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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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없는 유모차
소설가 석 도 익
누구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애기를 낳으면 밖에 데리고 다니고 싶을 게다. 아기 부모는 말할 것도 없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도 일각이 여삼추다. 할머니는 포대기에 띠 매서 업고 마을가서 손자 손녀 자랑하고 싶었는데 아들 녀석이 유모차를 제일먼저 사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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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다니면 참 편리하다. 아기는 아기대로 업으면 아무리 편하게 한다 해도 움직이질 못하고 매달려 다녀야 하니 업은 사람이나 업힌 아이나 힘들었는데 참 편리한 세상이다. 하긴 예전에는 아기를 업고 싶어서 업은 게 아니라 일을 해야 함으로 어쩔 수 없이 업었던 것이다.
유모차의 주인은 걷기전의 아기라 자라서 걷기 시작하면 유모차는 아파트의 다용도실이나 창고에 잠시 머문다. 머물다 어느 순간에는 귀찮은 존재가 되고 끝내는 ‘처분’해야 하는 물건으로 전락한다.
이제 유모차의 주인공은 없다. 이 추세라면 혹시나 며느리가 아기를 더 낳는다 하더라도 이 때 묻은 유모차를 다시 쓸 일 없다. 새거나 다름없지만 이웃이나 사촌의 새아기가 태어나도 가져다 줄 것이 못된다. 요즘 세상에 귀한애기에게 헌 것을 사용하지 않으려하기 때문이다.
결국 도시에 사는 아기엄마는 버리고 시골 사는 할머니는 주워온 것이다.
할머니는 매일같이 유모차를 밀고 다닌다. 때가 묻어 꾀죄죄하지만 아직은 새것같이 잘 굴러 가는데도 조심스럽게 밀고 간다.
작달막하게 줄어든 키에 꾸부정한 모습은 세월 흘러간 자국들이 훈장처럼 매달린 할머니가 밀고 가는 유모차에는 귀여운 손자나 손녀가 타고 있는 게 아니고, 할머니가 길가에서 뜯은 나물이 바구니에 담겨 오롯이 앉아있을 뿐이었다.
할머니가 밀고 가는 유모차는 본인은 평생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었던 세월을 사신분일 것이다.
“늙으면 어린애가 된다.” 는 이야기는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가 아니더라도 다시 돌아가는 귀향이다. 누구든지 태어나고 자라서 젊음을 지내고 늙고 병들어 돌아간다.
이 돌아가는 과정이 다시 어린아이가 되는 것이다. 힘이 약해지고 정신은 없어지고 잘 안 들리고 똑똑히 안 보이는 어린아이로 다시 돌아간다.
조그만 것에도 노여워지고 서운하고 생각도 짧아진다. 이를 젊은이들은 알 수 없는 것이다. 부모님은 언제든지 뭐든지 잘하셨고 잘 드셨고 자식들을 위해서 뭐든지 잘해주시던 생각에만 머물러 있다. 이제부터는 보호해 드려야 할 어린아이로 돌아가 계시다는 사실을 모르고 인정치 않는다,
나이든 부모는 자신이 자식들의 보호자로 언제 까지나 자식들에게서 눈을 떼지 말고 보살펴주어야 할 아이라는 생각이 굳어져 있다. 혹시 굶주리고 있지나 않은지, 이 험난한 세상에 잘하고 있는지, 이래저래 늘 자식들 걱정으로 사는 게 부모다.
지난날보다는 지팡이를 짚고 다니시는 어르신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지팡이 같이 자식들에게 의지하기 보다는 앞세워서 밀고 같이 가는 유모차가 더 좋은 동무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