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수필화)

2. 우리나라 꽃

돌 박사 2007. 7. 5. 13:57

 

                           2. 우리나라 꽃

   지나치게 화려하지 아니하여 뽐내지 아니하고  꾸민 듯 조잡하지

 아니하여 자만하지 아니하고 가시나 독이 없어 남을 해하지

아니하며 넉넉함으로 평화스럽고 질긴 생명력으로 인내하며

강한 번식력으로 생존해온 무궁화! 피고 또 피어 삼천리를

화려강산으로 만든 무궁화. 마음 가는 곳에 그가 있음이니

하루아침에 나라꽃이 되어진 것이 아닌 단군조선시대부터

반만년의 세월 속에 민족의 가슴에 씨앗이 떨어져 심어지고

싹이 자라나 꽃이 피고 또 피어나 누가 뭐라고 한 것이 아닌데

자연스럽게 당연한 자리를 차지하고 나라꽃이 되어진 무궁화다.

 우리 민족의 그 모든 것과 너무나 닮은 무궁화는 산해경(山海經)

에도 언급되었지만 원중기(元中記)에서도 “군자의 나라에는

지역이 천리인데 무궁화가 많다.” 라고 했으며 고금주(古今註)

에서도 비슷한 기록이 전한다고 한다. 또한 신라에서도

최치원이 지어 효공왕이 당나라 소송에게 보냈다는 국서

 가운데 한국을 근자지향(槿花之鄕)이라 하여 무궁화의

나라라고 하였으며 고려 예종 때에는 고려를 스스로 근화향이라

자칭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군자의 나라 동이(東夷)는 사람들의 민족성이 군자답고

무궁화가 아름답게 피는 나라라고 예찬 받음으로서 우리는

 스스로 무궁화의 나라로 되어지고 조선시대에는 과거에

장원급제한 사람에게 임금이 어사화를 내리는데 어사화의

 장식이 무궁화 꽃이었다 한다.

 일제 강점기에 와서 무궁화를 사랑하는 민족정신의 응집력을

말살하기 위하여 날조된 무궁화에 대한 비난과 왜곡으로

수난을 격기도 했으나 이를 지키기 위한 우국지사들의

무궁화에 대한 사랑으로 민족정기를 일깨웠으며 그 은근과

끈기에는 그들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무궁화는 국기나 국가같이 확실한 법 규정이나 역사성을

갖고 있지는 아니하나 3,000여 년 전부터 민족정서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인용되었고 더욱이 1948년 정식 채택된 국가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란   가사는 국화로서 의미를

인정받았다. 또한 입법 사법 행정 삼부의 표상으로 무궁화가

사용되고 국기의 봉우리로 제정되었으니 무궁화는 세계의

각 나라들처럼 임의로 나라꽃으로 제정하지 않고도 명실상부한

나라꽃이 되어진 것이니 진정한 민족의 꽃이 라 할 수 있다.

 -이하 생략-            석도익 작 수필 <일편단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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