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도익 <칼럼>

아~ 어찌 잊으랴 6.25

돌 박사 2017. 6. 25. 11:32




2017-06-25 오전 10:55:46 입력 뉴스 > 홍천뉴스

[석도익 칼럼] 아 ~ 어찌 잊으랴 6.25

배내나이까지 합쳐 겨우 네 살배기 아이였을 때 일어난 6.25전쟁을 겪은 일들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면 믿기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때의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끔직 했던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가  석도익

소련을 등에 업은 김일성은 남침을 위해서 사전에 소규모 병력을 침투시켜서 아군의 전투력을 시험했었는데 이곳 야시대에서도 많은 청년들이 마을을 지키다 참변을 당했으며 이즈음 전쟁이 벌어질 거란 소문이 흉흉하게 나돌았는지 형과 누나가 전쟁이 나면 형은 밤이 잘 달리는 밤나무를 잘라서 끌고 갈 거라 했고, 누나는 닭을 가지고 가야 알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그 후 정말 전쟁이 터졌고 우리는 피난을 가야 했다. 형은 이불보따리를 걸머져야 했고 누나는 얼마못가서 업고가달라고 우는 것을 나는 아버지 지게 짐 위에 올라앉아서 보았다.

 

우리는 남쪽으로 남으로 피난을 내려가다가 아버지가 군 보국대로 입대하게 되어 어머니와 아이들이 멀리 피난을 갈 수 없어서 포기하고 다시 집으로 되돌아왔다.

 

어디를 가나 시체가 즐비한 전쟁터에서 폭격을 피해 방공호를 파고 생활해야 했고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에서 논두렁에 몸을 숨겨 살아났는가 하면 뒷마당에 묻어놓은 양식을 중공군이 파헤칠 때 곡괭이 자루에 매달려 울었던 기억도 생생하다.

 

1950625일 새벽에 남침한 북괴군은 파죽지세로 몰고 내려와서 낙동강까지 밀리다 유엔군의 참전으로 다시 서울을 탈환하고 압록강까지 진격하였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밀리고 밀던 전쟁은 1953727일 휴전이 되기까지 동족에 피를 뿌리고 31개월 2일 만에 총성이 멎을 때까지 싸운 전쟁에 국군과 유엔군 포함 776,360명이 전사나 부상과 포로 또는 실종되었고

 

990,968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거나 부상 당하고 납북되었으며 재산 또한 포화 속에 잿더미가 되어 버리고 많은 이산가족이 생기는 불행을 겪어야만 했다.

 

당쟁으로 허약해진 조선이 일본에 강점되어 36년간의 식민지로 억눌려 살다가 원자탄 위력에 무조건 항복함으로서 외세에 의하여 찾은 조국은 어쩔 수없이 남북으로 나누어져 북쪽엔 공산주의를 표방하며 김씨 왕조를 세우고, 남쪽은 자유민주주의 싹을 틔워냈다.

 

사상은 함께 융화되지 않음으로 서로가 적이 되어 1945년부터 원점에서 서로 반대방향으로 달려 간지 이미 74년이니 그 거리는 148년이란 세월로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동포라는 따듯한 단어로 우리는 하나라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목메어 부르며 이산의 아픔을 희망으로 달래며 살아가고 있는 자체가 우리민족의 미련일 거란 생각이 든다.

 

남북통일을 양측에서 정치적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민족의 결집을 희망과 꿈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삶의 문화자체도 이제는 변이되어 이민족으로 되어가는 세월 속에서 북한의 주체사상은 이미 우리가 무지갯빛으로 말하는 우리는 하나 통일이라는 그 뜻 자체가 그들을 함께 우리라고 하기 에는 너무나 멀리 와있는 것 같다.

 

대한민국의 우호적 동포애를 이용해서 그들은 남침을 준비하여 무력을 증강하고 핵을 만들어 놓고 위협을 가하고 있으니 말이다.

 

북한의 김씨왕조 3세 김정은 시대, 그는 전쟁의 광기로 전 인민을 방패와 무기로 쓰며 독재군주로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들며 대단한 핵을 만들었다고 이를 가지고 전 세계를 위협하며 제26.25도 불사할 기세로 몰아가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자유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려다 배가 산으로 갈수도 있는 무질서를 가져올 수도 있어, 사드 배치 하나에도 말도 많고 탈도 많으니 국가의 안보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6.25사변이 북침이라고 하는가 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요즈음, 교육이 시급히 정립되지 않고는 안 될 일이다. 과거는 역사로 돌리는데 역사도 바로 기록되어야 하고 바로 알아야 하며, 현재도 역사를 바탕으로 하는 연속이 란걸 가르쳐야 한다.

 

6.25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인데 그들과 잘해보자 하니 뒤에서 칼 맞을까 걱정이다. 누가 뭐라 해도 우리가 그들보다 군사적으로 강해져야 한다.

기억하자 6.25 ” “ 6.25를 모르는 세대들에게 이야기 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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