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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내의 고장, 홍천에서 발원하여 홍천군의 1읍 9개 면의 지천을 모두모아서 북한강으로 흐르는 화양강(華,陽江)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지명을 사용하여 홍천강(洪川江)이라고도 하는데, 물안개 피어나는 강 언덕(북방면 하화계리 도둔)에 자리한 외딴집 화실에는 팔순을 넘기신 노 화백(서양화가 박석환 옹)은 오늘도 독도를 그리는데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
독도에 태극기의 혼을 그려 넣은 그림을 이미 국회에 증정하여 국회의장실에 걸었고 김형오 국회의장의 감사하는 마음을 담은 감사패를 2010년 2월 23일에 받기도 했다.
박 화백은 독도그림을 힘이 다할 때까지 계속 그리고자 한단다. 시도 때도 없이 걸핏하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망언을 일삼는 일본인들도 당신이 그린 독도그림이 많아질수록 독도가 어디에 가든지 우리영토임을 입증하고 우리나라 영토임을 자랑하기 위함이란다.
박석환 옹은 서울시가지 전경을 21미터 길이에 그림으로 그려 총 8폭에 담아 냄으로서 경이적인 그림의 역사를 만드신 분으로 화단에서는 받기 힘든 3.1문화상을 2005년에 받은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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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강원도 홍천군 서면 대곡리 종자산 기슭에 자리한 농가에서 1929년에 태어나서 4살 때 부친을 여의고 팔봉산 자락에 있는 큰댁에서 자랐다고 한다.
춘천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봉직하다 6.25를 겪고 다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진학하여 수석으로 졸업을 하였고 성심여자고등학교에 교사시절 박근혜를 가르치기도 했다고 추억담을 털어놓기도 한다. 동덕여자대학교 교수를 역임하다 뜻한바 있어 10여 년 전에 홍천 고향으로 내려와 홍천문화예술회관에서 후학들을 지도하며 마지막 고향을 위해 봉사를 하기도 하였다.
그의 화실에는 꽉 들어찬 그림 작품 때문에 발을 옮겨놓은 틈조차 없다. 마침 서울에 그림 작품을 보관한 낙원아파트가 지난번에 화재로 인해 많이 유실되고 간신히 구해낸 작품들을 모두 이곳으로 옮겨왔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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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많은 작품들을 전시관을 만들어 전시를 하였으면 좋겠는데 이제는 몸도 마음도 늙어서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씁쓸하게 웃는다,
“내가 죽은 후에 이 작품들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생전에 바람이 있다면 내 고향인 이곳에 미술관을 마련하여 이 작품들이 밝은 조명아래서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뿐이다.”라는 말을 하면서도 독도를 그리기에 여념이 없으시다.
햇빛도 차단되어 어둑한 화실 안에는 졸고 있는 형광등 불빛 그늘아래서 홍천이 낳은 화가 박석환 옹은 마지막 힘을 다하려는듯한 눈빛과는 다르게 여위고 주름진 성성한 손가락에 잡힌 붓을 다시 고쳐 잡고 작품을 그려내고 있다. 대한민국의 땅 독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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