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도익 <칼럼>

가정의 달에 부치는 글

돌 박사 2012. 5. 26. 18:15

2012-05-26 오전 8:44:52 입력 뉴스 > 칼럼/사설

[석도익 칼럼] 가정의 달에 부치는 글



5월은 계절에 여왕이라고 한다.  생명이 움트고 만물이 생동 생동하는 계절이며 꽃이 앞 다투며 피어나는 아름다운 달이다. 특히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할만치 가정과 관련되는 날이 많다.

 

▲ 석도익 한국문인협회 홍천지부 회장

 

푸르러가는 5월은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이 들어있는가 하면 청소년의 달이기도 하다. 이토록 가정과 관련된 날이 많이 들어있는 가정의 달이다. 사람들의 삶에 기본이 되는 생활중심은 가정이기 때문이다.


어르신과 어른 아이들이 구성원이 되는 가족은 부부가 중심이 되어 한 솥밥을 먹는 식구(食口)로 하나의 가정을 이루어 살아가는 집의 개념이다.


산업사회로 전환되면서 가정은 핵가족화 되어가서 이제는 1인가구가 점차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고 보니 가정이라는 구성원인 가족 모두가 함께 식구로 살고 있지 못하니 가정생활에서 기본 질서와 인성이나 효와 예의가 생성되어지지 아니하니 사회질서에 혼란의 원인이 되어지고 있다.


어르신과 어른들의 가르침 보다는 영상매체나 인터넷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자라는 청소년들의 사회문제역시 크게 나타나고 있다.


요즘 청소년들 겁나는 아이들이라 한다. 비행과 폭력을 서슴없이 저지른다는 말이다.


모두 내 자식들 같건만 어른들은 이를 피하기만 한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청소년들의 비행을 뻔히 보면서도 모르는 체하는 것이 사회현실이다.


그들은 사물을 대하는데 정이 없고, 모든 일을 실리적이며 이기적인 쪽으로만 생각하려 든다. 언제라도 잘못 건드리면 시한폭탄처럼 폭발할 것 같다면 서도 정작 자신들의 자식들은 잘도 옹호하고, 두둔하며, 대변하려 든다.


이를 한탄하는 어른은 누구이며, 그렇게 못되게 자라는 아이들은 누구란 말인가?


누구나 자기는 아니라고 발뺌만 하지 말고,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인 것이다.


필자가 지난날 근무했던 곳은 많은 고객을 맞이해야 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갖추어야 하는 곳으로 객장(客裝)에는 항상 손님들이 붐비었다.


그중의 대부분이 여성들이라 유모차에 갓난아이부터 한창 장난이 심한 개구쟁이들까지 다양하다. 그 아이들은 어머니를 따라와서는 사무실을 삽시간에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린다. 영업장 위에 신발을 신은채로 뛰어올라 꽝꽝거리며 뛰는 아이들, 집기, 비품을 와장창 둘러 박고, 서류들을 헤쳐 놓으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소리를 지르고…….


사무실 안은 삽시간에 어린이 병정놀이터로 변한다. 그렇다고 고객에게 싫은 표정을 지을 수도 없으니 직원들은 얼굴의 미소가 어정쩡하게 변하고, 난감해하며 아이들의 어머니가 단속해 줄 것을 은근히 기다리지만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그 바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냥 무관심이다.


오히려 어쩌다 자기 아이들과 시선이 마주쳐도 대견스러워하는 웃음까지 주는데 는 아연해 질 수밖에 없다. 참다못한 신입사원이 어쩌다 아이들을 꾸짖으면 아이의 어머니는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하여 그 사원은 상사 보기가 민망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게 된다.


그런 어머니들의 모양이나 차림새를 보면 꽤 교양 있는 사모님들 같은데도 속은 텅 빈, 찌그러진 개밥 그릇 같이 느껴진다.


장난치는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이야기 한껏 뿐인데 그 지경이니 하물며  남의 집 자식들에게 잘못을 꾸짖어 깨우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학교 선생님이 교육상 어쩌다 꾸중을 한다든가, 가벼운 사랑의 체벌을 가하게 되면 학부모들이 어김없이 항의를 한다니 그런 풍토에서 어찌 올바른 훈육이 이루어지겠는가?


지금에 어르신들은 겉으로는 엄격하고 속으로만 사랑했던 구시대의 유교관념과 효의 엄격한 가치관속에서 어린이답게 크지 못하고 자랐다. 어른들 말씀이 옳든 그르든 말대꾸는 꿈도 꾸지 못했다.


층층 대가족 속에서, 젊은 나이에 아이를 낳으면 부끄러워, 부모 앞에서는 내 자식이라도 덥석 안아보지도 못하던 분들이니 애정을 몸으로 느끼지 못함은 당연한 일이였을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먼저 먹고 싶어도 어른들이 먼저 드셔야만 슬금슬금 눈치봐가며 조금씩 먹어야 했고, 어른들이 하는 많은 일을 학교공부보다 우선으로 돕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버짐 먹고 배만 볼록 불어난 볼품없는 아이가 성장한 것이 지금의 우리 어르신들이니 그것이 너무나 깊은 한이 되고, 원이 되어서 자식들에게만은 배불리 먹이고, 잘 입히고, 남보다 더 많이 가르쳐 누구에게라도 기죽지 않게 키워야겠다는 일구월심 속에서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바쳐 길러낸 자녀들이 오늘의 이런 사회형상을 만든 것이다.


