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질서를 지키지 않고 자기 편한 데로 행동하며,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기 위해 이웃에 피해를 주며, 자신의 욕심을 위해 남을 이용하려는 사람을
가리켜 “양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소설가 석 도 익
반면
어이없게 행동하며 격에 맞지 않고 모자라게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켜 “한심한 사람”이라고도 한다.
양심(良心,)이란
선악을 판단하고 선을 명령하며 악을 물리치는 도덕의식이다. 라고 정의하고 있고, 한심(寒心)은
정도에
알맞지 않아 마음이 가엾고 딱함, 또는 한가한 마음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필자는 궤변으로 한심(한 개의 마음)과 양심(두개의 마음) 이라고
표현해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만물에
영장인 사람에게는 두개의 마음이 있다. 이를 합쳐 양심(兩心)이라고 할 것인데 그로인해서 내안에 있는 두마음은 늘 의견충동을 일으키고
있다.
양심에
선한마음과 악한마음은 결정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이들이 서로 자기의 주장을 관철하려 부단히 싸우게 되는데. 한 마음은 오직 나를 위해 모든
결정을 하고자 하는 욕심의 마음이다. 이 마음은 사리판단을 하기에 앞서 나의 이익과 편리만을 생각하고 그렇게 결정하려고 한다.
반대로
또 한 마음은 사리분별을 명확히 하여 나만을 위하는 것이 아닌 모든 것들을 평등하게 놓고 보편타당한 답을 찾아 결정하려고
한다.
우리가
어떠한 결정을 해야 할 때 망설이며 갈등할 때 생기는 것이 선과 악의 싸움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한다. 여기에서 일방적으로 악의적 마음이
이긴다면, 사람들에게 질타를 받아 마땅한 양심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나마
양심이 있기에 둘이 싸워서 이긴 악심이 우세하여 그쪽으로 결정하고 실행했으나 지난 뒤라도 후회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고 앞으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이라도 마음에 새겼기 때문에 다행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짜 양심이 없는 사람은 한심한 사람이다. 즉 마음이 하나인 사람이다.
그것도
오로지 자신만을 위하고 자기를 위해 행동을 결정하는 욕심인 악의마음만 이용했기에 그것은 커지고, 반대로 이용하지 못한 선한마음은 작아져 없어지고
악의 욕심만 있게 된 사람을 가리켜 양심이 없는 사람 또는 한심한 사람이 라고 할 수 있다.
요즈음
양심이란 말이 화두가 되어 지상에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소위 양심수 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이야기다.
양심수(良心囚)는
정치적 또는 사상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투옥된 사람을 일컫는 말로서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치적·종교적 신념, 인종,
성별, 피부색, 언어, 성적 지향성을 이유로 구속·수감된 모든 경우'를 양심수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각개인의 의사에 의하여 종교 사상 이념을 달리할 수는 있으나, 이들의 그런 행위 때문에 선량한 국민과 국가가 피해를 입었다 해도
양심수라고 하며 죄가 안 되니 석방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또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뜻은 종교적 신념, 양심적인 이유로 병역의무를 거부하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국방부가 발표한 '종교적 신앙 등에 따른 병역거부자
대체복무 용어변경은 '군대를 간 사람은 양심이 없다는 뜻이냐'며 또 한 번 용어가 부적절하다는 일부 주장을 둘러싼 논란을 재 점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에
보호를 받으며 살고 있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국민의 의무인 병역의무로 복무하면서 전쟁시 전투에 임해야 한다.
군인으로
국가와 국민을 지켜 평화를 유지해야하는데 종교인으로 총을 들 수 없다하며 병역의무를 거부하는데 이를 양심적 병역거부자라 하여 군복무 대체근무를
허용한다는데 대해서도 형평의 원칙에 어긋나기도 한다.
특수한
교리의 종교인일지라도 침략자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피를 흘려서라도 내국민을 지키고 평화를 수호해야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그들의 종교도 자신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양심을 가지고 살 것인가? 양심이 없는 한심한 사람으로 살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