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도익 <칼럼>

친구마저 빼았겼다.

돌 박사 2013. 4. 6. 14:09

2013-04-06 오전 9:08:25 입력 뉴스 > 홍천뉴스

[석도익 문인협회장 칼럼] 친구마저 빼앗겼다



‘여자친구’, ‘남자친구’ 마저 젊은이들에게 빼앗겼다. 내게는 정말 친구인데 여자라 하니까 젊은이들은 이상하게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친구나 남자친구라고 하면 요즈음에는 사귀고 있는 이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백발이 되어가는 노년이지만 어릴 때부터 남자 여자 구별 없이 우정을 쌓아오던 친구들이 많아서 만나면 반가운데 어째서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되지 못한다는 말들이 요즘 같은 현대에서 발생한 건지 모를 일이다. 어깨동무하고 놀던 소꿉동무들이 몸은 늙어가도 마음만은 동심으로 추억을 즐기는 것이 친구다.

 

우리나라사람들은 같은 또래를 동무라고 불렀는데 순우리말인 동무라는 말을, 갈라선 북한에서 그들의 것으로 전매특허 내듯이 모든 인민에게 사용함으로서 우리는 그들에게 동무를 빼앗겨 버렸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무라는 말 대신에 쓰고 있는 말이 친구(親舊)다. 친구란 한문글자 그대로 오랜 세월동안 가깝게 정을 나누며 살아온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이 친구마저 젊은이들이 자기가 사랑하는 정인을 가리키는 말로 가져다 쓰고 있으니 지금껏 우정을 나눈 남자친구나 여자 친구들을 어떻게 불러야 되겠는가? 참으로 백주대낮에 도둑맞은 셈이다.

 

웃기는 일은 이것만이 아니다. 결혼한 부인이 남편을 오빠라고 한다. 도대체 어떻게 오빠와 같이 결혼생활을 하며 살까? 뒤집어질 일이다. 남녀가 처음으로 사귀고 있을 때 부끄럽기도 하고 남에게 감추는 미덕도 있어서 그냥 오빠라고 할 수도 있었다.

 

또한 과거의 경우에는 남자가 연상이었던 관계로 오빠라고 부르면 부르기 무난하기 때문에 연애시절에는 애칭존칭으로 그렇게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결혼하고 아이까지 자라고 있는 마당에도 오빠라고 불러댄다면 이건 아니지 않은가? 친정에 오빠를 봐서라도 그만해야 할일이다.

 

한 나라의 사회 질서와 예절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고 그 첫 실행은 호칭에서부터 싹이 튼다. 격랑과 굴곡의 세월을 겪었기에 빨갱이들이 죽기보다 보기 싫어서 빨강색까지 버렸다가 이제야 겨우 찾았다. 지금은 빨강색에 거부감도 사라졌고 어느 정당에 이미지 색깔로도 어울린다싶게 친근해져간다. 이제는 동무도 찾아오고 여자 친구도 남자 친구도 제대로 돌려주어야 한다.

 

남자친구들은 든든해서 좋고 여자 친구들은 정이 많아 좋다. 친구는 오랜 세월 서로 정을 나누며 함께한 사람들이지 젊은이들이 사귀고 있는 이성이 아니다.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애꿎은 친구 팔지 말고 좀 더 확실하고 떳떳하게 표현하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우리나라 말처럼 아름답고 적재적소에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드물다. 국민의 눈과 귀를 장악하고 있는 신문방송매체에서는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좋겠지만 틀린 것은 바로잡아 순화시키는 사회운동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 편집자 주 : 칼럼의 내용은 홍천인터넷신문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안영근 기자(hci20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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