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도익< 인생칼럼>

허수는 어미가 없다

돌 박사 2021. 12. 1. 17:36




< 인생칼럼 >
허수는 어미가 없다.
소설가 석 도 익

지난날 허수는 어미가 없었는지 허수아비 혼자서 논에 나와 있다. 언제나 허름한 하얀 저고리에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외롭게 서있다. 가끔은 허수도 헐렁한 어른 옷을 입고 나와 있을 때도 있었지만 허수어미는 가을이 다 지나가도록 본 사람이 없었다.
예전에는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논에 나오지 않던 허수어미도 허수할머니도 허수할아버지도 허수네 이웃집 아저씨 아주머니까지 함께 나와 온 들녘을 메우고 있었다. 그것도 울긋불긋 원색의 옷을 입고 즐거운 모습들로 곡식이 무르익어가는 가을의 논밭에서 풍성한 축제를 열고 있었다.
하늘 우러러 비를 기다리고, 비가 너무 내리면 그만 오라 원망하면서도 하늘에 늘 감사하며, 살아가는 농심(農心)은 태양에 그을린 얼굴에 땀 흘리며 가꾼 곡식들이 힘들었던 만큼 풍요로운 결실로 일렁이는 것을 바라보며 보람을 느낀다.
낟알 한 톨이라도 금 쪽같이 귀한 것을 새들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아이들에게 깡통을 들려 새 쫓으라고 보내기도 했으나, 부족한 일손을 대신해서 나무와 짚으로 인형을 만들고 떨어져 입지 않는 허름한 윗저고리를 입히고 헤어진 밀짚모자 눌러 씌워서 논밭에 새 쫓는 초병으로 세우니 이것을 우리는 허수아비라고 했다.
사람을 대신해서 사람들이 하여야 하는 일을 해주므로 붙여준 이름인데 왜 허수아비만 있고 허수어미는 없는 걸까? 농촌에서 대대로 이어 농사를 지었으니 온 가족이 함께 일하고, 농번기 때는 이웃이 두레로 일하였음으로 일손이 부족하지 않은 편이라 남정네는 논밭에 나가 일하고 아낙들은 음식을 만들어 들로 가져가야 하는 역할로 분업이 되어 왔다. 그러므로 자연 농사일은 남자들의 일이라 허수아비도 남자만 만들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아니면 허수어미를 만들어 놓으면 새들이 전혀 무서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에 서일까? 그러나 어린아이 같이 작게 만든 것은 허수라고 불러주지 않는다.
세월이 갈수록 세상은 황량하고 허전하게 비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앞서는 농촌에는 농사일을 해야 하는 젊은 사람은 도시로 가고, 나이든 사람들만 힘겨운 농사를 짓고 있으니, 농촌일손부족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외국인 노동자들의 손을 빌렸으나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이마져도 여의치 않아 때때로 발을 동동 굴러야만 한다.
농촌도 이제는 기계화되고 현대화되었다지만 농기구 역시 사람이 다루어야 하고 기계가 하지 못하는 부분이 더 많은 농사일이라 노부부가 함께 농사일에 매달려야하니 모내기를 하여도 이웃과 나누던 못밥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자장면을 논둑으로 배달시켜 먹어야 하고, 농기계 다루는 젊은이들을 위해 시내 다방에 커피 시켜서 대접해야하는 것이 농촌의 풍경이다.
농촌이고 어촌이고 이제는 남녀가 따로 없다. 부부가 함께 일하지 않으면 일손이 없으니 농촌이나 어촌에 시집올 처녀가 없어, 장가가기 힘든 총각들 외국으로 장가 들러 다녀야 한다.
실정이 이러하니 집에만 있던 허수어미도 논으로 나오고, 경로당에서 더위 식히던 허수 할아버지 할머니도 허수네 일가가 모두 나왔나 보다.
농업국제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친 환경농업을 외치며 유기농법의 농촌홍보 이벤트로 허수아비를 연출하는 어느 마을에 도로변, 넓은 논에 줄지어 늘어서있는 허수네 가족들, 그리고 이웃들이 형형색색의 옷을 걸치고 있는 해학이 넘치는 모습들을 바라보노라면 가슴에서부터 일어나는 따듯함과 농촌에서 풍겨나는 넉넉함의 포만감에 마음이 든든하고 즐거워진다.
허수아비라도 많이 서있었으면 좋겠다. 외로워져 가는 겨울문턱 농촌들녘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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