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도익< 인생칼럼>

창피하다.

돌 박사 2020. 12. 1. 09:43


창피하다.

소설가 석 도 익

우리나라의 자존심은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다. 충효를 중시했고 예의와 덕을 으뜸으로 여겼다. 자기를 먼저 내세우기 보다는 앞을 양보하고 뒤에서며, 높은데 있더라도 나를 낮추고 남을 높여줌으로서 서로에게 존경과 사랑이 절로 샘솟았다.

베풀고자 해도 받는 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성큼 받아 챙기지 아니하고 한두 번 번은 사양했으며 베푸는 사람역시 사양을 해도 삼세번까지는 재청하였으니, 그야말로 사양지심(辭讓之心)이 주고받는 모든 생활 속에 깊이 자리매김하여 인간관계속에 서로가 여유를 가지고 체면을 유지하며 명예를 지켜왔다. 이는 서로의 소통과 이해관계에 청탁과 비리가 아닌가 생각할 여유와 임기응변이 아닌 진정한 관계를 갖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현자는 아무리 급해도 경박하게 나대지 않으며, 아무리 가지고 싶어도 사양함으로서 상대가 후회할일을 막아주고, 마음에도 없는데 어쩔 수없이 베풀어야 하는 것, 또한 가려지게 되고, 진정한 정을 표하게 함으로서 요즘에 흔히 있는 부정청탁이나 뇌물의 거래를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다. 양심은 사람으로 도리를 지켜야 한다는 중심이 있기에 자기가 한 한말과 행동이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어긋남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이 아닌 이상 잘못할 경우도 있고 잘못될 수도 있는 것이 세상사다. 이럴 때는 제일먼저 자기가 한일을 알고 있는 내 양심에 가책을 받게 된다.

양심은 나를 떳떳하지 못하다 하니 가책을 받은 나는 나를 숨기려 할 수밖에 없으니 그때 느끼는 감정이 바로 “창피하다.” “부끄럽다.” “민망하다.” “수치스럽다.” 또는 요즘 젊은이들 말로 “쪽팔리다.” 로 표현하고 있다.

국어사전에는 “창피하다.”는 체면이 깎이거나 양심에 거리낌이 있어 떳떳하지 못한 일로 부끄럽다. 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렇게도 생각해 본다.

양심에 떳떳하지 못한 짓을 했으니 차마 창문을 활짝 열고 내다볼 수도 없으니 창문을 피해서서 밖을 살짝 훔쳐보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는 “창피하다.” 즉 창문을 피하다. “창피(窓避)하다.” 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요즘은 이 창피한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더구나 사회에 지도층이나 정치인들이 더하다. 그들은 양심에 가책도 없는지 좋지 못한 일에 이름을 날리고도 창문을 활짝 열고 얼굴을 떳떳이 내밀고 자기 잘났다고 설쳐대는 세상이다.

창 피할 줄도 모르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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