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세상
석 도 익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서민의 한사람으로 열심히 뛰어서 당당하게 역사 앞에 등장하였다가 만만치 않은 현실정치에 많은 시련을 겪기도 하였다.
명암이 교차되는 낮과 밤의 양면을 넘나드는 여정을 넘기고 제16대대통령의 임기를 마치자 고향으로 돌아갔다.
밀짚모자 쓰고 막걸리 마시며 자전거타고 다니는 편한 백성 되어 사는 모습을 바라보며 역대 전직 대통령과는 무언가 다른 인간다운 모습에 국민들은 그를 다시 읽어가고 있었는데...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모든 생물은 그 생명이 다하는 기간이 있음으로 언젠가는 죽는다.
하루를 살다가는 하루살이에서부터 천년을 산다는 주목나무 일지라도 태어나서 죽는 다는 것은 똑같을 것이다.
단 하나의 생명이고 단 한 번의 생이기 때문에 생명에 대한 애착은 생명체의 모든 것이기에 살기 위해서는 다른 생명을 먹고 이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해치면서 악착같이 살아간다.
생물은 수명이 다해서 죽는 것만이 아니라 병들어 죽고 다쳐서 죽기도 하며 또는 타의에 의하여 생명을 잃는 수도 있으니 결국 태어나고 죽는 것 자체가 자신의 뜻에 따라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람만이 유일하게 자기 자신의 생을 자신이 마감할 수 있는 특권이 있어 살기가 힘들든가 살수 없으면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기도 한다.
요즈음 들어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그것도 많이 살아보지도 않은 젊은 사람들이 많다.
사람은 수명이 다하기 까지 살려면 늙고 병들어 몸을 지탱하지 못하게 되어 자식들이나 병원에 자신의 몸을 맞기고 힘든 날들을 보내다 생을 마감하게 된다.
요즈음 논란이 되어온 안락사문제도 찬반양론에 다 같은 무게가 있어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다.
자신의 몸을 스스로 추스르지 못하고 타인에 의하여 생을 의탁해 움직여야 하는 당사자의 마음은 차라리 빨리 생을 마감하는 게 낫다고 애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는 더 살고 싶다고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을 수도 있다. 스스로 자신의 생을 자신의 의도대로 마감하려해도 죽을힘이 없어 못 죽을 수도 있다.
우리네는 하루에도 수없이 죽겠다. 죽는다. 죽고 싶다. 라는 말을 하면서도 열심히 살고 있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막다른 골목에서는 죽음으로 모든 것을 끝내고 죽음으로 모든 것을 대신하려 할 수도 있다.
근자에 들어 많은 분들이 자신의 목숨을 자신이 가져갔다. 얼마나 죽기보다 힘든 삶이였기에... 눈을 감아보자 무엇하나 보이지 않는 아무것도 없는 세상이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모든 것이 존재한다. 허나 내가 없어도 지구는 돌아가고 태양은 내일도 오늘과 똑같이 떠오를 것이다.
죽을 만큼 힘든 세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죽기보다 어려운 삶이 아니었으면 더 좋겠다. 죽기보다는 살기가 더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사람 사는 세상” 을 그리며 살다가 사람 사는 세상에 살기가 힘들어서 스스로 떠나가신 님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