그러니 객장에서 소리를 지르고, 뭐 좀 건드렸다고 해서 귀엽고 예쁜 우리아이를 꾸중하여 기를 죽일 수 있냐는 것이다.


공중도덕은 어려서부터 몸에 익혀줘야 한다. 그것은 기죽이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잘못된 가치관이다.


지난 어느 날 만원 시내버스 속에서의 일이다. 한 아주머니가 여남은 살 되는 아이를 이끌고 올라왔다. 한손에는 커다란 보따리가 들려 있었고 몹시 지치고 힘겨운 눈치다. 이미 빈 좌석이 없는 차안을 두리번거리자 옆에 앉았던 젊은이가 자리를 양보하였다.

 

그 아주머니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자기 아이를 끌어다 앉혔다. 하긴 귀여운 자식을 어찌 서서가게 할 수 있겠는가? 자신은 힘이 들더라도, 아이가 의자에 올라서든, 옆자리의 할아버지 수염을 잡아당기든 그저 사랑스럽기 만한 모양이다.


자기 자식만 귀여우면 모든 게 괜찮은 것일까? 이런 일들이 그 아주머니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누구나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하고 있으니 당연하다할지 모르겠으나, 장래를 위해선 아주 잘못된 교육이다.


어른들이 서있는 버스나 전철의 좌석에 아이들은 앉아있다면 이들은 후에 어떻게 하겠는가?  언제나 그는 자기만을 생각할 뿐 양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길들여졌으니까.


어머니들은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먼저 아이들을 많이 먹게 한다. 하지만 과잉보호를 받은 그 아이들은 자라면 자기만을 생각한다.  우리자신이 이렇게 자식을 키우고 있으면서,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고, 예의 없다고 한탄하니 결국 자신들이 뿌린 결과를 스스로 한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르신들 세대는 부모님을 원망하며 자랐다. 제대로 키우지도 못할 형편에 자식만 많이 낳아 남같이 가르치지도 못했느냐고……. 그렇게 원망을 하면서도 부모가 힘들게 고생하시는 현장을 같이 체험하였기에 부모님 마음고생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래서 자신의 힘을 조금이라도 보태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우리 어른들은 어르신을 깍듯이 공경하고, 노인들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위엄을 갖추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오늘의 젊은이들은 경험과 연륜에 앞서 논리와 구실을 붙인 산술식 계산법으로 따지기 일쑤다. 또 자신에게 이익이 안 되면 모든 것을 부정하려든다. 자기가  조금이라도 더 알고 있다싶으면 윤리와 예의보다 자기가 우선한다.


부모는 당연히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자식이 원하는 대로 뒷바라지를 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자신들은 그것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은 뭐든지 다해주었고, 달라는 것이면 다주었기 때문에 자식들은 부모가 힘들고 어려운 것을 잘 모른다.


?너희들은 알 필요 없다.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해라.?하고 아이들에게 공부만을 주문하는 부모가 많다. 과대망상적인 과잉보호와 지나친 열등의식에서 발생된 허황한 꿈이 우리의 자녀들을 그르치고 있음을 알아야한다.


비만으로 뒤뚱대는 아이에게 빵과 우유를 들고 쫓아다니지 말아야한다. 그것이 어째서 잘못된 일이며, 왜 하지 말아야 되는지를 깨우칠 때까지 이해시키고, 그래도 안 되면 체벌을 해서라도 일 깨워야한다. 그것은 기죽이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용기를 키워주는 것이 된다.


버스나 지하철에 타면 어른들은 자리에 모시고 아이들은 옆에 서서 가게 하라. 그것이 발육 과정에 있는 어린이에게 좋을 뿐만 아니라 올곧고, 양보 할 줄 알고, 인내심을 기르는 좋은 훈련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은 먼저 어른에게 드리고 아이들은 나중에 나눠주자. 그것이 후일에 자신이 존경받을 수 있는 교훈이 될 것이다.


내 아이가 한 일이 옳은 일이 아니었음을 아이가 깨우치기 전까지는 그 아이의 부모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음식의 고마움을 알 게하고, 쌀 한 알의 의미를 소중하게 하며 풀 한포기, 곤충 한 마리에도 애정을 갖게 하여야 하며, 돈으로 팔고 사는 식의 액면보다는 모든 것에 대한 소중한 의미의 가치를 느낄 수 있게 일깨워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진한눈물에 큰 웃음과 따듯한 정을 가슴에 가득히 채워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다.


가정의 달이다. 가정의 꽃은 아이들이다. 우리 아이들은 기대해 볼만한 꿋꿋함도 있다. 자신의 일은 자신이 책임진다는 진취적인 기상도 있다. 또한 올바른 판단이고 패기와 자신감도 차있다.

 

절망 위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비전을 가진 세대로 보아도 좋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 어른들이 새싹을 기르는 정성으로 잘만 이끌어준다면 말이다.

 

 

김하나 기자(hci200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