지 자기 낳는 것을 볼 수 없다. 다만 부모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배워서 알고, 후손들도 역사를 배우고 기록해 나갈 것이다. 어찌 나이 많은 우리는 머지않아 죽으니 젊은이들이 알아서 하라고 할 것이며, 아이들의 문제는 저들이 알아서 할 거라며 기피할 것인가? 당신들은 유산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을 것인가? 유산이란 재화만이 유산이 아님을 아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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