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1월에는 무었을 했는지도 모르게 바삐 지내다보면 얼떨결에 다가온 2월은 배움터에서 주어진 학업을 모두 마치는 졸업식이 있는 달이다.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학교에서 기간의 학업을 마친 학생들이 졸업을 한다. 그간 정들었던 학교, 그리고 학우들과 선생님을 다시는 여기에 모여 시간을 함께 할 수없기에 이곳의 배움을 마무리하고 그간의 추억들을 기념하며 더 높고 깊은 학문을 배우기 위해 떠나는 뜻 깊은 졸업식이다.
졸업식이 있는 학교 정문 앞에는 꽃이나 선물용품을 파는 분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졸업하는 학생의 부모와 친척 친구들로 북새통을 이루어 숙연한 졸업식장을 축하의 장으로 만든다.
부모들은 열심히 공부를 하고 졸업을 하는 대견한 자녀를 축하주는 의미로 온 가족이 외식을 하게 되니 주변 중국집이나 양식집에서는 모처럼 졸업시즌특수호황을 맞기도 한다.
과거에는 헤어짐이 슬퍼서 울음바다가 되곤 했던 졸업식이 근자에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민망하리만치 변해가는 세태에 아연해진다. 연일 보도되는 졸업식 뒷이야기를 얼룩지게 하는 보기도 듣기도 민망할 지경의 졸업식 뒤풀이 사건사고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가슴 아프다.
지난날에는 입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던 교복이었다. 잘 입고 다니다 졸업 후 후배들에게 물려주기도 하는 자랑스러운 교복인데. 더 입을 일 없다고 북북 찢어발기고 밀가루로 튀김범벅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선배가 앞장서서 옷을 벗기고 알몸으로 졸업을 하게 하다니...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니 잘 견디며 살아가기 위한 전투훈련인가? 아니면 부끄럼 없이 뻔뻔하게 살아가라는 예행연습일까?
어쩌다 우리의 아이들이 이렇게 되어가는 것일까?
행위자를 찾아내서 꾸짖고 벌준다고 해결 될 일이 아닌 것 같다. 어느 누구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잘잘못은 부모와 어른과 이웃, 사회와 국가의 책임이다. 우리 모두의 잘못이었음을 깊이 뉘우쳐야할 일이고 우리가 무었을 어떻게 하였기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를 찾아서 고쳐야할 것이다.
어머니는 아이를 잘 먹이고 잘 입히고 무조건 잘해주려고만 했지 아이들에게 사람으로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할 도리를 가르치지 못하고 있지 않나 뒤돌아볼 일이다.
필자가 자연관찰학습 지도를 나갈 때 느끼는 일인데 아이들 끼리나 선생님과 함께 온 아이들은 안심이 되는데 어머니와 함께 온 아이들은 오히려 불안하기만 하다. 공중질서를 안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기물을 파괴하는가 하면 다치기가 일수고 심지어는 전시용물건을 가져가기도 하는데 이 모든 일들이 어머니를 따라온 아이들이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러는 와중에도 어머니들은 아이들에게 대단히 관대하다. 그러니 어머니 믿고 그러는 것이리라. 한마디로 어머니 자격시험제도라도 있어 시험보고 아이를 낳게 하였으면 어떨까 하는 말도 되지 않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한편 아버지 역시 가정에서 권위를 잃었는지 아이들 말을 듣지 않는다. 아이들의 잘못된 부분의 훈육마저 자격 없는 어머니의 권한이라 핵으로 분열된 가정에 이 아이들의 기본을 가르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잘못 쏜 화살은 학교의 선생님들에게로 날아간다. 그러나 입시위주로 맞추어진 학교에는 공부만이 우선이다. 그 공부라는 것이 공식과 암기 경주뿐이다. 사람을 사람 되게 만드는 인성교육은 맛보기에 불과하다. 더욱 선생님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학부모들의 지나친 자녀과잉보호 때문에 학생들에게 훈육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있다.
필자가 가끔 순회강의가 있어 학교에 가보면 선생님마저 지도하기를 꺼려하는 학생들이 있을 정도니 이들과 함께 하는 수업분위기가 좋을 리 없을 것이다.
우리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청소년들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나가기를 꺼려한다. 그들이 잘못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고 고쳐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피하는 것이 상책인 오늘날의 실태다. 그 청소년들은 누구의 자식들인가?
이웃과 사회가 다 공범이다. 청소년들의 탈선 그 자체를 부추겨서 코 묻은 돈을 버는 악덕상술과 이를 이용하여 번창하는 기업도 생겨나고 있다.
따지고 든다면 정부가 가장 커다란 과오를 범하였을지도 모른다. 국가의 백년대계는 교육에 있다. 그러나 정책이 바뀔 때마다 우왕좌왕한 교육정책과 경제논리에 초점을 맞춘 교육은 사람을 사람 되게 만드는 인성교육을 등한시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교육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법석을 떨고 있지만 막상 근본적인 문제해결책을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많이 배우고 잘났다 해도 사람으로 된 사람이 아니라면 사람 사는 세상에서 널리 쓰임 없는 사람이다. 사람을 사람 되게 키우고 가르치는 인본교육의 바탕을 국가가 정립하여야 할 시급한 문제다.
또한 졸업(卒業)이라는 한자어는 일을 마친다는 뜻으로 사용되는데 배움이란 끝이 없어 죽어서도 배워야 한다고 이르는데 심오한 뜻을 가지고 있다는 한자에서 그 학교의 공부를 마친다 하여 졸업이라고만 한다.
한자에 문외한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졸(卒)자의 뜻이 군사 하인 심부름꾼 집단 마침 등의 뜻도 있고 사람의 죽은 날을 기록하는데 쓰이는 것으로 아는데 더 높은 학문을 배우기 위하여 떠나며 현재 배우던 곳에서 끝마치는 행사를 졸업이라는 말로 하기에는 격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더 좋은 우리말과 글을 찾거나 만들어 성스럽고 자랑스럽게 쓰도록 하였으면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