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찌 잊으랴 쓰라린 상처가 있는 6월이다.
시국이 어수선 하다. 나라 안이나 북쪽이나 나라밖에도 모두가 혼돈의 시기다.
전 세계가 경제는 바닥을 기고 있고 신뢰는 부도를 내고 있다.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일제강점에 목숨 걸고 항거했던 우리의 선조들은 나라를 독립시켰다.
그러나 우리세대는 독립된 땅을 지킬 겨를도 없이 분단을 맞이했고 어물거리다 침략을 당하여 수많은 죽음의 피를 흘리고 이산과 폐허의 상처를 남긴 채 침략자가 지쳐서 잠시 쉬고자 제안한 휴전을 하고 있을 뿐이다.
남북의 위정자들은 이를 기회로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자신들의 위상을 높이고 때에 따라서는 바람막이 방패로 이용하기도 하였으나 어찌되었던 우리는 한민족으로서 남북이 통일을 해야 한다는 염원을 해왔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통일이여 오라”고 한에 서린 노래를 불러 온지도 어언 회갑을 넘기는데 오라는 통일은 오지 않고 무서운 핵이 만들어졌다.
쌈 잘하는 놈에게 내가 먹을 과자라도 자주 주어 나를 때리지 않게 하려고 했다. 놈의 눈치를 보며 좋은 말로 추켜세우고 억지로라도 웃어 보이고 역성들어주며 놈의 환심을 사기위해 평화롭게 지내기 위해 온갖 방법 다 써왔다.
햇볕정책을 쓰면 저들이 더워서 옷을 벗을 거라고 있는 것 없는 것 다 퍼다 주었는데도 그들은 옷을 벗기는커녕 옷 속에 더 무서운 무기를 숨기고 있기에 바쁘다.
이런 마당에 발표하는 시국선언이 정말 다행이다 싶었는데 그 시국선언이 아닌 것 같아 너무 실망스럽다.
모두가 말잘 하는 민주, 민주주의 정말 좋은 말임에는 틀림없다.
서양의 민주주의나 지금의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무언가 다른 것 같다.
내가 배우고 알기로는 민주주의란 다수의 의견이라면 소수가 다른 의견이 있더라도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작금의 실태는 소수의 집단이 다수의 의견인양 목소리를 높이고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다수의 의견도 같이 대들어 이기려고 한다면 그건 더욱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다, 다수의 의견은 그것이 타당한 것이기 때문에 긍정하고 따르는 것인데 소수의 과격한 여론이 사회 전체의 의견인양 비춰지고 있다.
소수 사람의 과격한 비판발언이 인터넷을 달구면 군중심리가 뭉쳐지고 신문방송은 그것이 전부인양 학성 한다.
민주주의에 맹점이 있다면,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소수의 의견은 무시된다는데 있다.
그러나 소수의 의견일지라도 존중해서 합일점을 찾도록 노력해 주든가 다수를 위하는 일에 소수에게 피해가 있다면 이에 따른 보상이 이루어진다면 이것은 완전한 민주화일 수는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집단인 서울대학교 교수님들이 시국선언을 한단다. 그 뉴스를 접하는 국민들의 대다수는 정말 서울대학교 모든 교수님들의 의견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 국민들은 신문방송의 보도를 100%믿는다. 이는 심각한 과장광고다. 공정위 제소감이다.
신문방송은 언론 업이다. 뉴스는 상품이다. 그러니 과장된 소식을 내보낸다면 국민들은 비싼 구매를 한 것이다.
이 기회에 하나 더 언론에 묻고 싶다. 진보는 무엇이고 보수는 어떤 것이란 말인가? 어디서 만들어낸 말이고 어디에다 쓰는 단어인가? 누가 구태의연하고 누가 앞서간다는 말인가? 이런 글을 쓰는 필자도 보수인가?
나라사랑하는 일인데 안전하게 천천히 가는 것은 보수고, 불안하지만 빨리 달리는 것이 진보라면, 조금은 이해할 수 는 있겠지만 이런 청군백군은 만들지 말았으면 좋겠다.
국민을 잠에서 깨우고 국민을 잠재우는 것 또한 언론의 위대한 힘일진대 어두운 길에 빛이나 더 밝게 비춰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본 칼럼은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사회인사의 기고 내용은 홍천인터넷신문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