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여왕이자 가정의 달인 오월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일찌감치 자리 잡고 있다.
몇 년 전의 일이다. 막내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단다. 어머니께서 우리 형제자매들을 모두 모이라고 하시는 전갈이다. 그것도 어린이 날인 내일 점심 때 어머니 계시는 집으로 한사람도 빠짐없이 오라는 것이다.
어머니의 명을 받은 막내는 우리 팔 남매가 여기저기에서 둥지를 짓고 사는 곳마다 전화를 걸은 동생도 마흔을 갓 넘긴 나이지만 그래도 만만한 것이 막내라 심부름은 그 동생 차지다.
우리집안은 손(孫)이 번창하지 않아 일가친척이 별로 없는 귀한 성씨(姓氏)다. 우리 집만 보더라도 아버지께서 오대(五代)독자로 태어나셨단다.
당시는 어느 고을이나 집성촌이 많았음으로 마을에서 외톨박이로 살아오신 것이 외로움이 너무나 사무치신 나머지 당신은 아들 오 형제에 딸 셋을 두어 팔 남매를 낳으신 것을 대단한 자랑으로 여기셨으며 가난과 전란 속에서도 모두 잘 길러내신 분들이다.
아버지께서는 한학에 조예가 깊으시고 호방하시며 술을 좋아하시는 분으로 일찍이 청운의 꿈을 안고 경찰시험을 보아 합격하였으나 할아버지의 완강한 반대로 꿈을 접으셨단다. 아들이 일본치하의 경찰이나 관리를 한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신 할아버지의 노발대발에 아버지는 여러 날을 집에 들어서지 못하셨단다.
아버지께서는 할아버지 대를 이어 적은 토지를 가지고 농사를 천직으로 어쩔 수 없는 가난을 힘겹게 짊어지고 전란과 혼란 속에서 여러 식구 호구 해 오시느라 청운의 꿈을 한 번도 비상하지 못하시고 사셨다. 그러다 자식들이 다 성장하여 기쁜 날이 조금은 많아지려는 즈음에 작고하셨다.
홀로 남으신 어머니는 우리 조선의 여인 중에서도 여인이라고 생각된다. 쪽 머리 비녀가 잘 어울리시는 동그란 얼굴에 그늘 속 밀대같이 길쭉하거나 물동이를 많이 이고 다녔어도 작달막하게 눌리지 않은 적당한 키에 코고무신에 찰랑대는 치마가 아름다운 분이시다. 가녀리고 연약하게 보이지만 인동초보다 더 강인하신 분이다. 6. 25당시 아버지께서는 전선에서 싸우고 계시는 전란 속에서도 어머니 단신으로 당시는 내가 막내로 4명의 자녀를 업고 걸려서 피난보따리 이고 들고 적진을 넘나들며 어미 닭이 병아리 데리고 다니듯이 피난살이를 해내셨다.
총알이 비켜가고 전염병이 뒤돌아가고 먹을 것이 하늘에서 떨어지지도 안았을 터인데도 하늘이 돌보셨음인지 우리 모두를 무사하게 길러내신 대단하신 분이다.
중공군장교가 권총을 들이대는 위협에도 아이들을 감싸 안고 굴하지 않으시었고 적군 틈에서도 일을 해주고 우리들 먹일 음식을 얻어냈으며 여자만 보면 물불 가리지 않고 덤비는 미군들도 어머니가 부엌칼로 당신가슴을 자해하려는 연극에 혼비백산 도망을 가는 것을 우리들은 보았다.
오 대 독자 집안에 외며느리로 어린 나이에 시집오셔서 혈혈단신 살아오신 어머니가 이제는 모두 모이면 당신의 핏줄을 이은 자손이 증손자(曾孫子)까지 팔십 여명이 족히 되는 대가족이 된 것을 흡족해 하시는 어머니는 벌써 팔순을 넘기신 고운 자태의 노 할머니가 되어있으시다.
다음날 우리 형제자매 그리고 가까운 곳에 사는 손자들이 하나둘 어머니 집으로 모여들었다. 타지에 있는 아들네 두 집 딸네 한집 빼고는 가까운 곳에 사는 오남매네 부부 그리고 손자손녀들까지 이십 여명이 넘는다.
어머니께서는 다들 모이자 오늘은 당신께서 맛있는 점심을 살 테니 너희들이 좋은 식당으로 가자하신다.
“야! 오늘이 어린이 날 이라서 할머니께서 쏘시는 거예요” 하고 다 큰 처녀가 된 손녀딸년이 요새 젊은이들이 하는 유행어로 소리치자 모두가 그 제사 알고는 한바탕 웃음이 터진다.
식당의 큰방을 다 차지하고 앉은 우리들을 둘러보시고 어머니는 환한 웃음을 지으시며
“아까 저놈 말대로 오늘이 어린이 날이라서 내가 자네들에게 선물을 사주려고 해도 다 같이 늙어가고 다 큰애들한테 사줄게 별로 없고 해서 맛있는 점심이나 먹이려고 불렀다.”
팔순이 넘으신 분이신 데도 아직 카랑카랑하신 목소리에 세월의 온갖 풍상에도 깎이지 않으신 다부진 모습이 너무 고마웠다.
