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한 개비의 행복
석 도 익
세상은 온통 금연 열풍이다.
담배를 팔면서도 건강에 해롭다는 문구를 넣어야 하고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담배를 산다. 공공장소에서는 피우지 못하니 한참을 찾아내야 되는 구석진 흡연실이나 간이화장실 같은 곳에서 쫓겨 다니는 범죄자들의 모임이나 밀담처럼 조바심을 하며 피워야 한다.
청소년 시절 어른들의 전유물인 담배를 호기심으로 도둑고양이마냥 몰래 숨어서 친구들과 눈물을 삼켜가며 어른이 되는 실습용으로 배운 것이 건강을 생각해야하는 노년에까지 조강지처의 정과같이 끊지 못하는 애증을 앓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자들의 기호품으로 사랑받아온 담배. 한때는 뇌물용으로 또는 선물용으로 가강 많이 이용되었고 사교용 접대용으로서도 귀중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백해무익한 존재로 유죄를 선고했다. 담배가 사람에게 조금의 이득도 없이 해만 끼치는 백해무익한 존재로 인간의 폐를 구멍이 나게 해왔는지에 대해서는 좀 생각해볼 일이다.
10인치 이내의 담배개피 끝에 불을 붙이면 그 온도가 500도 이내이고 빨아 댕길 때는 800도에 달하는 불기둥을 양손가락에 끼우고 입술에 지그시 물고 힘껏 빨아들였다. 천천히 내뿜으면 뭉게구름이 되어 생각에 잠긴 눈망울을 가리며 피어오르는 담배연기를 바라보다, 그 멋에 반했다는 여성들도 있었단다.
담배가 인간에게 주는 악영향을 열거하며 이 땅에서 몰아내야한다고 총궐기하고 있는 요즈음 애연가들은 내 집에서도 설자리가 없어 아파트 발코니 로 쫓겨나고 큰 건물이나 공공장소에서 떳떳치 못하니 주눅 들어 눈치 보며 감추어둔 불륜의 내연녀 만나듯 정말 보고 싶어 미칠 지경에야 숨 가쁘게 찾는 사이가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담배에는 삶의 철학이 있다
청소년 시절 어른들 몰래 화장실에 숨어서 도둑담배로 배운 탓에 화장실에 가면 담배가 생각이 나고 담배를 피워 물면 화장실에 가야하는 것이 습관화된 애연가들이다.
지금은 천인이 공로할 질병의 가해자로 피해 다니고 있는 담배지만 그래도 아무리 미워하려해야 미워할 수 없는 공헌을 한 부분도 너무나 많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 한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서양속담과 같이 담배 한 개비가 가져다주는 여유와 행복을 애연가들은 알고 있다.
진한 추억이 새겨진 청소년시절 담배꽁초 찾아 헤매다 길이가 제법 긴 장초를 얻어 피울 때의 기분은 느껴본 사람만이 그 행복을 알 것이라고 한다.
가난하고 살기 힘들 때일수록 자기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 것이 사람이다. 또한 이때는 웬만한 질병쯤은 그냥 지나쳐 피해가는 모양이다.
그러나 먹을 것이 풍족해지고 살기가 편해지면 자신을 돌아보고 건강도 챙긴다. 또한 몸도 아픈 곳이 많아지고 정신도 나약해지는 것 같다.
지난날 못 먹고 못 입어 건강마저 부실했던 시절 담배는 더욱 몸에 해로웠을 것인데도 질도 좋지 않은 싸구려 독한담배 피우면서도 금연해야 한다는 소리 별로 없이 살아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 와서 배부르고 등 따습게 잘사는 시대가 되고 보니 삶에 여유가 생겨 자신의 건강을 돌보니 담배가 해가 된다는 것을 실감하고 금연결심을 하게 되는 것이리라, 담배가 분명 몸에는 좋을 리 없다. 그러나 힘들고 지칠 때 그는 가장 친한 벗이 되어주었고 억울하고 분하고 슬플 때 담배는 가장 가까이서 위로해 주었으며 상사의 억누름에나 아내의 볼멘소리나 가장의 힘든 짐의 무게에 이유 없이 솟아오르는 자학의 분노도 담배는 애인의 손길로 여유를 주고 연기 속에 묻어주었다.
또한 담배는 인간관계의 외교를 담당하여 화합을 이루는데 일조를 하였고 담배는 윗사람이나 연장자 앞에서는 피우지 않음으로서 동방예의지국을 더욱 공고히 하는데 공헌하였고 간혹 빈부의 차이를 느끼게 하기도 하지만 우리들의 후한 인심은 담배에서 더욱 느낄 수 있었다.
