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람들이 모두가 똑같이 생겼다면 그것도 큰일일 것이다. 뒷모습이 아는 사람과 똑같아 달려가서 어깨를 탁 치며 반가워하다 실수를 하는 일이 있다.
어떤 때는 보고 싶었던 사람이 지나가서 급히 따라가 보면 닮아 보이기는 해도 그가 아니라는 설렘 뒤에 허탈감을 동시에 느낀 적도 많다. 그러한 충돌과 혼란을 미리 예방하기 위하여 조물주는 사람을 만들 때 서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창조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생긴 모습은 그렇다 치고 성격 또한 다양하다. 사람의 성격은 살아가는 방식과 인간관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고지식하여 남의 것은 바라지 않고 제 것도 남에게 주지 않는 사람을 일러 “제 털 뽑아 제구멍에 박는 사람”이라고 한다.
어디 이런 사람뿐인가? 제 털도 뽑지 않고 사는 사람도 있고, 제 털 뽑아 남도 주고 남의 털도 내구멍에 심는 사람, 남의 털만 뽑아 자기구멍에 박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제 털 뽑아 남의 구멍에 심는 이도 허다하다.
필자가 은행에 오랫동안 근무하다보니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다양하게 볼 수 있었다. 정말 천태만상이다. 살기가 넉넉하여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해 본적이 없는 사람이 어쩌다 갑자기 돈이 필요해서 은행에 오면 보증이고 뭐고 필요 없이 자기만 믿고 대출해 달란다.
자기가 제일인줄 아는 이 사람은 자기 재산이 얼만데 내가 그까짓 것 떼어먹겠냐고 허나 그것이 통하는 신용사회가 정착되지 않은 사회이고 보니 은행원과 옥신각신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은 제 털도 안 뽑는 위인이다. 안되면 안 되는대로 혀를 끌고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염분을 빨아먹는 한이 있더라도 남의 도움 안 받는다. 이런 사람일수록 위급한 상황에서는 대처 능력 없이 혼자 죽어갈 위인이다.
어떤 이는 남에게 보증 서달라기 싫으니 자기 재산을 근저당하고 그 가치만큼만 대출해달라 한다. 아니면 무보증으로 자기 신용 만으로 해 달라 하는 이런 사람은 사는 방식이 제 털 뽑아 제구멍에 박는 사람이다. 고지식하여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라 좋을지는 모르나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늘 왕따를 면치 못한다.
자기의 재산은 부인이나 타인명의로 다 빼돌려놓고 그럴싸한 사업한다고 속이며 친척이나 자기의 밑에 직원이나 거절하지 못할 친구들을 연대보증세우고 거액을 대출 받아쓰고 갚지 않아 보증인의 재산을 날리게 하는 남의 털만 뽑아 자기구멍에 박는 사람도 허다해 불신의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그러나 내 것을 남에게 아낌없이 봉사하는 제 털 뽑아 남 주는 사람도 있으니 이 사회가 더 이상 차갑게 식어가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신용사회를 부르짖어도 은행에서 대출자 하나만 믿고 쉽게 대출하여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불안정의 연속인 인간사에 어느 날 어찌될는지 누가 보증하겠는가?
그러니 아무리 적은 액수의 대출이더라도 보증인은 필요한 것이라 이 때문에 친한 친구나 친척 또는 이웃사람의 연대보증인 노릇하다, 가정과 인생이 풍지박살 나는 일이 다반사라 웬만한 사람은 한번쯤 겪었을 일이다.
서로 더불어 살아가야하는 세상, 친구가 돈이 필요할 때 조금만 힘이 되어주면 일어설 수 있다면 무엇이던 도와주리라고 자신들이 보증서고 친구에게 대출해줄 것을 오히려 사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보증서는 자식은 낳지도 말라했는데 이렇게 진한 인간관계에서 오는 우정과 믿음은. 그가 살아가는 삶을 그대로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친구가 잘못되면 당연히 자기들이 책임지리라는 각오로 보증인들이 대출자를 데리고 와서 그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을 볼라치면 더불어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힘겨운 일이 닥치더라도 혼자서 힘들어하게 하지 않고 주위에 여러 사람들이 더불어 걱정하고 협력하여 쉽게 풀어 나아간다. 이것이 내 털 뽑아 남에게도 심어주고 남의 털도 내가 필요할 때 받아 심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인생을 바로 알고 사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자신의 몸에 장기를 나누고 피를 수혈 받아 새 삶을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회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우리”가 해체되어 “나”로 독립하는 이기적인 개인주의는 더불어 살아가는 정을 식어가게 하고 있어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