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도익 <칼럼>

춘궁기

돌 박사 2013. 4. 20. 18:22

2013-04-20 오전 10:31:36 입력 뉴스 > 칼럼/사설

[석도익 홍천문인협회장 칼럼] 지난날에 춘궁기



초가지붕 추녀 끝에 주렁주렁 매달려 거꾸로 자라는 탐스러운 고드름이 두터워지는 햇살에 녹아 고드름 끝에 매달린 물방울에 영롱한 무지갯빛을 반사하며 낙수되어 댓돌 밑에 흥건하게 추락한다.

 

▲ 석도익 홍천문인협회장

 

낙수와 깨진 고드름이 떨어져 뒤엉키는 소리에 마루 밑에서 낮잠을 즐기던 게으른 삽살개는 네눈박이 눈꺼풀에 매달린 졸음의 무게를 들어 올려 실눈으로 지그시 바라보고는 흰 눈이 날릴 때 모양 좋아라. 날 뛰기는커녕 흥미 없다는 듯 다시 눈을 감아 버린다.

 

떨어질 줄 모르게 엉겨 붙었던 땅도 느긋이 포옹을 풀고 겹겹이 얼었던 얼음장 밑에 서도 물 흐르는 소리가 정겹다.

 

검게 보이던 소나무 잎이 푸른빛을 되찾은 뒷동산 양지바른 산자락에 밤나무 숲에 자리 잡은 욕쟁이 할미 묘 잔디에도 따스한 볕이 고르게 널려있고 가물가물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우악스럽게 욕을 잘했다고 해서 욕쟁이 할머니로 전해지는데 상상속의 할머니 하고는 전혀 닮지 않은 피곤하고 외롭게 보이는 허리 굽은 할미꽃이 햇빛이 놀다간 묘지 봉분 금잔디를 뚫고 올라와 진 한 자줏빛 꽃망울을 터트리며 쓸쓸하게 피어났다.

 

잠결에 달콤한 밤은 점점 짧아만 가고 나른하게 졸음이 칭칭 감겨오는 낮은 자꾸만 길어져 가는데 마음은 왠지 대추나무 가지에 걸려서 바람 따라 떠나려고만 하고 있는 가오리연같이 푸른 하늘을 훨훨 날고 싶기만 하다.

 

일제의 착취 후에 다시 전쟁의 폐허 위에 오는 봄은 왜 그리 긴긴 해에 뱃속에는 거지가 전세들이고 있는 것 같이 배는 쉬 고파 오는지……. 소작으로 농사지어 양식 제동대기란 아침밥 저녁 죽으로도 어려울 형편이었다.

 

살림살이 야물지 못하면 장리쌀 얻어다 먹고 가을에 갚는 신세를 되풀이 타령으로 하여야 하고 살림 알뜰한 악착같은 여인네는 산나물과 소나무 껍질 칡뿌리 등의 초근목피로 봄이 가져다주는 천혜의 자연식으로 대체 연명하며 보릿고개의 험준한 준령을 넘어야 했다.

 

눈이 녹아 흐른 물을 가두어 놓은 다랑논에서 입 떨어진 개구리들이 요란하게 몇 날과 밤을 울고 나면 실개천 흐르는 강가에 포동포동한 버들강아지가 눈을 뜬다.

 

버들피리보다 더 구성지게 들려오는 밭갈이 하는 구장네 상머슴 김 총각의 소몰이 타령은 건너편 밭둑에서 나물 캐는 마을 처녀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이 즈음이면 처녀들의 두근거리는 봉긋한 가슴과 붉어지는 얼굴을 닮은 산기슭에 피어나는 연분홍 꽃, 그리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촌스럽지도 않은 꽃으로 아이들이 더없이 좋아하고 반가워하는 진달래가 수줍은 듯 살짝 살짝 피어나기 시작한다.

 

지금의 진달래꽃은 누구나 아름답다고 하던가. 예쁘다고 하겠지만 가난에 익숙하게 굶주리던 지나간 시절, 춘궁기에 피어나는 꽃은 아름답다가 보다는 우선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더욱 좋았기에 크게 인기가 있는 꽃이었다.

 

진달래 꽃 소식이 전해지면 악동들은 산으로 몰려간다. 서로 앞 다투어 산을 오르다 함박 핀 진달래꽃이 박색으로 피어있는 나무를 보면 악동들의 마음도 가볍고 신나게 둥실 하늘을 날아오른다.

 

입이 꽃물이 들어 시퍼렇게 되도록 따먹고 한 아름 꺾어 들고 내려오는 길은 전쟁의 잔해가 곳곳이 남아있는 곳에서 전쟁놀이로 둥그렇던 해를 서산마루에 넘기고 어둠을 헤치며 집으로 오게 된다.

 

꺾어온 진달래꽃 나뭇가지는 못자리 논에다 꽂아놓고 어른들의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에 효도를 하는 기회도 주어졌다.

 

‘진달래꽃이 많이 피어나는 곳에서 문둥이가 숨어 있다가 아이들을 잡아간다’는 어른들의 말은 무서웠지만 응달쪽 진달래가 다 시들 때까지 악동들은 산에 오르기를 쉬지 않는다.

 

그것은 점심을 못 먹는 날이라도 그렇게 허기를 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진달래꽃이 아름다워서가 아니었다. 독이 있다고 먹지 못하는 철쭉꽃은 더 아름다운데도 좋아하는 아이들이 없었다.


 

가난할지언정 인심은 풋풋해서 못자리 만들고 볍씨를 뿌리고 나면 풍년을 비는 고사떡을 만들어 못자리 논에 ‘고수레’하고는 마을 집집에 고루 돌리는 떡은 너나없이 대가족인 그때 아이들 몫으로 작은 감자만큼 떼어주는 떡이 왜 그리 감칠 맛나게 맛있었던지…….

 

‘봄 떡을 새알만치 먹으면 나비같이 가볍게 날아간다’고도 했었다.

 

못자리 논에 꽂아놓은 진달래나무에도 파릇파릇 잎이 나올 때면 악동들의 까까머리에는 군데군데 빌기 먹은 자욱이 더 크게 번져가고 보릿고개 중턱에서 서쪽 새가 울고 넘는데 텃밭에는 탐스러운 감자 싹에서 자줏빛 꽃이 하나 둘 별처럼 피어나기 시작한다.

 

저 언덕 보리밭에는 하니 바람이 녹색물결에 하얀 포말을 지우며 파도를 타고 기진해진 보릿고개를 먼저 넘어가고 있었다.

 

오래전에 보릿고개도 고속도로로 만들었고 검소와 절약으로 살던 때를 지나서 소비가 미덕인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래도 가난했던 지난날을 잊지 말고 가끔은 ‘있을 때 잘해’ 란 말을 여기에도 인용하였으면 한다.

 

 

※ 편집자 주 : 칼럼의 내용은 홍천인터넷신문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홍천인터넷신문(hci20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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