담배의 역사
담배는 음식도 아니다. 식물인 담배 잎을 태워 그 연기를 공기처럼 들여 마셨다가 다시 내뱉는 것이니. 먹는 것도 아닌 것이 기호품이 된 것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했을 때, 원주민들이 이미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인디언들은 담배에 약효가 있다고 믿었는데, 이 때문에 담배가 유럽으로 전해져 들어가게 되었다고 하며. 평화의 상징으로 파이프를 만들어 피우는 등 담배는 인디언들이 의식을 치를 때 중요하게 쓰였고 한다.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담배를 경작하는 원시적인 방법을 개발했던 것은 확실하다. 담배가 유럽으로 들어감으로써 전 세계 곳곳으로 퍼지게 되었고, 프랑스는 1556년, 포르투갈은 1558년, 스페인 1559년, 영국은 1565년부터 담배를 심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담배가 한국에 들어온 17세기 초에는 의약품이 발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담배를 의약품으로 많이 사용하였다고 한다. 기생충으로 인해 복통이 심할 때 담배를 피워 진통시키고, 치통이 있을 때 담배 연기를 입안에 품어 진통시키며, 곤충에 물렸을 때 그 부위에 담배를 피운 후의 침이나 담뱃대 관에 묻어있는 댓진을 발라 상처의 지혈 또는 화농방지제 등으로 이용하였다. 특히 문헌에 의하면 담(痰)을 치료하는 데 효과가 크다고 한다.
한국에 전래된 담배 피우는 풍습은 이렇다 할 기호품이 없었던 당시에 상하 계급을 막론하고 급속히 퍼져 나갔다.
담배가 1618년(광해군 10년)에 일본을 거쳐 들어왔거나, 중국 베이징[北京]을 내왕하던 상인들에 의하여 도입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한국 재래종의 품종명이 일본에서 도입된 것은 남초(南草)·왜초(倭草)라 하고, 베이징이나 그리스도교인 에 의해 도입된 것은 서초(西草)라 부른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이렇게 전래된 담배는 1921년까지는 자유 경작을 하다가 그 뒤에 전매제도로 바뀌게 되었다.
담배를 피우는 도구
애초에는 담뱃잎을 태양에 말려서 잘게 썰어 담뱃대에 꼭꼭 눌러 담고 차돌조각에 쇠붙이를 부딪쳐 튀는 불꽃을 떡취나물 잎을 말려 손으로 비벼 만든 솜뭉치에 댕겨 피웠는데 부싯돌과 떡취잎으로 만든 불쏘시개와 담배는 쌈지를 만들어 허리춤에 차고 다녔다.
담뱃대는 담뱃잎을 넣고 불을 붙이는 대통은 반구형 금속관 하부에 ㄴ자 모양의 가는 금속관이 연결되어 있는 형태이며, 이 관의 반대쪽 부분인 설대와 연결된다. 설대의 끝 부분에는 역시 금속으로 제작되어 입을 대고 연기를 빨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어진 물부리가 연결되어 있다.
담뱃대의 담배통과 물부리의 재료로 상류층에서는 금·은·옥으로 만들었고 서민층에서는 구리·적동·놋쇠 등 금속을 사용하였다. 설대는 참대나무·오죽 또는 참대에 낙죽(烙竹)을 하거나 염색하여 만들었다. 담뱃대는 길이에 따라, 긴 것을 장죽(長竹)이라 하고, 설대가 없거나 짧은 것을 단죽(短竹) 또는 곰방대라 한다.
지체가 높고 나이가 연만하신 어르신의 담뱃대는 길이가 길어 자신이 직접 불을 붙이기가 힘들 지경이라 하인이나 손자들이 시중을 들기도 했다. 길이가 점점 짧을수록 하인들이나 젊은 층으로 구분되어 졌다.
어르신들은 외출 시 장죽을 허리춤에 보란 듯이 꽂고 다니는 것을 멋으로 여겼고 젊은 사람이나 하인들은 어른들에게 들킬세라 곰방대를 숨기고 다녔다.
담뱃대의 길이가 길어진 데는 담배연기가 대통으로 빨려 들어가는 동안에 독한 니코틴이 여과되게 하는 기능도 있었을 것이다.
