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결도 긴 여운으로 남을 때가 있었다.
살아가는 길목에서 지나치고 지나왔던 숫한 나날들. 이것만은 잊지 말아야지 하던 순간들도 지나가는 시간 속에 묻혀 기억 밖으로 사라지고 잊어버리자 잊어야 한다고 고개를 저어버리던 상처 난 생각들도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그리워 질 때도 있다.
흔히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사는 동안 아등바등하며 사느냐? 고 때로는 대범한 척 해보지만 잘났거나 못났거나 잘살거나 못살거나 사는 방법이란 밥 먹고 옷 입고 산다는 것이 같은지라 특출 나게 산 다해도 느끼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없어 나름대로 순간의 행복감과 벗어나고 싶은 괴로움도 다 같은 무게와 부피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어쨌거나 자기가 태어난 날을 당사자가 모르는 게 당연한데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가 일러준 날을 생일로 기억하고 그로부터 해마다 셈을 더해 자기의 나이를 쌓아간다. 그러나 나이가 많아지면서 늙어간다는 것을 망각하려는 듯 가끔은 자기의 나이를 가물가물 잊어도 가며 살지만 아이들이 자라나는 것을 보게 되면 화들짝 놀라 자신을 뒤돌아보며 살아가는 게 인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만물의 영장이라 하지만 모든 동물 중에서도 가장 성장이 느려 낳은 지 제 돌이 다되어서야 겨우 걸음마 정도 간신히 뒤뚱거려도 장하고 기특하다 한다. 낳자마자 몸에 물만 마르면 자기스스로 일어나 뛰어다니며 먹을 것을 찾아 먹는 동물들이 허다하니 열등감 생긴다.
아무튼 사람이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힘이 세어서도 아니며 오래 살아서도 아니다. 다만 머리가 명석하여 지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던가?
조물주의 선택받은 좋은 머리로 이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며 오고와서 끝이 없고 가고 가서 끝이 없이 외상도 에누리도 사정도 없이 가버리는 세월 속에 역사를 이어 가며 살고 있다.
배부르고 등 더우면 만족하는 동물들과 판이하게 다른 사람은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한 욕심은 끝없이 이어진다. 더 편하고 더 아름답고 보다 잘살고 번식을 위한 성(性)이 아닌 즐기기 위한 성욕(性慾)으로 향락화 되어가고 있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 중에 틀린 것이 두 가지나 있다. 사람은 늙어 가면 재물에 대한 욕심이 점점 없어질 것이라는 것과, 또 하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면 질투도 퇴색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간다.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와는 정반대로 늙어갈수록 재물에 대한 욕심은 더 많아지고 있는 것 같고 부부간에 질투도 더 심해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누가 보더라도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는 부자 노인인데도 남의 것이라도 더 빼앗을 수만 있다면 더 빼앗으려 드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이고 길가에 쓰러져 죽은 거지노인의 주머니에는 어김없이 깊게 감추어놓은 돈이 있었다는 사실에서 우리사회의 현실과 누구나의 가슴에 뭉쳐있는 거대한 욕심덩어리를 볼 수 있게 된다. 왜 그 무거운 짐을 자꾸 만들어서 지고 다니려 하는지 모를 일이다.
인간의 새끼로 태어난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그 형태와 기능이 분리되어 다 자라지 않은 어린 시절 서로 발가벗고 뛰어 놀아도 즐거웠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가면서 서서히 분리되는 남자와 여자는 이성으로 눈을 뜨게 되면서 서로의 짝을 찾는다.
질서 있는 사회 공동체 생활을 위하여 한 짝씩 맞추어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부부가 되어 한 가정을 이루며 살려 한다고 공개 광고를 하는 결혼식을 하고 그들은 같이 살며 자식을 낳아 연결고리를 만들어 대를 이어간다.
나라에서도 이들이 부부임을 인정하여 호적에 등재되고 가정을 보호하니 안심하고 도란도란 재미있게 살아가면 되련만 사람의 욕심은 물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욕 또한 이에 뒤지지 않는 한수 위인지라 파란 만장한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는다.
서로 반(半)하고 사랑하여 결혼하면 아내는 남편의 소유가 되고 남편 또한 누구에게도 양보 못할 아내의 것으로 소유권을 보존 등기한 것으로 알기 때문에 사랑이 아닌 소유로 서로의 굴레를 매놓고 고삐 단단히 잡아당기며 노심초사 살고 있지 아니한가? 아이들 또한 같은 맥락으로 소유하려 하지만 이들은 성장하면 스스로 그 힘에 의하여 고삐를 놓게 되지만 그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니 이것만은 다행한 일이다.
내가 이 세상에 온 날을 기억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지만 자기의 갈 날이야 어찌 알 수 없는 것, 살기위한 생존경쟁 속에 부와 명예를 탐하며 살기에 늙어 갈수록 욕심은 무성한 가지를 치게 되어 많아지는 것일까?
검은머리가 하얀 파뿌리 같이 되고 이빨은 상하여 입술마저 쭈그러들고 기 없는 몸에 햇볕이라도 쪼이려 양지 끝에 모여 지나온 세월 속에 일들을 이야기하며 같이 앉아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일지라도 서로의 짝이 생존해 있다면 그것은 아직 소유권이 유효한 자기의 것이기 때문에 질투의 화신은 용서 못하고 한판 부부싸움의 씨앗이 되기 마련이다.
알 수 없다.
아름다운 사랑보다는 지나친 소유의 욕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