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도익 <칼럼>

어버이날 어머니들께 드리고싶은 글

돌 박사 2012. 5. 8. 12:57

2012-05-08 오전 8:52:39 입력 뉴스 > 칼럼/사설

[석도익 칼럼]
어버이날 어머니들께 드리고 싶은 글



이 지구상에 사는 사람들은 각기 다른 인종의 무리가 많은 나라를 이루고 살고 있지만 여성들은 대개 치마를 즐겨 입는다. 왜 여자들은 옛 부터 치마를 입어왔을까?

 

▲ 석도익 한국문인협회 홍천지부 회장

 

나는 치마를 입은 여성을 보면 제일먼저 어머니가 떠올려진다. 가난했던 시대, 어머니는 언제나 검정 물을 들인 광목천으로 만든 무명치마를 입으셨는데 산골아이라서 숫기가 없었던 나는 낮선 사람이 집에 찾아오면 부끄러워서 어머니 치마 뒤에 숨었던 기억이 있다.


형에게 얻어맞고 눈물 콧물을 흘리며 흐느껴 울 때도 어머니는 치마 자락으로 닦아 주고 감싸시며 달래주시곤 했었다.


동네로 말가신 아버지를 기다리는 별빛이 총총한 밤 툇마루에 앉아 아들딸을 양 무릎에 누이고 당신의 치맛자락으로 덮어주며 자장가나 옛날이야기를 해주시던 때도 그 무명의 긴치마였다.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백방으로 다니던 중  눈감으면 코 베어 간다는 낫선 서울 신설동 버스대합실 쪽 의자에 아들을 누이고 치마폭으로 덮어 잠들게 하고 당신은 긴 밤을 앉아서 새우셨던 어머니의 무명 긴치마는 오랜 세월이 흘러가도 잊히지 않는다.


옛 한복의 치마는 열두 폭이라고 했을 만치 넉넉한 폭과 길이로 만들어 여인의 전신을 감싸고 남을 만 하였다.


서양의 드레스도 길이는 길지만 폭은 그리 넓지는 않을 것이다.


여인의 긴 치맛자락은 부드러움과 정감이 넘치는 마음과도 같아 섬세한 행동 아름다운 곡선 포근한 심성이 느껴진다.


그러나 지금은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아니면 평생 두세 번 입어보는 한복에서만 연출 될 뿐 생활하기 간편한 바지나 손수건만한 치마까지 거리에서 나부낀다.


정인의 열 두 폭치마자락에 자연의 풍광과 연모의 글을 붓 가는 대로 써내려갔던 옛 문인들의 멋도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경제가 어려워지면 여자의 치마길이가 짧아진다는 속설은 아마도 근거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짧은치마에는 여유도 없고 후덕함도 없다. 급하고 각박해진다, 오히려 노출된 다리를 덮을 헝겊 자투리가 더 필요할 때가 있다.


긴 치마가 없는 어머니는 그늘이 없어 어린자식들이 비집고 들어 갈만한 안식처가 없다.   어린아이들의 바람막이도 안 되는 짧은치마나 바지는 어린아이를 포근하게 덮어줄 수 없으니 마음도 빈약하다.


어린자식의 콩닥 이는 가슴을 어루만져주고 가려줄 어머니의 여유로운 치맛자락이 현대에 와서는 없어져간다.


배가 아프다면 배를 쓰다듬어주고 머리아프다면 머리를 만져주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빨리 병원 보내고 배고프다면 빵 사먹으라 하고, 놀고 싶으면 게임방이나 TV 보면 된다.


아이들에게도 용돈이나 많이 주고 커서는 재산이나 많이 물려주면 잘살아갈 것이라 생각하는 것인지 죽기 살기로 돈벌이를 하는 거다.


어린자식을 무릎에 누이고 자신의 치마 자락으로 덮어주며 볼록한 배를 따듯한 손으로 쓰다듬고 어루만져주면서 자장가를 불러주거나 옛날 옛적 야기를 들려주는 어머니는 이제는 옛이야기에서나 나올 것만 같다.


세상살이 조금은 나아져 윤택하게 산다고는 하지만 날이 갈수록 각박하게 돌아가는 세월같이 치마폭이 좁아지고 치맛자락이 짧아진 어머니는 언제나 바쁘시다.


입시만을 위주로 공부를 가르치는 학교에서 메마른 정서와 부족한 애정을 채우지 못한 가슴에 공부로 채워 넣어야 하는 아이들은 오늘도 남부럽지 않은 풍요 속에서도 허기를 느끼며 소란과 소음 속에 있으면서도 고독을 씹으며 외롭게 자라고 있지나 않은 건지 어버이날에 뒤돌아보게 하는 안타까움이다.

 


김하나 기자(hci20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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