처음 담배가 우리나라에 수입될 당시 상류층의 문화로 유입되었기 때문에 담배는 권위의식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담배통도 작고 설대도 짧았으나, 조선 말기로 갈수록 담뱃대가 길어지고 담뱃대에 대한 사치풍조 역시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전통공예로서의 담뱃대가 백동을 기본으로 하여 오동과 금은으로 만들어져 널리 애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시대변화에 따라 변천한 담배이름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담배사업은 1899년 12월 대한제국 정부가 궁내부 내장원에 삼정과(蔘正果)를 설치하고 나서부터라고 한다. 1905년 국내 최초의 궐련 담배인 「이글」이 생산됐으며 일제시대에는 「아사히(朝日)」과 「사쿠라」등 30여종이 발매되기도 했다. 일제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으로 우리 담배를 만들어 팔기 시작한 해방이후로 담배시장을 보면 그리 긴 역사를 가진 것은 아니나 시대에 따라 담배이름에도 민족적 문화와 애환이 담겨져 있음을 본다.
해방 후 40년대 는 일제강점 하에 잃어버린 민족성 고취를 위한 것으로 1945년 9월에 해방을 기념해 처음 생산된 담배는 승리(Victory)라는 담배다. 해방된 기쁨을 표현하고 있으며, 다음 해인 1946년에 국민 가슴에 민족의 영산으로 여겨지는 백두산이 나왔다. 49년 선보인 최초의 군용담배인 화랑은 81년 말까지 32년간 지속된 국내 최장수 담배로 통일 신라를 이룬 화랑도의 정신을 대변한다. 6·25를 겪으며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라는 가슴 아픈 노래와 함께 조국 수호에 대한 국민적 염원을 나타내고 있다. 이밖에도 무궁화/ 장수연 / 공작 / 백구 / 계명 / 샛별/ 백합/ 등이 줄지어 발매되어 민족적 정통성과 자긍심을 고취하였다.
50년대 전쟁 이후 폐허가 된 조국을 되살리자는 의미에서 건설이란 담배 이름이 붙여졌다. 이 외에도 파랑새처럼 전쟁 이후 희망과 의욕을 불어넣기 위한 노력이 엿보인다.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으로 57년에는 진달래나 사슴 등 평화와 조용함을 나타내는 이름들이 등장했다. 58년에 선보인 「아리랑」은 국내 최초의 필터담배이자 두 번 째 장수를 기록한 담배다. 아리랑은 우리나라 담배 명칭 사상 유일하게 다시 사용되어 88년까지 22년 동안 애연가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이외에도 백양 / 탑 /이 있고 권련이 아닌 담뱃대흡연인구를 대상으로 한 풍년초가 나왔다.
60년대에는 새마을 운동이 태동되면서 61년 7월 군사 혁명 정부가 국가 재건의 의지를 표현한 재건이 등장했으며, 8월에 박정희 대통령이 이름을 지은 파고다가 발매되기도 했다. 60년대에 중반 새마을 운동의 전개와 조국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며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나 ‘새 나라의 어린이’와 같은 노래처럼 국토 개발, 자주 국방, 빈곤 퇴치 등을 중점 사업으로 하여 담배에도 이런 시대정신을 나타냈다. 65년에는 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사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화된 담배공장인 신탄진 연초제조창 준공된다. 이 기념으로 신탄진이 나왔고, 제2차 경제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66년에는 새마을/ 새나라/ 상록수/ 희망/ 샘/ 그리고 69년에는 공급부족까지 나타나기도 한 귀한 담배인 “청자" 가 나왔다. 또한 전매청직원용인 전우/ 박하담배인 금관/ 이 있고 나비 /금잔디/ 해바라기 /스포츠/ 자유종/ 백조/ 수연 / 한강 / 설악 / 타이거/등 많은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70년대는 수출 주도 정책의 영향으로 제품의 다양화와 국내에 외국자본을 가지고 담배가 생산되었다고 한다. 태양이란 담배는 관광객용으로 나온 제품이고 이 외도 여삼연(고려인삼담배)이나 진생은 수출용으로 만들어진 담배이다. 이 수출용 담배는 세계인의 건강식품으로 각광받는 고려인삼과 홍삼을 넣어 만들었지만 외국인의 기호와는 달라서인지 결국 내수시장으로 돌리게 되었다고 한다. 남대문/ 환희/ 개나리/ 은하수/ 비둘기/ 학/ 명승/ 거북선/ 한산도/ 샘/ 수정/ 단오/ 하루방/ 연송/ 삼연/ 진생/협동/ 등도 선보였으나 이에 반해 양담배는 인기가 급상승했는데 전쟁 후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양담배는 과시용으로 많이 피웠다. 이에 전매청 직원들이 다방을 돌며 연기를 보고 감시를 하고 적발하여 벌금을 물리기도 했다.