어머니는 또 한 번 대견스럽게 둘러보시고 말씀을 이으신다.
“자네들이 어릴 때는 어린이날이다 그런 것이 없었는지 있었는지 몰랐지 배불리 먹이지도 못하고 남들같이 입히지도 못하고 오직 목숨이나 붙여 키우는데 정신이 없었으나 말이다. 그러나 너희들이 잘 자라주어 그것만이 다행으로 이렇게 살아왔지……. 이제는 자네들이나 손자 손녀들까지 어버이날이다 생일날이다 하여 나는 받을 것 다 받는 게 오히려 미안해서 오늘이 마침 어린이날이라 내게는 자네들이 아직 어린아이같이 생각되니 어린이날을 택하여 한턱내는 거니 마음껏들 먹어라” 하신다.
“엄마! 오늘은 어린이니 술을 먹으면 안 되겠네요?” 하는 막내 동생의 응석에 또 한 번 와르르 웃고 말았다.
“아니지 술도 음식이다. 그리고 다 큰 어린이는 술을 마셔도 되니 얼마든지 마셔라 오늘은 주정도 받아주마 심술부리는 것으로 알면 되니까 그렇지?” 어머니의 재치 있는 말씀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어린이날 우리 형제자매는 처음으로 어린이가 되어 어머니를 바라본다. 그간 그 은공에 보답도 못해드린 것은 고사하고라도 곁에서 모시지 못하고 가끔 생색이나 내는 것으로 효도랍시고 얼버무리고 말은 나날들 과연 내 아이들한테 마음 쓰는 반절이라도 어머니를 생각했을까하는 죄책감에 가슴이 아리다. 이미 피부는 쭈그러드는 주름으로 여위어 성성한 외로움이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것 같은 어머니! 그러나 너무도 따듯한 어머니 손을 잡고 어린이날을 보낸 기억이 새롭다.
어린이날은 1919년 기미운동을 계기로 어린이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하고 헐벗고 굶주린 어린이들을 위하여 1922년에 방정환 선생을 위시하여 일본유학생 모임의 색동회가 주동이 되어 5월1일을 어린이날로 정하였다가 1927년에 이르러 5월 첫 일요일로 변경하고 다시 1945년부터 5월5일로 정하였고 인간으로서의 어린이들의 권리와 복지를 보장하여 줄 것을 어른들이 서약한 어린이 헌장을 1957년 5월5일 어린이날에 반포하게 이르렀다.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어린이날 노래 중 일부 생각나는 구절이다.
우리나라가 어린이날을 제정한지도 오래되지만 내 어릴 때의 기억은 어린이날 기념식을 한답시고 운동장에 세워놓고 각급 기관장들이 번갈아 연설을 길게 하는 통에 진력한 시간을 보내고 어린이노래 합창을 끝으로 어린이날을 보낸 기억밖에 없다.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되고 아이들이 자라 어린이가 되니 나의 어린이날을 생각하며 그날 하루만은 작은 선물도 사주고 함께 놀아 준다던가 놀이터나 공원에 놀러 가는 것으로 어린이날을 보냈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해마다 자라는 어린이는 더 예쁘고 영리하고 똑똑해지는 것 같다.
지난날의 어린이 하면 머리는 몇 군데 빠지고 콧물은 줄줄 흘러 내려오다 훌쩍하면 다시 들어가고 그러다 기차굴 입구에 말라붙어 있는 그런 예쁘게 볼 수 없는 아이들이 많았다. 어른들은 일하느라 돌보지 못해 혼자 아무 곳에서나 자연을 놀이터와 기구로 삼아 흙투성이로 자란 어린이들 조금 크면 동생을 업어주며 애를 보아야했던 어린이, 어른 심부름을 해야 하고 일을 거들고자 학교를 결석했던 시절의 어린이도 어린이였다.
효(孝)가 모든 행실에 기본으로서 집안에 어른 공경이 우선 이고 아이들은 뒷전이었음으로 굳이 어버이날을 만들 필요가 없던 시절을 지나 사회가 급진적으로 핵가족화 되고 서구화되면서 어린이 왕국이 되고 어른이 난국이 되어간다. 이에 어버이날을 제정했으나 어버이날이라 하여 꽃 한 송이 가슴에 달아드리는 것으로 효를 대신했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의 어느 가정이건 한번 둘러보라 어린이들에게 더 많은 돈이 지출이 되고 방안이 좁게 들어차 있는 어린이 용품들과 부족함이 없게 해주려는 부모의 극성에 어린이 왕국이 되어가고 어린이는 절제와 인내를 모르고 자란다. 반면 그늘 속에서 다시 골방으로 물러나고 있는 우리들의 어버이들 아니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미래를 위한 꿈나무는 잘 키워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서 ‘잘’ 이란 많이 가 아니며 과잉이 아닌 자립이며 넘치는 것은 모자람보다 못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다.
어린이에게 쏟는 정성 우리 어르신들에게도 조금은 써야한다. 돈이 아닌 마음으로 말이다. 어린이날은 이제는 없다한들 어린이 위하지 않는 부모 없다. 하지만 휴일로 지정하지 않은 어버이날 우리는 무었을 했는가? 단 하루의 어버이날을 365일 모두 한다한들 흘러 넘치지 않을 것이리란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