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칼럼 >
복덕방 과 구멍가게
소설가 석 도 익
복덕방(福德房) 과 구멍가게라는 말은 왜 그런지 비슷하게 느껴지면서 어딘가도 모르게 정이 묻어나서 친근한 이웃으로 함께하면서 우리서민경제생활에서 오랜 세월 속에 삶의 애환과 추억을 만들어놓고 변화하는 사회 환경구조에 밀려나 역사 속으로 묻혀버렸다.
복덕방의 기원은 고려시대 이후의 객주(客主)와 거간(居間)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객주 가운데 타인간의 거래를 성립시키는 일을 거간이라 칭하였고, 거간을 업으로 하는 사람을 거간중매군(居間仲買群)이라 하였다.
가 거간(家居間)은 집과 토지를 비롯한 부동산의 매매·임차 및 전당 등을 주로 중개하였고, 이에 종사하는 사람을 집주름이라 불렀는데 이들이 모여 사무실을 차린 것이 이른바 ‘복덕방’이 되었다.
복덕방은 대체로 직장에서 정년을 한 사람이나 덕망 있는 마을 어르신이 시장점포사이 쪽방에 세 네 명이 앉으면 나머지 분들은 서 있어야하는 작은 사무실을 차려놓고 놀러온 연배노인들이 장기나 바둑을 두면서 소일하다가 손님이 찾아오면 거간노릇을 해주고 보답으로 작은 선물을 받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매도금액에 약간의 웃돈을 붙여 매매를 성립시킨 뒤 그 차액을 수수료로 얻기도 하였는데, 이것이 구전(口錢)의 형식으로 발전하였다.
1970년대 후반 고도성장 여파로 유래 없는 부동산 가격 급등현상이 일어났는데, 이는 곧바로 부동산투기 붐으로 이어졌고 중개행위과정에서 각종 불순사례가 속출하였다. 이로 인하여 이른바 ‘복부인’과 함께 복덕방은 하나의 사회문제로 등장하여 이를 규제하기 위하여 1984년 4월「부동산중개업법」이 제정되었다. 이는 부동산 거래질서를 확립하여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부동산중개업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높이며, 부동산중개업자의 자질향상을 도모하는 제도적 장치이다. 이 법의 시행과 함께 「소개영업법」은 폐지되어 복덕방이 사라지고 중개전문가인 “사”자 돌림의 공인중개사가 탄생되고 부동산공인중계사무소가 경기 좋은 곳에 곳곳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매도자보다 중개인이 더 많은 돈을 챙겼다는 소문도 떠돌았다.
한때 복과 덕을 나누며 부동산을 중개했던 복덕방과 덕망 있던 어르신도 역사의 뒤안길에서 잊혀지고, 부동산중개업으로 탈바꿈하게 되었으니 젊은 인재들이 비까번쩍한 공인중개사무소를 차리고, 부동산 중개뿐 아니라 컨설팅, 분양, 관리, 개발, 신탁 등 전문적인 재산 상담 기능까지 하고 있는 유망직종이 되었다.
한편 마을골목에 있던 구멍가게는 담배 막걸리 성냥 양초 과자 공책 연필 등의 생필품을 팔며 정과 덕을 덤으로 주시던 가게주인들도 있었다.
구멍가게라는 명칭에서 '구멍'의 어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6.25전쟁 당시 치안이 좋지 않다보니 가게에서 상품을 도둑맞기 십상이었고, 위험하기 때문에 물건을 몰래 사고 팔기 위해 방문이나 창문에 작은 구멍을 내고 그 틈으로 거래를 했다하여 구멍가게라 불렸다는 설이 있고, 담배 갑이나 성냥가치나 벌려놓은 움막 같은 가게라 구멍마냥 작은 가게라는 의미로 불렀을 것이다.
산 너머 마을 신작로 옆에 작은 오막 집 삼거리상회라는 구멍가게까지 주전자 휘돌리며 뛰다 걷다 찾아가서 할머니가 퍼주는 막걸리 한 됫박 주전자에 받고, 잘 가라며 눈깔사탕 한 개 덤으로 집어주시니 입에 물고 되돌아오는 심부름 길은 다리는 아프지만 달달한 맛이 기억나는 구멍가게의 추억이 있다.
산업사회와 생활향상에 동네구멍가계가 밀려나고 연쇄점으로 슈퍼가계로 지금은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으로 커졌지만 가게까지 거리는 멀어지고 좋은 상품은 많지만 정을 덤으로 주는 가게나 주인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