80년대 담배는 점차 세계화에 접근한 담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먼저 선진국에서 사용하던 팽화엽을 원료로 배합한 솔이 나와 인기를 끌었으며 ,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자는 의미에서 88패밀리 제품인 88라이트/ 88골드/ 88멘솔 이 나오고 마라도/ 백자 / 장미 / 도라지 /한라산 / 라일락 /등도 이때 나왔으며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영어로만 쓰인 "EIGHTY EIGHT 88" 담배가 나왔다. 세계화와 올림픽 유치 성공에 대한 국민적 자부심의 표현으로 보인다.
90년대는 담배 시장이 개방되면서 외산 담배와 경쟁하기 위한 노력이 담배 이름에도 나타나고 있다. 이때 나온 담배로 초저타르, 초저니코틴 담배이자 엑스포를 기념하기 위한 엑스포 마일드 (1991년)를 비롯해 대부분 외산담배대응으로 나온 하나로(1992년),는 때마침 선거투표기호홍보로 어떤 정당에서 이용하기도 했다. 글로리 (1993년), 휴대 및 사용이 편리한 콤팩트(1994년), THIS (1994년), 오마샤리프 (1995년), 심플(1996년), ESSE (1996년), 겟투(GET2)(1997), THIS PLUS (1998)이다. 90년대 나온 담배는 대부분 외래어 이름으로 세계화 추세에 맞춰 작명한 것들이다. 그러다 1997년엔 국제통화기금 체제 극복의 염원을 담은 시나브로가 선보였는데 시나브로는 공모전을 통해 얻은 이름으로 IMF의 위기를 ‘조금 씩 모르는 사이에’ 극복해 나가자는 의도로 선정되었으며 이 외에도 한마음/ 잎스 / 마운트 / 디럭스/도 있었다.
2000년 이후에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소비자들의 금연월드컵운동이 확산됨에 따라 공개적으로 월드컵기념담배는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대신 시즌이란 담배가 나왔는데 담배포장에 빨갛게 에스자를 강조했는데 이는 SOCCER 즉 축구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상품에 축구경기의 모습을 담은 담배를 출시해 인기를 모았다고 한다.
이제 담배는 기호품의 의미를 넘어 현대는 소비자들의 건강과 새롭게 부각하는 젊은 층의 감각 요구조건에 맞춰야 한다는 마케팅전략을 내세워 저 타르 쪽으로 방향을 잡고 깔끔하고 고급스런 디자인을 갖고 나온 담배가 레종/ 시즌/ 더 원/으로 현재는 초슬림형 저타르 제품인 에쎄/ 라이트/가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다. 그 후에 나온 담배 디스 풀러스/ 타임/ 리치 / 루멘 / 디스진 / 시밀래/ 역시 독특한 디자인과 고급스러움을 강조한 제품들로 2003년에 나온 클라우드/ 나인/ 제스트/ 는 고가인 반면 은은한 카푸치노 향을 풍기며 포장도 기존의 담배갑 위를 개봉하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미는 슬라이드형 케이스로 고급스러움을 강조했다.
담배가 가야하는 길
이제 피고가 된 담배는 검찰의 구형을 앞두고 구명하려는 변호인단도 선임 못하고 국선변호사의 변론에만 의지하고 있다. 검찰은 담배가 사람들에게 끼친 범죄를 낫낫이 들추어 많은 죄목을 늘려 구형하고자 하고 판사도 이미 검찰 쪽으로 기우러지고 있다. 허나 담배는 피고이고 담배를 미워하던 자와 사랑하던 자 까지도 피해자인 원고에 있다. 변호인은 오늘도 법정에서 그래도 담배는 많은 사람들에게 삶에 여유를 가져다주고 좋은 인연의 교류를 하게 했으며 때론 찌들고 지친 삶에 용기를 주었음으로 무죄라 항변하나 증거가 불충분한 구두변론뿐이다. 포장된 담뱃갑에는 지나친 흡연은 건강에 해롭다는 리후렛을 달고나와 담배 한 개비에 행복을 꿈꾸게 하거나 울분과 스트레스를 풀리게 하기위하여 오늘도 자신이 가진 10인치이내의 생을 800도로 불살라버린다.
담배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필자로서도 말할 수 없다. 다만, 담배는 자신을 다 태우고 나면 재떨이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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